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는 남성적이다. 또한 거대하고, 묵직하고, 직선적이고, 역사적이다. 그의 데뷔작 <듀얼리스트>는 하찮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15년간 이어지는 두 기병대원의 칼싸움을 다룬다. 그런 그는 <히트>든 <델마와 루이스>든, <로빈후드>든 <글래디에이터이>든,<블랙호크다운>이든 뭐든 일단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구도로 끝까지 밀어붙인다. 하다못해 <에일리언>(1편)에서조차도. 영국 출신의 이 노장 감독이 미국 애플과 손잡고 이번엔 프랑스 간판스타 나폴레옹을 무대에 올린다. 나폴레옹? 나폴레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위키피디아를 보거나, 역사논문만 조금 뒤져봐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랑스의 앙숙이라는 영국 태생의 ‘역사영화의 베테랑’인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을 어떻게 묘사할까. 영화는 프랑스대혁명의 하이라이트에서 시작한다.
1789년. 루이14세를 왕좌에서 끌어내고, 시민들은 미친 듯이 앙상 레짐의 흔적을 지워낸다. 그 희생양 중 가장 핫한 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수많은 영화, 소설, 만화, 뮤지컬에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면 되잖아?”라는 하지도 않은 말로 더 유명한 역사 셀럽이다. 영화 <나폴레옹>은 단두대(기요틴)에서 목이 싹둑 잘리는 현장을 멀리서 지켜보는 군인 나폴레옹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하급장교 나폴레옹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나폴레옹은 툴롱에서 영국군을 박살내며 한 순간에 프랑스를 지켜낸 스타가 되고, 이어지는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프랑스 깃발을 유럽대륙에 휘날린다. 영화는 그런 ‘군인, 사령관, 지휘자’ 나폴레옹의 모습과 함께 조세핀과의 위태위태한 로맨스를 펼친다. 당시 유럽은 왕정이 무너진 혁명의 프랑스를 두려워하는 나머지 유럽 왕정국가와의 전쟁의 연속이었다. 나폴레옹은 남으로, 북으로, 동으로, 서로 종횡무진 말을 달리고, 대포를 쏘고, 프랑스 삼색기를 휘날린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위대한 군사전략가의 천재적 영웅담을 보여주는데 주력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꼬박꼬박 연애편지를 보내는 가련한 남자란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굉장히 인상적인 몇 차례의 역사적 현장을 재현한다. 단두대의 마리 앙트와네트의 처참한 최후를 보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등등 프랑스혁명의 전 과정이 삽화처럼 지나간다. 그 와중에 나폴레옹은 보무도 당당하게 전진한다. 툴룽 포위전, 아우스터리츠 전투, 그리고 자크루이 다비드의 그림으로 유명한 셀프 대관식 장면, 러시아원정에 나섰다가 혹독한 추위에 무릎 꿇는 모습까지. 그리고, 두 번의 유배와 그 사이의 짧은 영광까지 빠지지 않고 담는다. 물론, 그의 머리 위에는 시그너처인 모자가 항상 있다. 남편이 그렇게 전장에서 죽음을 불사할 동안 파리의 조세핀은 무엇을 할까?
아마, 역사덕후라면 이 영화를 절대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손길을 거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이다. 영화 속에는 오류가 많단다. 프랑스 쪽에서는 특히 그런 점이 불만이다. 마리 앙트와네트 처형 현장에 나폴레옹이 없었다는 것에서부터 마리 앙트와네트의 헤어, 의상에 대한 지적은 흥미로울 것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포를 쏘는 장면에서는 아마 기겁할 것이다. 많은 역사적 지적에 대해 ‘리들리 스콧 옹’의 반응도 흥미롭다. “당신 그 때 그 곳에 있었어?”이다. 감독은 이런 반응도 보인다. ‘팩트’에 대한 많은 후대 창작인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나폴레옹에 대한 책이 400권이라면 첫 번째 책이 가장 정확하고, 두 번째 책은 작자의 버전이 들어갔을 것이고, 399번째 뒤의 책에는 수많은 추측이 들어간 것 된다”. 영국 출신의 거장감독의 대담한 역사재구성인 셈이다. 물론, 그것은 <블랙호크다운>이나 <킹덤 오브 헤븐>, <올 더 머니> 등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완성시킨 감독의 저력이기에 황당하거나, 어이없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칼과 총, 대포로 전장을 누리며 프랑스의 위업을 과시했지만, 조세핀을 굴복시키지 못한 가련한 남자, 나폴레옹에 대한 가십, 전설, 신화를 걷어내고, 내면에 똬리를 튼 남성성의 과시가 리들리 스콧의 영화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인류역사상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Napoleonic Code’로 불리는 프랑스 민법전은 이후 근현대 국가의 모태가 된다. 감히 러시아에 발을 들이었다가 호되게 당한 결과 차이코프스키는 ‘1812년 서곡’을 만들었다. 미국에게 루이지애나땅을 1500만 달러에 넘기기로 한 것도 나폴레옹이다. 물론 지금의 루이지애나 주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이 거래로 하루아침에 영토가 두 배로 넓어졌다. 영화에서 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군을 얼음호수에 수장시키는 아스터리츠전투가 끝난 뒤 프란츠2세와 승리의 축배를 들 때 “버건디네?”한다. 아참,, 우리나라에 ‘캡틴큐’와 함께 ‘나폴레옹’이라는 유사 양주가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나폴레옹 Napoleon ▶감독:리들리 스콧 ▶출연: 호아킨 피닉스, 바네사 커비, 벤 마일즈, 타하르 라힘 ▶개봉: 2023년12월6일 158분/15세이상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