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오랜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이나영 주연의 저예산영화 ‘뷰티풀 데이즈’였다. 이나영은 10대의 나이에 북에서 중국 땅으로 넘어온 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20대를 보내고 지금은 한국에 정착한 여인을 연기한다. 어느 날 그에게 뜻밖의 사람이 찾아온다. 14년 전, 훌쩍 떠났던 그곳에 남겨둔 피붙이 아들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엄마를 무척 보고 싶어 해요.”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던 것일까.
감독, 여자의 일생을 이야기하다
윤재호 감독은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프랑스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한 ‘조선족’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단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이야기. 이후 윤 감독은 중국에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북에 넘어온 사람들의 고단함 삶과 선택의 순간들, 그리고 남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에 흥미를 갖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태풍>,<크로싱>, <무산일기> 등을 통해 그들이 여정이, 선택이, 운명이,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파괴되고, 무시 받는지 알고 있다. 윤감독은 그런 삶을 더 처절하게 보여주는대신, 담백한 현실의 삶에 초점을 맞추러한다. 이나영이 두고온 땅의 사람들과, 이나영이 선택한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같이 밥상앞에 둘러앉은 가족이며, 묵묵히 숟가락에 밥을 떠먹는 일상이 있을 뿐이다. 아들은 실로 오랜만에 만난 엄마-어릴 적 기억밖에 없던 엄마-가 남한땅에서 술집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공간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 정착한 북한여인의 삶, 그 아들의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나영, 가족을 이야기하다
이나영은 남편과도(중국의 오광록, 남의 서현우)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장동윤)과도. 넘치는 말과 폭발하는 감정은 가슴에 꼭꼭 담아둔다. 지나간 과거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대신, 감독은 의식적으로 가족의 밥상 풍경을 거듭 보여준다. 중국에선 남편과 시부모와 함께한 식사자리를, 한국에선 불편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밥상자리를 보여준다. 영화에선 ‘나쁜 인간’으로 상정된 황사장(이유준)의 식당모습도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사 중엔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라”라는 말이 있다. 차린 것 없고, 원치 않는, 보잘 것 없는 소반차림이지만.
윤재호 감독은 가장 드라마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미니멀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삶의 무게이고, 감당해야할 선택이다. 관객은 단지 된장찌개를 한술 떠서 밥에 비벼 꾹꾹 삼켜야하는 것이다. 2018년 11월 22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