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충무로의 미래는 ‘단편영화’에 있다고 한다. ‘십만원비디오제’부터 시작하여 열혈 청년 영화광들의 창작심을 자극하는 영화제가 몇 개 있다. 29일부터는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열린다. 개막작은 ‘독립영화 차기작프로젝트: 인디트라이앵글 제작지원’으로 완성된 <잠시 쉬어가도 좋아>이다. ‘돌아오는 길엔’(감독 강동완), ‘대풍감’(감독 김한라)과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감독 임오정 감독) 등 세 편의 단편이 한데 묶인 것이다. 영화제에 맞춰 KBS의 센스 넘치는 ‘독립영화관’ 담당자가 특별한 작품을 준비했다. 강동완 감독의 전작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가 방송된다. 작년 서독제(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의 내용은 간단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남자가 홍콩으로 무작정 떠났다가 ‘에어비앤비’ 착오로 한 방에 머물게 된 여자와 홍콩을 걷고, 홍콩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독립’, ‘단편’ 영화임에도 ‘무려’ 홍콩 로케이션을 감행한 작품이다.
민규(곽민규)는 여친의 전화로 헤어진 사실을 실감한다. 바람이라도 쐴 겸, 무작정 홍콩으로 떠난다. 허름한 숙소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시은(김시은)이 들어온다. “어, 여기 제가 등록한 방인데...” 그렇게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우리가 ‘홍콩영화’에서 많이 본 홍콩의 거리를 걷고, 우리가 ‘TV먹방 프로’에서 많이 본 음식을 먹으며, 전혀 임팩트가 없는 그런 대화를 나눈다. 캔 맥주를 마시며. 그러다가, 문득 그런다. “그러고 보니 주성치 닮았네요.” “아닌데, 양조위 닮았단 소리 들었는데...” 이때부터 영화를 보던 사람들은 우연한 여행자의 로맨스가 아니라, 남자의 관상에 집중하게 된다. 그가 주성치를 닮았는지, 양조위를 닮았는지.
어느새, 영화는 그 남자의 이별과, 새로운 로맨스의 기대가 아니라 일상의 잔잔한 대화에서 삐져나온 짧은 자아인식의 기쁨을 전해준다. 내가 누군지,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나, 남이 알고 있는 나. 관계와 명제 속에서 인식의 문제를 안겨준다. 홍콩까지 로케이션을 감행한 독립단편영화치고는 꽤나 철학적인 영화이다.
오버하지 마시고. 이 영화에선 홍콩의 제한된 풍광이 나오니 홍콩여행 다녀온 사람들에겐 짧은 순간이나마 즐거울 영화가 될 듯하다. 30일 밤 24시 45분에 방송된다.
참고로, 서독제에서 상영되는 강동완 감독의 신작 ‘돌아오는 길엔’은 다 큰 아들과 딸, 틈만 나면 삐죽대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들이 처음으로 떠난 가족캠핑을 담고 있다.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은 여행이라고. 감독은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면서 생기는 이타심과 그로 인한 걱정들. 그 면면들을 함께 관찰하고 함께 사유(思惟)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참참. 영화 첫 장면에서 민규씨가 보고 있는 비디오는 양조위가 출연한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