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권에서 바라보는 민병훈의 모습은 감독의 모습이 아니라는 평가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가면 되니까. 일반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고 싶다.”
민병훈 감독의 신작 <약속>을 극장에서 만나본다. 민병훈 감독은 데뷔작 <벌이 날다>(1998)이래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 '터치', '사랑이 이긴다', 그리고 ‘펑저지에는 펑정지에다’, ‘기적’, ‘황제’ 같은 작품을 내놓았다. 옆에서 지켜보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오랜만에 멀티플렉스(그래 봤자, 몇 개 스크린 안 되지만!)에서 민병훈 감독의 영화를 만나보게 된다. 여전한 ‘분노’와 ‘회한’, 그리고 밑바닥에서 만나는 ‘희망’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신작 <약속> 개봉에 맞춰 감독을 만나보았다. 민병훈 감독은 서울 생활을 오래 전 청산하고 제주도에 터를 잡았다. 영화 개봉에 맞춰, 서울을 찾았고, 시간을 내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민병훈 감독은 안타까움부터 토로했다.
“우리 영화(계)가 연대와 공감이 사라졌다. 이전엔 영화가 공개되면 영화인들 사이에 연대와 공감의 표현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 때가 좋았던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느낀 것인데 최근 영화인 사이에 그런 감정이 없는 것 같다. 다 각자도생하는 느낌이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나눔의 형태가 사라졌다. 우리 영화인이 갖고 있는 소중함들이 사라지고 있다.”
Q. 그건 감독님이 조금 남다른 과정을 거쳐 영화계에 입문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민병훈 감독: “그렇기는 하다. 태생적으로 ‘사수’가 없고, 같이 다닌 학교 동문도 없으니. 하지만 그때는 다른 영화인의 시사회가 있으면 함께 보고 조언도 하고 공감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익숙했었다. 그게 연대와 공감일 것이다. 극장에 관객이 없다고 그러잖은가. 여기 카페 손님보다 적다는 것은 우리 영화인들이 깊이 생각해야할 것이다. 귀한 영화를 못 만들어내는 것 같다. 다 OTT계열이거나 그와 비슷한 영화이다. 조미료를 너무 친다고나 할까. 너무 과하다. 폭력도. 우리 영화가 우리 관객을 잃게 하는 요소가 있다.”
Q. <약속>이 지난 달 부산국제영화제에 공개되었다. 그리고 언론시사회를 가졌고, 마침내 극장 개봉한다. 소감은.
▶민병훈 감독: “어이가 없죠. 상영관을 열어주면 영화가 공개되는 것이다. 상영 회차가 있어야지. 상영관이 적으면 힘이 빠진다. 그게 <약속>이 가진 현실이라면, 이 상영관을 최선을 다해 잘 지키면 될 것이다. 어제 관객 시사회가 있었다. 끝까지 남아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분들이 있다. 영화가 가진 순수성을, 우리 아이의 시(詩)를 두고 함께 우신 분도 있다. <약속>을 OTT가 아니라 영화로 만들었으니, 영화관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의 형태를 공감하게 만들고 싶었다. 부국제(부산국제영화제)에서 몇 번의 상영을 거치면서 뜨거운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극장에 걸렸으니 입소문이라도 나면 지켜나갈 것이고, 시시하게 느껴진다면 내리겠죠. 이제 제 작품은 남의 손에 넘어간 것이니, 서포트하는 입장으로 관객분의 선택을 지켜볼 뿐이다.”
Q. 일단, <약속>은 어떻게 찍었나. 바다에서 혼자 트라이포드 설치하고 찍을 때, 카메라를 바다에 빠뜨릴까 조마조마했다.
▶민병훈 감독: “항상 카메라 두 대를 가지고 다니며 직접 촬영한다. 풍경이 멋있게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풍경도 캐스팅한 것이다. 자연광을 최대한 잡는다. 안개도, 반사하는 빛도. 자연이 주는 힘이 있다. 빛의 난(반)사까지 생각하고. 습도와 형태가 화면 안에 잘 묻어나기를 바랐다. 실제 촬영하면 카메라 네댓 대를 망가뜨렸다. 태풍 칠 때 트라이포드가 바다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없어지고 부서진 게 많다. 바다장면이든 절벽에서 찍든 위험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느낌이 든다. 자연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을 맞을 때도 세례 받는 느낌이 들었다. 신발이 젖을까 동동대다가도 성찰하게 된다. ‘맞아, 이거야!’라고. 영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화면 속으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눈비를 맞으며 해방감을 느낀다. 그렇게 내밀한 면으로 들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민 감독은 어른이라서 그렇겠지만, 시우는?) “시우도 징징대지는 않는다. 철이 일찍 들었다기보다는 그런 게 없었다. 물에 억지로 들어가자고 할 순 없다. 한라산도 같이 잘 올라간다.”
Q. 일단 극장 큰 스크린에서 만나보게 되는 제주도의 풍광은 그야말로 장엄하게 느껴진다.
▶민병훈 감독: “제주도를 잘 촬영한 게 아니다. 제주도에서 시사를 할 때 제가 찍은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더라. 일반적인 관광지가 아니라 주제를 드러낼 수 있는 저만의 장소를 찾아 넘버링 했다. 스물 일곱 군데를 지정해 놓고 날씨와 계절에 따라 찾아서 화면에 담은 것이다. 그렇게 개발을 해놓았기에 내면의 이야기를 펼쳐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Q. 제주도에는 어떻게 정착하게 되었는지.
▶민병훈 감독: “시우가 유치원 들어가던 2017년 즈음에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절망했다. 엄마도, 시우도 제주도에 있고 싶어 했다. 저도 그랬고. 기적을 믿고 싶었다. 자연치유를 해주고 싶었다. 제주도로 오는 결정은 1초도 안 걸렸다. <약속>에 나오는 첫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장면은 그 때 찍은 것이다. 그 기간을 오래 가지 못했다. 시우 유치원 졸업식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 시우 초등학교 입학시키고 1년 정도는 매일이 눈물 바다였다. 시우가 2학년 때 학교에서 ‘슬픈 비’ 시를 지어왔더라. 잘 쓴 시라서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더욱 안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우에게 마음의 시를 권유한 것이다. 그렇게 제주생활을 이어오게 되었다.” (제주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은지?) “사실은 이렇게 (영화홍보, 시사를 위해) 서울에 오는 게 힘들다. 시네큐브 오는 게 힘들다. (아내와) 자주 와서 데이트하던 게 떠오른다. 코엑스 가는 것도 힘들다. 아내와 함께 다녔던, 그 때 생각이 떠올라 더 힘들다.”
Q. 제주도에 정착한 뒤 제주에서 새로운 이웃, 인연을 만들어 가는지.
▶민병훈 감독: “지금도 제주도에서 만나는 사람도 없다. 시우는 친구가 많지만 저는 항상 혼자이다. 고독이 좋은 게 아니라 혼자 촬영하고, 글 쓰고 하는 게 더 좋다. 고독은 오히려 작품을 만들게 한다. 제주도에서 미디어아트하게 된 것도 해방감을 주기 때문이다. 외로울 때도 있지만 그 때는 항상 시우가 옆에서 조잘거려준다.”
민병훈 감독은 제주의 지역사회에서 영화관련 강의도 하고, 영상제작기술을 알려주는 활동을 하는 모양이다. “나를 초대하면 기꺼이 응한다. 내가 쓸데없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가진 것을 활용하는 것이다. 나눔이란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촌이든 서귀포든 달려가서 영화와 관련된, 만들기 과정을 알려주는 것이다.”
Q. 제주도에 내려가서, 뭔가 큰 영화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병훈 감독: “그런 것은 사업이고, 나의 자유로움을 잃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 속의 자유, 해방감을 느끼며 창작 일을 하고 싶다. 내가 왜 당당하냐면 내가 정말 자본으로부터 100프로 독립한 독립영화인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투자를 받지 않기에 누구한테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내가 만들면 된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최선을 다해서, 내 자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캐스팅으로 해서 만드는 것이다.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약속>을 극장에서 공개한 것은 극장 안에서 몰입해서 잘 보기 위해서이다. 시우의 시나 민병훈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 본인의 이야기, 경험을 보는 것이다. 엄마, 아빠로서의 이야기가 좋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자유로워야할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 만들든 제주에서 만들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할 것이다.”
Q. 이런 방식이 계속 유효할까?
▶민병훈 감독: “뜻대로 안 되겠죠. 그런데 여태 잘 살았는데 바꿀 필요가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방향성을 트는 순간 내가 불행해질 것이다. 영화를 하면서 불행해질 필요는 없죠. 영화는 내게 행복과 자유를 줘야하는데 그게 뭐라고. 영화가 좋아서 하는 것인데 그런 영화를 무기로 생각하게 된다면 영화는 결국 내 폐를 찌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영화는 독이 되는 것이다.”
Q. 집에서 오멸 감독의 <지슬>의 보고 있다. 이 영화를 삽입한 이유가 있는지.
▶민병훈 감독: “허락을 받았고, 의도적으로 넣은 것이다. 제주도에서 수많은 영화를 봤다. 타르코프스키, 베르히만(잉마르 베리만), 파스빈더(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영화도 봤다. 타르코프스키는 스승이다. 그런 연줄로 <희생>이나 <거울>을 보는 장면을 넣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잘 난체하는 안드레이 루블료프도 넣을 수 있고, 그런데 그것은 나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슬>을 보면서, 그 장면을 보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병사의 모습이 영화 초반의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장면을 넣었다.”
Q. 처음부터 이렇게 시우의 성장과정을 하나의 작품에 담을 생각을 했는지.
▶민병훈 감독: “시우의 시가 이 작품의 뼈대가 된 것은 맞다. 시우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시우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만든 동기부여는 엔딩에 있다. 마치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시우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엄마와 손잡고 행복했던, ‘물 던져 줘’하는 장면을 앞에도 넣었고, 뒤에도 넣었다. 순수한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숙제이면서, 아이에게 해 주고 싶었던 선물이었다.”
“<약속>에는 노루와 말이 등장한다. 노루의 죽음은 상징성이 있다. 그 노루에게는 생명성이 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까마귀가 쪼아 먹고 뒤로 날아간다. 노루는 부활의 상징이다. 말은 야생말도 나오고 기르는 말도 나온다. 엄마 말과 나오는 것이 은유이다. 이 영화는 시우의 시를 관통하는 작품이면서도, 시우의 소원을 풀어줘야 한다. 마지막에 엄마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 편집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엄마가 나오니. 많이 울었다.”
Q. 시우의 성장을 계속 찍을 것인가.
▶민병훈 감독: “아니오. 물론 요즘도 시우를 찍기는 한다. 그것은 촬영하는 사람으로서 일상을 찍는 것이지 영화를 위해서 찍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촬영을 하고 있다. 인터뷰 오기 전에, 서울 올라오면서 시우 엄마를 찾아갔다. 그것도 찍었다. 저의 습관이다.”(민 감독의 아내는 수목원에 묻혀있다. 서울 올라오면 찾는단다)
(시우도 촬영을 하는지? 아빠 자는 모습을 찍는다든지..) “시우도 잘 찍는다. 내가 촬영과 편집을 가르쳐주었다. 시우가 뮤직비디오도 찍었다.”
Q. 시우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TV나 유튜브는 보는지.
▶민병훈 감독: “시우는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아기 때부터 내가 영화 볼 때 항상 같이 봤다. 유튜브 보는 것도 좋아하고, TV도 열심히 본다. 학원은 하나도 안 다닌다.” (아빠 작품은 보았는지?) “다 봤다. <사랑이 이긴다>를 제일 좋아한다. 아는 배우(오유진)가 나오니까. 아빠 작품 중 제일 좋고 재밌다고 그런다.” (흠, 그럼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도 보여줬는지?) “그걸 보면서 잔다. ‘아빠 이런 걸 왜 봐? 이렇게 긴 걸 왜 봐?’ 물어보면, ‘이만한 책도 있고 짧은 책도 있다. 항상 짧은 책만 읽는 건 아니잖아.’ 시우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게 익숙해졌다. 재미없는 영화를 봐야 나중에 습관이 좋아진다고.”
Q. <약속>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 펼쳐 보여준다. 본인에게도, 시우에게도 내밀한 이야기이다.
▶민병훈 감독: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 방안에서 시우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특히 어려웠다. 우리 이야기의 핵심이니까. 시우는 어려서 잘 몰랐을 것이다. 2년 넘게 꾸준히 찍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라 모르겠다’ 하며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
Q. 시우는 커서 뭐가 된다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 엄마, 아빠 중 누구의 영향일까.
▶민병훈 감독: “글쎄. 확실한 것은 선한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시우는 불편한 사람을 도와주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랬다. 어릴 때는 ‘아빠처럼 되고 싶어’ 그랬다. ‘그럼 안 되는데...’ 그랬다. KBS [동행]을 보면 항상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걸 같이 보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러더라. 그러면 ‘아빠는 네가 뭐가 되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회사원이 안 되었으며 좋겠다고, 자유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사회에 공헌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하게 살지는 않아도 당당하게 살 수는 있는 것 같다.”
Q. 말과 노루의 상징성뿐만 아니라, 영화 후반부에는 슬로우모션과 리버스 방식으로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민병훈 감독: “내 영화에는 메타포, 상징, 은유가 항상 있다.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는 (찍기가) 쉽지만 그렇게 만들면 나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다큐적이어야 하고, 다큐는 영화적이어야 한다. 보면서 ‘아, 영화적이네!’ 이런 평가를 원한다. 다큐는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진실성을 담보해야하면서도 영화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각자의 모습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는 것이다. 열린 구조여야 한다. 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엔딩에서 각자 엄마의 모습, 아빠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객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때 ‘영화적이구나’하면서 제가 만든 보람을 느끼게 된다.”
Q. 민병훈 감독이 꾸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영화를 찍어왔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을 유지할 것인지.
▶민병훈 감독: “검열을 받거나, 자본의 간섭을 받지 않고, 누구의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빚이 생긴다는 것이고 나를 옥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지만 제 손으로 계속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찍을 것이다. 절대. 누군가와 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고 안 힘들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는지?) “상업적인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재밌는 영화, 상업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다. 최우선적으로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Q.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
▶민병훈 감독: “다음 작품 준비하지 않는 감독이 어디 있겠어요. 세 편의 시나리오가 있다. ‘에세이 인 뉴욕’, ‘에세이 인 파리’, ‘에세이 인 베이징’이다. 아내가 너무 좋은 시나리오를 놓고 갔어요. 제겐 숙제이다. 국제적인 버전이고, 이것을 만들려면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약속>이 잘되어 제 손으로 만들고 싶다. 좋은 배우들과 만들고 싶다. 독립적인 방식으로!”
Q. 러시아에서 영화 공부하고 <벌이 날다>로 한국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것이 벌써 25년이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자신의 영화인생이 어땠는지.
▶민병훈 감독: “<벌이 날다>가 나의 첫 작품인데 지금 <약속>에서의 내 세계관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그 시절의 모습도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냥 저다운 것 같다. 러시아로 유학 갈 생각을 누가 했을까. 내가 좋아서 한 것이다.”
Q. 대중들이 자신의 영화를 알아주지 않아서 속상하지는 않은지, 거대 극장의 횡포에 분노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런지.
▶민병훈 감독: “관객에게 분노하는 것은 ‘1’도 없다. 나는 스크린독과점에 분노했다. 대기업들이 투자와 배급, 극장, 부가판권까지 다 갖고 있다. 그런 일률적인 시스템에서 한국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런 것이 부메랑이 되어 지금 상황이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극장상황이 OTT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인은 딱 하나, 10년 전부터 시작된 스크린 독과점이 독이 되어 지금의 극장환경이 되었다고 본다. 다양한 영화가 없어서 그 생태계가 무너졌다. 영화는 다양해야하는데 말이다.”
Q. 관객들이 <약속>을 어떻게 보았으면 하는가.
▶민병훈 감독: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것은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다. 이미 제 손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만들어 공급한 것이다. 예술이 갤러리에 걸린 것이다. 관객들이 훔쳐보든, 중간에 나가든, 관객들의 선택이다.”
민병훈 감독의 <약속>은 지난 1일(수) 개봉되었다.
[사진=민병훈필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