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으로 쓰인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Rather be Ashes Than Dust)는 잭 런던의 말이다. 친구에게 유언으로 남긴 말이라고도 한다. 잭 런던은 <강철군화>, <야성의 부름>, <마틴 에덴> 등의 소설을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였다. 뒤에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리라
내 재능의 불꽃이 썩어 가루가 된 채
푸석거리는 나무에 질식하느니,
차라리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훨훨 타버리고 사라질 테다.”
이 말은 인간이 가진 불굴의 도전정신을 말하는 경구로 많이 쓰인다. 이 말은 또한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턴이 홍콩 반환 직전인 1996년 시정보고에 사용하기도 했다. ‘1840년 아편전쟁의 결과 영국에 할양되었던’ 홍콩이 (중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영예롭게 중국의 품으로 돌아올 때’ 그들이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이 녹아있다.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서 소개된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의 중국어 제목은 <寧化飛灰不作浮塵>이다. 영화제에 맞춰 부산을 찾은 감독을 만나보았다. 알란 라우(Alan Lau)이다. 중국어 이름을 물어보니, “그냥 알란 라우라 불러주세요. 중국어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아요.”란다. 이전에 소속된 매체 이름도 밝히길 꺼린다. 그냥, ’홍콩인의 시위‘를 기록에 남긴 ’다큐멘터리스트 알란 라우‘로만 기억되고 싶은 모양이다.
이 작품은 홍콩시민혁명, 그러니까 2014년 우산혁명을 거쳐 2019년 ’범죄인인도법안‘이 촉발한 홍콩의 자유화시위를 담고 있다.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는 작년 한국에도 소개된 <시대혁명>(Revolution of Our Times, 時代革命)의 일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당시 홍콩 시민의 열화 같은 자유와 민주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광주 민주화항쟁을 기억하는 한국 관객에게는 작품에 보이는 홍콩경찰의 폭력적 시위진압 모습에 충격을 금치 못할 것이다.
“<시대혁명>과 중요한 사건이 겹친다. (폭력적 시위진압) 지하철 모습과 ‘7.21 사건’이 겹친다. 이 영상을 통해 경찰의 잔인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시대혁명>이 시위에 참여한 홍콩 시민의 관점이라면 이 작품은 제가 기자로서의 관점으로 본 현장이다.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당연한 주장을 전체주의가 억압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이번 작품에서 담고 싶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제가 직접 경험하는 경찰의 잔인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라우 감독은 말한다. 이어 ”정부가 말도 안되는 이유로 언론인 친구들을 체포하고 감옥에 가두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들을 대신하여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리의 양심과 죄책감. 이 영화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감옥에 갇힌 내 친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고 말한다.
제목에 대한 설명도 덧붙인다. “제목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는 작가 잭 런던이 한 말이고, 홍콩의 마지막 (영국)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이 고별사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홍콩 민주화 운동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상이 된다고 생각했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총을 맞아 죽거나, 잡혀서 고통을 맞을 자세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라우 감독은 2020년 7월 홍콩에서 국안법(香港國家安全法/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維護國家安全法)이 통과된 후 홍콩에 다시 갈 수 있을까. ”이후 홍콩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영화가 공개된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국안법에는 명확한 내용이 없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단속될 수도 있고, 사실을 말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백색공포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밝혔다.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에는 홍콩시민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계속된다. 그동안 보아온 홍콩경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서 충격적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홍콩 경찰이 그렇게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본다. 예전의 홍콩 경찰은 친절하고, 좋았다. 하지만 정치적 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했다.
알란 라우 감독은 홍콩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는 홍콩에서 나고 자랐고 이제 40대이다. 내가 자라던 홍콩을 생각하면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였고, 안정과 번영이 자랑스러웠던 홍콩이다. 그곳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었다. 종교적 자유도 있었고. 투표를 통해 어느 정도 민주화가 보장되었었다. 하지만 2021년 국안법이 통과되면서 전체주의가 모든 것을 앗아갔다. 홍콩은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나라가 되었다. 과거엔 자유가 있었지만 이제는 이전과 같은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알란 라우 감독은 다큐멘터리, TV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번 시위를 영상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영화감독,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했다. 사태가 발발되고 나서, 영화를 찍던 모든 사람이 시위현장으로 달려갔다. 시위 현장을 기록하는 것에 집중했다.”면서 “실시간 현장 중계를 했다. 라이브뷰를 하기 위한 장비가 무거웠고, 밧데리 충전을 계속해야 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들고 다니는 게 힘들었다. 마실 물도 중요했다. 화장실도 못 가고 온종일 서 있는게 힘들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것은 방독면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번 작품에서 제3자가 보기에 가장 기이한 장면은 지하철역에서 벌어지는 두 사건이다.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프린스 에드워드역(太子站)에서 발생한 사건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혼돈 속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7.21’도 마찬가지이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이다. 홍콩경찰이 홍콩 정부의 통제권을 벗어나서, 중국의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린스에드워드역 사건은 2019년 8월 31일 발생했다. 한 밤에 시위를 끝낸 시위대가 객차에 올랐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를 외쳤고,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었고 시위진압이 시작되었다. 지하철은 멈췄고, 역사 출입문이 봉쇄되고 폭력적 진압이 시작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7.21 사태’는 무엇인가? “위엔롱역(元朗站)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이곳에서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두 흰옷을 입은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몽둥이를 들고 테러를 저질렀다. 경찰에 전화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경찰 둘이 왔다가 그냥 가 버렸다. 그 장면은 뉴스에서 영상을 가져온 것이다. 그때 현장은 CCTV에, 그리고 현장의 기자들이 찍었다. 물론 그 영상들은 TV에는 나갈 수 없는 것이다. 보안법이 통과되고 미디어가 철저히 통제되면서, 멈춰버렸다.“
위엔롱역에서 벌어진 일은 명확한 백색테러로 보인다. 운동화에 하얀 티셔츠 차림의 사람들은 분명 동원된 사람들로 보이며 비호아래 시위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를 보면, 당시 홍콩의 정부최고책임자였던 캐리 람(Carrie Lam/林鄭月娥) 행정장관의 행보에 주목할 것 같다. 작품에서는 ‘빌런’으로 묘사된다. 시민과의 충돌, 입법부의 혼돈 등을 보여줄 때 여지없이 베이징 스탠스를 유지하고, 강경진압을 주도한다. 지금 캐리 람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숨어있는 것인지 모른다. 관심이 없다. 그 사람은 그냥 중국정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XX같은 존재이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체스판의 말에 불과하다고 본다.”
홍콩은 중국이 되었다. 홍콩시민들도 이제 영국적 사고방식을 버려야하는 것일까. “저는 홍콩이 자포자기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한국에서 홍콩관련 뉴스를 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홍콩의 뉴스가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짜뉴스’가 보이는 게 아니고 좋은 뉴스만 보여준다. 경제도 좋은 것만 보여준다. 당시 거리로 200만 시민들이 나왔다. 700만 홍콩인구 중에 200만 명이! 그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자 길거리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홍콩정부의 이런 통제는 일시적일 것이다. 언젠가는 자유를 회복할 것이라고 본다.”고 희망을 거는 모습을 보인다.
알란 라우 감독과의 인터뷰 말미에 부산영화제를 찾은 홍콩배우 주윤발 이야기가 나왔다. 주윤발은 올해 아시아영화인상 받았고, 기자회견에서 ‘지금 우리(홍콩영화인)에겐 제약이 매우 많다. 영화 제작자들이 무척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홍콩의 영혼이 담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는데 그게 중화권에도 인용보도 되었다가 일부 영상이 삭제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일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 그래요? 주윤발 배우 멋있네요. 중국의 그런 반응이 놀랍지 않다. 그런데 주윤발 배우가 작품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덧붙인다.
알란 라우 감독은 차기작은 다큐가 아니라고 한다. “픽션을 제작할 것이다. 복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싸운다는 것은 비슷하다. 작품 때문에 나라를 떠나야한다는 것이 슬프다.”고 덧붙인다.
알란 라우 감독은 인터뷰가 끝난 뒤, 기사를 마감한 뒤 이메일을 통해 다음과 같이 부산영화제에서의 경험을 전했다. “첫 번째 GV때 한국관객들의 반응에 놀랐다. 한국 관객들, 특히 젊은 관객들이 홍콩 문제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3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감동받았다. <먼지가 되느니 재가 되리>는 모든 상영 회차가 다 매진되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 영화는 현재 홍콩에 살면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며, 그들의 간증이다. 전체주의 정부가 우리의 집과 표현의 자유를 빼앗더라도, 그들은 우리의 자부심과 역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싸우는 이유에 대한 기억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며 “한국 관객들이 시위과정에 있었던 홍콩 경찰들의 만행이 어떠했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젊은이들의 희생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일은 홍콩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란에서도, 1980년 한국의 광주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여성들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용감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밝힌다. 관객들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투쟁에 이들 젊은이들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이날 인터뷰에는 프로듀서 'A'와 감독과 함께 촬영을 도운 이태리 사람 '로베르토'(Roberto)가 자리를 함께 했다.
[글/사진=박재환/ 부산국제영화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