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디.피>에서 조석봉 사병을 연기한 조현철 배우는 서강대를 중퇴하고 한예종에 들어간 영화학도이다. (절친 박정민과 겹친다) 조현철은 영화감독의 꿈이 있었다. 단편 <측추측만>과 <뎀프시롤:참회록>같은 인상적인 단편을 연출했던 그가 <너와 나>로 장편영화 감독데뷔를 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내일이면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이야기이다. 그렇다. ‘세월호’ 이야기이다. 감독을 만나 ‘영화감독’과 ‘비극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는 내일(25일) 개봉한다.
“이야기를 쓸 때부터 이야기 자체가 주는 위로가 있다. 잠들기 전에 엄마가 들려주는 동화책 이야기처럼. 잠들기 전의 무서움을 달래주는 이야기 이야기의 힘을 담으려고 했다.”
Q. 세월호 이야기를 다루면서 여고생의 하루를 담기로 한 것은 어떻게 구상한 것인가.
▶조현철 감독: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때, 저에게 잊힌 일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앞둔 두 여고생의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 같다.”
Q. 영화는 시종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조명과 편집에서 그런 느낌을 주려고 한 이유는.
▶조현철 감독:“누군가의 꿈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2017년 정도에 생존자 학생의 말을 들었다. 친구가 꿈에서라도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꿈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실처럼 생생하게, 그러면서 꿈같은 이미지로 표현되었으며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Q. 학생을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다.
▶조현철 감독: “내가 남자이고, 30대이라 여고생의 마음을 잘 모른다. 그래서 준비를 많이 했다.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서 영화과 입시학원에 특강 나가거나, 취재하거나 학생들이 올린 브이로그 보면서 2달 정도 취재했다.”
Q. ‘사랑한다’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조현철 감독:: “영화의 처음과 끝은 잠에서 깨어나는, 악몽을 꾼 듯한 학생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처음부터 고민한 부분이다. 그 중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세월호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기에 어떻게 윤리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많이들 잊혀져가는 것이 체감이 되더라.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과제였다.”
Q. 박정민이 우정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을 만든데 도움을 준 사람은?
▶조현철 감독: “너무 많다. 성초이 작가(드라마 ‘구경이’작가)는 항상 좋은 영감을 주시는 분이다. 그리고 수상소감에서 언급했던 분들. 그 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작품을 해야겠다는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종필(삼진그룹영어토익반) 감독님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워낙 많아서...”
Q.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특별히 고심한 부분이 있다면.
▶조현철 감독:“영화는 겉으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표면을 어떻게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을지 표현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소품에 대해서도 신경 썼다. 소품의 상징적, 시적인 것을 많이 집어넣으려고 했다. 사과가 두 번 정도 등장한다. 사과가 갈변이 쉽게 된다. 특별히 갈변되지 않는 사과를 주문했다. (그걸 한 입 베어) 먹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이 방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다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보여주는 것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Q. 앵무새, 개, 고양이 등 동물이 등장한다. 그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 같다.
▶조현철 감독:“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와 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런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면서 느껴지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나 나무, 새, 이런 것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Q. 퀴어적 시각이 보인다면?
▶조현철 감독: “그런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접촉은 있어야했다. 깊은 스킨십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그리워하는 두 사람이 한 번쯤 닿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의 성정일지는 모르지만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그런 사이를 다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Q. 굉장히 조심스럽다.
▶조현철 감독:“이야기를 다룰 때 뭔가 단편적으로 보인다거나 납작해지는 것, 입체적이었던 것이 단순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굉장히 슬픈 이야기를 전할 때도 표면에는 생동감이 넘치는 유머나 활기가 있었으면 했다. 죽음 앞에서 느끼는 사랑의 감성, 다채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Q. 그럼 이 영화는 ‘퀴어’인가?
▶조현철 감독:“크게 의식하지는 않았다. 저에겐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그냥 대게 평범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상 어디에서나 있는 사랑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앞둔 사랑이야기였기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아닌가.”
Q. 거울이 몇 차례 등장한다. 뭘 비춰주고 싶었는지.
▶조현철 감독:“이 세계를 지각(知覺)한다는 것, 상이 맺히는 것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다. 인물의 모습이 맺히는 게 즉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미가 그 상에 맺혔다가 사라진다. 정자에 거울이 걸려있다. 그 거울은 단원고 앞 공원에서 가져온 소품이다. 언젠가 그곳에 있던 거울에는 단원고 학생이 맺혔다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Q.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조현철 감독: “사고를 겪고 나서,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정도..”
Q.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인 게 있다면?
▶조현철 감독: “이 영화를 유가족이 봤을 때의 윤리적 책임감을 생각했었다. 저나 피디님이나 그 점을 경계하며 작업을 한 것 같다. ‘과연 이 방식이 맞는지’ 계속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일상의 모습에서 포착한 것이 많다. 놀이터장면에서 할머니와 꼬마가 물구덩이에 빠진 공룡 장난감을 집어 드는 장면이 있다. 원래 아이가 ‘공룡이 빠지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내가 공룡을 구했어’라고 바꿨다.”
Q. 세미를 연기한 박혜수 배우에 대한 논란이 많다. 감독으로서의 입장은.
▶조현철 감독:“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누가 이 사람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오랜 시간을 지낸 친구인데, 나는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할까. 미디어나 인터넷에서는 과장되고 왜곡되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그냥 박혜수가 보여준 모습을 신뢰하려고 했던 것 같다.” (연기는?) “성실하고 헌신적인 리더십을 가진 배우이다. 자기 스스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표현이 안 되는 배우인데 영화 곳곳에서 빛나는 순간을 만들어주었다. 대단한 배우인 것 같다.”
Q. 하은을 연기한 김시은 배우에 대해서는.
▶조현철 감독: “하은을 연기할 배우를 뽑기 위해 정말 오디션을 많이 봤다. 시은씨는 경험을 많지 않았지만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 애드리브할 때난 시선을 두는 것 등이 놀라울 정도였다. 재미있었고, 엄청난 재능을 가진 연기자이다.”
Q.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해’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대상은?
▶조현철 감독: “특정한 대상이 없다. 그 장면은 배우들을 불러다놓고 후시녹음을 한 것이다. 꿈 장면에서 하은이의 얼굴이 친구들의 얼굴로, 많은 사람의 얼굴로 변해간다. 마지막에 보이는 세미의 모습이 제 생각에는 특정한 대상, 세미가 아니라 우리일 수도 있다. 발화하는 대상도, 주체도 없지만 우리 안에 있는 의식 자체로 느껴졌으면 한다. 공간적 요소를 없애기 위해 앰비언스(ambience)를 다 빼버렸다. 그래서 하나의 뭉뚱그려진 심성(心聲)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절친 박정민의 자신의 책에서 조현철 감독을 천재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연기와 연출관에 대해서 말하자면.
▶조현철 감독:“연기는 아직도 두려운 부분이 많다.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현장에서 긴장한다. 저에 대한 이야기를, 저한테 찾아온 것을 대할 때 그렇다. <너와 나>를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 되겠다 확신이 섰을 때는 두려움이나 부담은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Q. 박정민 배우와는 언제부터 친하게 지냈는지. 고등학생때 같이 영화 보러 다녔는지.
▶조현철 감독: “고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영상원 준비하면서 친해졌다. 대학 다닐 때 정민이 집 쪽에 만나 공원에 가서 놀고 그랬다. 그 때 같이 본 영화는 이상한 것도 있었다. <하우스 오브 왁스>같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주먹이 운다>도 보고 그랬다.”
Q.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담으면서 특히 어려웠던 장면이 있는지?
▶조현철 감독: “모든 장면이 그랬다. 기술적으로 볼 때 아이들이 많이 나오고, 샷도 많다.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이걸 다 찍을 수 있을까, 어떻게 효과적으로 샷을 구성할까 고민했다.” (감독님이 너무 샤이한 것 같다. 현장이 제대로 굴러갔나요?) “하하. 다행이 잘 굴러갔다. 촬영할 때가 코로나 시기여서 스태프가 고생을 많이 했다. 길거리 장면 찍을 때. 그리고, 학교와 병원 빌릴 때 힘들었다.”
Q. 연출을 할 때 연기를 한 것이 도움이 되는지.
▶조현철 감독: “물론, 연기한 것이 연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배우마다 특성이 다르고, 현장 분위기가 다르니. 그런 걸 맞춰 연출에 임했다.”
Q. 앞으로 연기활동과 영화감독을 어떤 식으로 해나갈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지.
▶조현철 감독: “제가 계획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앞으로 일이 닥쳤을 때 집중해서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되겠지’는 아니다. 영화는 정말 예상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마음을 열어놓고 대처할 생각이다. ‘당황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Q. 박혜수 배우가 노래방에서 빅마마의 ‘체념’을 부를 때 감정이 가득하다.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현철 감독: “이 영화를 찍으면서 학생들의 구체적인 사연이 있는 이야기를 넣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노래는 희생자 중 한 명인 학생이 즐겨부르던 곡이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노래를 사용하고 싶었다. 노래가 가지는 감정이 있다.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곡이다. 그런데 그 노래를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를 때의 아이러니를 생각해 봤다. 그 슬픔이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그 장면 찍을 때 두 번 정도 부른 것 같다. 나는 배우가 반복적으로 많이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노래 부를 때 현장에서 많은 스태프가 울었다. 촬영감독의 카메라도 흔들린다. 나도 약간 눈물을 훔친 것 같다.”
Q. 영화 속 타임라인은 어떻게 되나. 하루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다.
▶조현철 감독:“마지막 장면은 저녁이 아니고, 약식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하루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일상이 가진 선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 거울 앞에서 서로 머리를 묶어주는 친구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들이 아직도 거기에 있다는 느낌을 살리려 했다.”
Q. 시계 장면이 많이 나온다. 시계 초침 소리도 들리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인가.
▶조현철 감독: “시계 소리는 의도한 건 아니다. 현장에서 찍을 때 마이크로 그 소리가 들어오더라. 그 느낌이 좋아서 기사님에게 녹음을 부탁했다.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사라지고 있고, 지나가고 있고,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절대적인 느낌, 신성함이 느껴졌다.”
Q. 엔딩 장면은?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갈 때 소리가 없는데.
▶조현철 감독:▶조현철 감독: “음악감독의 아이디어이다. 엄청나게 낮은 저음이 깔린다. 그 제안을 주셨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인식할 수 없는 존재이다. 작은 진동 같은 것이다. 생명의 느낌은 끝에 가면 희미해질 테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다.”
Q. 죽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조현철 감독: “정말 한 줄로 설명하긴 어렵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하은이가 울고 있다. 그 친구에게 세미가 다가가서 안아주고, ‘다 괜찮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마음을 주려고 했다. ‘괜찮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Q. 편집을 하면서 덜어내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는지.
▶조현철 감독: “이걸 작업을 할 때 아이들이 움직이고, 사부작거리고, 말을 하고, 웃고울고 하는 것이 모두 다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변화를 주려고 했지만 쳐내는 것에 대해 내가 애정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쳐내지 못한 것이 있는 것 같다.”
Q.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말씀을 해주던가.
▶조현철 감독: “유가족과 시사회도 했고, 지금도 유족과 연락을 하고 있다. 울림이 컸다는 문자도 주셨다. 그리고 이건 슬픈 이야기지만 어떤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상실을 겪은 사람일수록 보편적이 이야기와 이미지에 쉽게 몰입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겪은 일이 생생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 분들이 볼 때 더 감성적인 울림이 큰 것 같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것이다.”
Q. 김희정 감독의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봤는지. 그 영화를 보고나서도 ‘세월호’ 이야기인줄 모르는 사람이 있더라.
▶조현철 감독:“그 영화는 못 봤다. 제가 이 영화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수학여행 전날 여고생 이야기야.’라면 당연히 알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혜수, 김시은이 출연하는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내일(25일) 개봉한다.
[사진=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