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영화 생태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영화팬 입장에선 일정액을 보면 일정기간 영화를 맘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런 비즈니스모델은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달랐던 점은, 글로벌하고, 사이즈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 해마다 콘텐츠에 쏟아 붓는 돈이 천문학적이다. 단지 <하우스 오브 카드>로 호객행위를 하는 미디어업체가 아니란 것이다. 봉준호 감독을 끌어들여 <옥자>*로 깐느영화제를 혼돈에 빠뜨리더니, 지난여름 베니스영화제에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로 영화계, 정확히는 극장업계에 폭탄을 던졌다. <로마>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것이다. 넷플릭스는 극장이든, TV채널이든, 국제영화제든 자신들의 콘텐츠를 뿌리고 다닌다. “이것은 재밌고, 저것은 상 탔다. 여기 오면 더 많다.”라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주고 있다. 넷플릭스를 절대 무시하면 안 되는 걸작 <로마>를 소개한다.
영화 <로마>는 이탈리아에 있는 콜로세움의 도시 로마가 아니다. 멕시코시티 옆에 있는 작은 마을 이름이다.(콜로니아 로마). 1971년 멕시코는 정치적으로 혼돈에 빠져있었다.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시위대에 우익무장단체가 발포해서 백여 명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성체축일학살사건’(Corpus Christi massacre)이다.
멕시코시티 출신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찰스 디킨스의 문학성 풍부한 <위대한 유산>으로 주목받았고, 헐리우드에 진출한 뒤 블록버스터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감독하기에 이른다. 그가 <그래비티> 이후 뛰어든 작품이 바로 <로마>이다. 쿠아론 감독은 <이투 마마>이후 17년 만에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로 영화를 만들었다. ‘로마’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꾸며졌다고 한다. 정확히는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유년시절, 그의 집에 있었던 가정부의 이야기이다.
클레오는 소피아 집에 거주하는 가정부이다. 소피아의 남편은 캐나다 퀘벡으로 출장(학회) 갔고, 클레오는 소피아 부인을 위해 어린 아들, 딸들의 아침밥 챙기기, 이불개기, 등교시키기, 세탁, 집안 정리를 맡고 있다. 개똥 치우는 일까지! 클레오의 유일한 즐거움은 같은 신세(?)인 친구 아델라와 함께 읍내로 나가 극장 데이트를 즐기는 것. 그런데 클레오의 임신 사실을 안 남친이 훌쩍 떠나버린다. 게다가 집 주인 소피아의 남편은 출장이 아니라 딴 여자와 떠난 것. 클레오는 그런 소피아의 집에서 ‘1971년 멕시코의 삶’을 살아간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기억하는 1971년의 멕시코는 어찌 보면 그 시절의 한국 같다. 커다란 세단을 가진 주인집에 기거하는 ‘원주민’ 클레오는 마치 서울로 올라와서(상경하여) 더부살이를 하며 악착스레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주는 그 시절의 ‘순이’ 같다. 게다가 멕시코는 가톨릭 국가이지 않은가. 성실하게, 순수하게, 그리고 고결하게 삶을 이어간다. 물론, 쿠아론 감독은 ‘성체축일 사건’의 충격을 후반부에 배치한다. 관객은 병원에서 보여주는 삶과 죽음의 모습,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를 보며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그런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의 따뜻함과, 삶의 고결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 마지막엔 “리보를 위하여”라는 자막이 나온다. 영화 속 클레오의 모델이 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어린 시절 가정부 리보 로드리게즈란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멕시코 시골마을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24살 여성 얄리차 아파리시오를 찾아내 클레오 역을 맡긴다. 아델라를 연기한 낸시 가르시아도 역시 연기경험이 전무한 ‘일반인’이다. 실제 얄리차의 친구란다.
알폰소 쿠아론의 걸작 <로마>는 12일 일부 극장에서 잠시 상영된 후, 14일부터 넷플릭스에 공개된다. 넷플릭스가 왜 이런 전략을 세우는지, 멀티플렉스들이 왜 이 영화를 거부하는지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어쨌든 2018년 초강추 영화이다. 참, 기자시사회는 코엑스 메가박스 MX관에서 열렸다. 애트모스 사운드의 ‘로마’가 모바일에서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