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이야기 <남부군>(1990), 베트남전쟁 <하얀전쟁>(1992)에 이어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블랙머니>까지 작품 하나하나가 대단한 휘발성을 가진 논쟁적 작품을 만들어온 정지영 감독이 신작 <소년들>로 돌아온다. 오늘(1일) 개봉하는 <소년들>은 1999년 전북 완주 삼례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을 다룬다. 경찰의 신속한 수사와 검찰의 엄정한 법 집행으로 세 명이 법정에 섰고, 유죄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진범이 따로 있었고, ‘소년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 밝혀진다. 그 과정을 정지영 감독이 영화 <소년들>에 담아낸다. 올해 76세(1946년 생)의 ‘사회파’ 노장 감독 정지영 감독을 만나 영화인생을 들어보았다.
Q. 내일 드디어 영화가 개봉된다. 극장 상황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 개봉되는 소감은.
▶정지영 감독: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예전처럼 관객들이 극장을 찾지 않고 있다. 외국의 경우 80퍼센트 정도로 회복되었다는데 말이다. <소년들>이 우리 극장가가 다시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Q. 영화 [재심]이 나온 상황에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과정은.
▶정지영 감독:“처음에는 ‘약촌오거리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미 다른 사람이 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포기했다. ‘약촌 사건’은 국가 공권력이 한 시민을 희생자로 만들고, 회복을 힘들게 만든 사건이다. 공적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에서 그 역학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얼마 후에 삼례 나라슈퍼 삼인조사건이 알려졌는데 ‘재심’에서의 이야기와 같았다. 이것도 영화로 만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훨씬 넓고, 깊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박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아직 영화로 만들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일단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진행됐다.”
** '약촌오거리 사건'은 2000년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피살사건이다. 경찰은 도주한 진범 대신 현장목격자였던 최모군(15세)을 살인혐의로 체포했다. 결국 최군은 10년을 복역했다. 사건은 재심 결과 2016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정우, 강하늘 주연의 영화 <재심>(감독:김태윤)으로 만들어졌다. 정우는 변호사 이준영을 연기했다. **
Q. 재심변호사로 ‘박준영’ 변호사 대신 여자변호사(한수연)가 등장한다.
▶정지영 감독: “원래 이 사건에서 이야기를 ‘운반’하는 사람은 많았다. 제일 처음에는 세 소년이 수감된 교도소의 교화위원(박영희 교정사목 봉사자)이 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알렸다. 그 분이 세 소년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이상해서 아는 변호사에게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진범이 아니란 것을 확신하였고, 국가상대의 재심을 청구해야하는데 혼자 하기에 벅차서 박준영 변호사와 연결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영화에 다 담으려면 너무 복잡해질 것 같았다. 박 변호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면 좋을 텐데 이미 영화 [재심]에서 주인공을 한 셈이다. 내가 처음 ‘약촌사건’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을 때는 변호사가 아니라 형사, 황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다. [재심]에서 박철민이 연기한 인물이다. 그 인물이 상당히 매력이 있었다. 그 캐릭터를 이 영화로 끌고 와서, 전체를 끌고 가고자 했다. 인물만 따온 것이다.”
Q. 그 ‘미친 개’ 황준철 반장 역으로 설경구 배우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었나?
▶정지영 감독: “황 반장 역할은 거침없이 뛰어드는 사람이어야 했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 캐릭터가 맞을 것 같았다. 설경구이면 설명하기도 쉬울 것이다. ‘나이 들어 반장이 된 사람’. 그 때는 분노하고, 나쁜 짓도 했겠지만 이제는 노하우와 요령도 생긴 반장 역할로. 캐릭터는 그대로 가져가는데 별명은 ‘미친 개’로 하겠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강철중 캐릭터에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10년 후의 모습이 끌린 것이다. 완전히 좌절해서, 정년퇴직이나 잘 하자는 설정. 설경구가 다시 형사 역할에 용기가 난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16년, 17년의 세월 차이를 느끼게 할 수 있는 배우는 흔치 않다. 설경구는 그게 가능한 외모라고 생각했다. 영화판에서는 까만 후배인데 나는 친구같이 여기는 배우이다.”
Q. 시사회 때 잠깐 질문이 나왔었다. 당시 담당검사가 피해자를 찾아가 사과한 점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감독님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리고, 유준상 배우의 극중 이름은 의도한 바가 있는지.
▶정지영 감독: “당시 검사의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 무시하고 싶었다. 자막에서 넣고 싶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소년들‘이 범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극중에서의 그 이름은 작가가 그랬을 것이다.”
** 유준상은 사건을 조작, ’소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전북경찰청 수사계장 '최우성'을 연기한다. **
Q. 최근 ’전주‘에서 <소년들>의 시사회가 있었다.
▶정지영 감독: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전주 근방에서 살 것이다. 그곳에서 시사회를 갖는 게 예의 같았다. ’우리 영화,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시사회는 재심 당사자들이 설립한 ’등대장학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이 영화를 보고 상당히 좋아하셨다. 감독으로서 이런 영화 만들 때 굉장히 신경 쓰이는 것이 있다. 당사자들에게 잊고 싶은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그런데 그날 피해자 분 중 한분이 오셔서 ’꽃다발과 함께 감독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Q. 이 영화에서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정지영 감독: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재미가 없다. 처음 이 영화를 기획할 때 가제는 [고발]이었다. 고발하는 이야기이니.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의 힘을 나쁘게 사용하는 것을 고발하는 것이다. 1차원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래서 ‘소년들’로 바꾸었다. 못 배우고 가난한, ‘못난 소년’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떤지 관객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주위에 저런 소년이 있다면.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무시하지는 않는지,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재심 법정에서 조진웅 검사가 ‘사회부적응자를 부추겨서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검찰과 경찰을 모독하고 공권력을 음해하여 사회불안을 야기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강변하자 윤미숙(진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 사람들은 사회부적응자가 아니에요. 그 말 취소하라’고 그런다. 그 말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블랙머니>에 이어 <소년들>까지. 정지영 감독은 언젠가부터 사회파 감독으로 불린다. 그래서인지 시사회 때 ‘나는 켄 로치가 아니다’고 말한 게 화제가 되었다.
▶정지영 감독: “난 멜로나 액션을 잘 못 만든다. 대신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런 면에 더 관심이 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그런 작품을 만든다. 1990년대에서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런 사건의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스타일이다. 난 외국에 나가도 그 지점이 어딘지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다. 공간적인 지점에서, 역사적으로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사회를,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봐야할 것이다.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자기 사회를 적극적으로 바로 보고, 요구하라고.”
“켄 로치 감독은 사회문제를 적극적으로 끌고 나와 관객들을 만난다는 점에서는 같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켄 로치는 진솔하게, 리얼하게 접근한다. 나처럼 황반장을 끌고 와서 극적 구조를 갖추지는 않을 것이다. 켄 로치라면 교화요원, 박준영 다 끌고 갈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 켄 로치 감독은 대중적이라고 볼 수 없다. 진솔하게 접근하니까 고급관객이 좋아할 것이다. 나는 내 영화를 고급 관객만 보는 것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극적 장치를 넣어 좀 더 많은 사람이 보기를 원한다.”
Q. 감독님은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작품에 참여하였는지.
▶정지영 감독: “오래 되었다. 1975년도부터 했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은... <화려한 외출>(1978)이 조금 떠들썩했다. 윤정희 배우가 나왔던 작품이고, <웃음소리>(1978)라고 남정임이 나온 영화가 기억난다. 그 당시 김수용 감독이 1년에 네 편씩 할 때였다. 그 덕분에 현장을 많이 뛰었다.”
Q. 설경구 배우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많이 뛰어다니는 감독이라고 이야기했다.
▶정지영 감독: “다른 현장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난, 현장이 즐겁고, 활력이 넘쳤으면 좋겠다. 내가 뛰어다니는 것은 연기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이고, 갔다왔다 하면 운동도 되니까 그런다. 건강을 잘 지켜서 현장을 오래 하고 싶다. 지금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다. 10년 전에 <남영동 1985> 끝내고 크게 아픈 적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했고. 그 후 건강을 챙기려고 한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Q. 최근 감독데뷔 40주년을 맞아 회고전을 가졌다. 1982년 데뷔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에 대해 좀 이야기해 달라. 당시는 ‘에로무비’가 대세였다. 전두환 시절 ‘이른바 3S’말이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절박함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정지영 감독: “프랑스 추리소설이 원작인데 당시에는 저작권법이 철저하지 않았다. 원작자의 허가를 받는다는 그런 생각을 못할 때였다. 그 작품을 추천하기에 연출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이것을 한국 상황으로 바꿔보자고. 그렇게 시나리오 작업한 것이고, 마침 영화사 기획실장 친구가 있었는데 나보고 데뷔해봐라 해서 찍게 되었다. 당시 이 영화는 ‘섹시 미스터리’작품으로 팔렸다. 오수미, 윤영실이 주연으로 나왔다. 두 분 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자주인공이었던 신일룡 배우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는 당시 유행하던 영화랑은 좀 달랐다. 스타일리시하다고. 지금은 정지영이 스타일리시하고는 거리가 먼데 말이다. 범죄물이었고, 흥행도 괜찮았다. 당시엔 ‘섹시 미스터리’가 흥행에 도움이 되었다. 80년대엔 검열이 철저했다. 사회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엄혹한 시절이었다. 대신 숨통을 조이면서 약간의 숨구멍을 터놓은 게 전부 다 그런 작품이었다.”
**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의 소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1952)은 영화 <디아볼릭>(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1955)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1996년 샤론 스톤, 이자벨 아자니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
Q. 영화감독 데뷔40년 소감은.
▶정지영 감독: “별로 의미를 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의미가 생기더라. 사실 난 옛날을 돌아보지 않는 타입이다. 반성이 좀 없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돌아보고 반성을 해야 하는데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다. 그렇다고 먼 미래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에 40주년 행사하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 사람들이 나를 사회파라 부르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내가 한 게 영화밖에 없구나. 영화 작업하면서 만족스러워하구나 생각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 않지만 그래도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평소 허무주의자이다. 이 사회가 과연 살만한 사회인가. 아니잖아. 허무한 생각을 많이 한다. 어차피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이렇게밖에 못 끌고 가니. 허무주의자는 산골에 처박히거나 일찍 죽는데 난 지금 살아있다. 내 영화를 돌아보니까 당대의 문제를 비판하고 점검한다. <부러진 화살> 보면 마지막에 감옥에 간다. 그런데 그 캐릭터는 죽지 않는다. 그 힘으로 내가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허무를 극복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Q. 영화계 선배로서 후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지영 감독: “그런 것 없다. 감독들은 다 개성이 있다. 나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지영 영화’ 때문이 아니라 ‘그 나이라 되어도’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일 것이다. 각자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상 이야기 좀 하자면, 좀 우습다. 어떻게 작품의 우열을 가릴 수가 있나. 그 사람이 최선을 다 한 것인데. 그 반열에 오른 것은 다 좋은 거지. 물론 영화 발전을 윈한 당근이자 채찍으로 좋은 제도인데 운이 좋아서 타기도 하고, 못 받기도 하는 것이다.”
Q. 감독님은 ‘시대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는데.
▶정지영 감독: “나이를 먹어가니 당대 주류에서는 밀려난다. 20,30,40대 그들이 문화의 주류이고 난 멀어져 있다. 그들을 만나기는 하는데 그들이 쓰는 언어도 모르는 게 많다. 그렇지만 내가 상대하는 대중들로부터 내 작품이 낡았다는 소리는 안 듣도록, 그들의 감성을 계속 배우려고 한다. 내가 콘텐츠를 바꾸긴 힘들 것이다. 갑자기 마블 같은 거 만들진 않을 테니. 그런데 감각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배워야지.”
Q.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즘 영화제 상황은 어떤가.
▶정지영 감독: “모든 예산이 다 깎이고 있으니 어려울 수밖에. 세수가 줄어드니. 문화콘텐츠는 한국을 알리는 최고의 아이템이다. ‘40주년 회고전’ 행사로 영국을 갔다왔는데 영국인이 왜 극장에 와서 정지영 영화를 보겠는가. 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그 사람들은 구태여 극장까지 와서 나의 영화를 본다. 한국을 알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야 풍부해지는 것이다. 영화제라는 것은 그들을 오게 하는 것이다. 영화전문가들을 오게 해서, 한국영화를 알리고 교류하는 것이다. 지금 K컬쳐가 대세인데 이것을 깎아버리는 것은 누구 발상인지 모르겠다.”
Q. 감독님은 1998년 헐리우드직배 파동 때 극장에 뱀을 풀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각인되어 있다. 스크린쿼터 투쟁에서도. 그리고 최근의 영화들이 하나의 경향성을 보인다. 그런 ‘분노’가 영화창작의 힘인가?
▶정지영 감독: “하하. 분노라기보다는 참여라고 생각해 주시길. 지식인 사회문제에 방관한다는 것은 자기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이든, 소설가이든, 음악가이든 문제해결에 동참하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이다. ‘난 예술만 할 거야’하는 것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Q. <김산의 아리랑>을 만들겠다고 한 게 꽤 오래되었다. 그리고, ‘제주 4.3’과 ‘백범 김구 암살’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 세월만큼 앞으로도 힘든 여정이 될 것 같다.
▶정지영 감독: “<아리랑>은 지금 못 만들 것이다. 중국 사정이 그러하니. ‘4.3’도 ‘백범암살’도 힘든 것이다. 내가 어디 가서 점을 봤는데 모든 일을 어렵게 할 것이란다. 그런데 결국 하긴 한다고 하더라. 쉽지 않게 한다는 것이지. 결국 하긴 한다.”
정지영 감독의 역작 '소년들'은 오늘(11월 1일) 개봉한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