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배우가 돌아왔다.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밀정>의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에서 김열 ‘영화감독’을 연기한다. <거미집>은 1970년대 충무로영화계의 속살을 다룬다. 첫 작품을 어떻게 성공했는지 의문스럽게 계속 삼류 치정극을 만들던 김열 감독은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한다. 방금 찍은 저 작품, 마지막 장면만 조금 고쳐 찍으면 정말 걸작이 될 것이라고. 그래서 촬영 종료한 영화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시작된다. 제작사 대표 눈치도 봐야 하고, 콧대 높은 배우들 다독여야 하고, 서슬 퍼런 검열관의 눈도 가려야 한다. 어쩌면 김지운 감독의 영화열정을 송강호 배우가 대신 스크린에서 불사르는 것 같다. 송강호 배우를 만나 <거미집>과 배우의 연기열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영화는 27일 개봉된다.
Q. 개봉 앞둔 소감부터.
▶송강호: “<거미집>은 그동안 흔히 보던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찍을 때부터 새로운 영화라는 점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런 영화가 있었어?’하며 낯설어할 것 같다. 생소하지만 매력이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이게 진짜 영화지!’라는 느낌을 주었으면 한다. OTT와 드라마 등 여러 콘텐츠가 있지만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개봉 후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할지 기대가 된다.”
Q. 정우성 배우는 최근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극중 영화감독으로 깜짝 출연하기도 한다. 김열 감독을 연기해 보니 어떤가. 영화감독의 꿈은 없는지.
▶송강호: “전혀 없다.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데, 영화감독은 아무나 하는 작업이 아니다. 재능도 있어야하고 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저는 배우하기에도 벅차다. 훌륭한 감독들 많으시니 그런 일은 감독님께 맡겨야 한다.”
“영화 속 역할이었지만 영화감독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30년 가까이 카메라 앞에만 있다가 뒤에 가만히 앉아 배우들 고생하는 것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기대했다. 영화 속 영화배우가 너무 멋있게 보였다. 연기를 잘하기도 하고, 흑백이어서 너무 멋있었다. ‘나도 저쪽에 들어가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저도 잠시 대역을 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김열 감독에게는 고통, 고뇌가 있다. 뭔가 자기의 존재감을 보이고 싶어 하지만 말처럼 쉽게 되는 게 아니니까. 그런 고민과 창작의 고통은 모든 영화감독들이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그걸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았다. 결코 쉬운 직업, 쉬운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 절절히 느꼈다.”
Q. 극중에서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품는 대사가 있다.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는 감정이 실렸을 것 같다.
▶송강호: “사실은 그 말은 김열이라는 특정 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누구든지, 아마 김지운 감독도 그러할 것이다. 평생 영화감독으로 살아오면서 그런 고충이 왜 없었겠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느낌이다. 꼭 김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Q.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인간 욕망에 대한 우화’라고 말했다.
▶송강호: “영화에서 김열 감독은 작은 욕망이 있다. 결말을 조금만 바꾼다면 걸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치정극이나 만드는 삼류감독이라는) 손가락질도 받지 않을 것이고, 자기만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는 그런 욕망에서 시작한다. 감독으로서 갈등을 겪고 설득해야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배우나 제작자들도 사실은 각자의 작은 욕망이 있다. 개인의 사랑 문제라든가, 제작자로서 제작비 조달문제, 그리고 검열의 문제 등이 마구 뒤섞인다. 그런 것이 끝에 가서 기괴하게 끝을 맺는다. 그걸 바라보는 김열 감독의 표정은 또 어떤가. 모든 소동을 끝내고 만족하는가? 여전히 불만족스러운가. 알 수 없다. 오묘하게 끝나는 것이 마침표 없는 인간의 욕망 같았다. 이런 것들이 욕망의 카르텔 속에서 끊임없이 허우적대는 인간의 모습 같다. 우리의 모습이 간접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지독한 우화라고 말씀드린 것이다.”
Q. 처음 <거미집> 대본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배우의 욕망이 있었다면.
▶송강호: “저도 <거미집>을 선택할 때에 똑같은 지점이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영화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을까. 고인 물이 아니라, 작지만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가는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의 욕망은 영화제에서의 상이 아니다. 나아가는 배우의 모습이다. 그로 인해 탄생되는 결과가 어떠할지를 떠나, 새롭게 시도하려는 작품, 자체가 송강호의 욕망이었다.”
Q.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송강호: “촬영장에서 강호세 배우(오정세)와 같이 숨어 있다가 둘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 순수한 것 같다. 김열은 거대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밖에 없다’고 호세에게 말하는데 그게 김열의 진짜 순수한 욕망 같다. 거창하고 복잡할 것 같지만 의외로 순수하고 단순한 것이 인간의 욕망 같다.”
Q. 김지운 감독과는 다섯 번째 만남이다. ‘조용한 가족’(1998)이후 25년, <밀정>(08) 이후 오랜만이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 배우에게서 무엇을 제일 잘 뽑아내는 것 같은가.
▶송강호: “그 질문은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의 경우와 같이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은 저의 연기를 보고 ‘께름칙하다’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오래 전 제가 출연한 연극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깨끗하지 않다는 거도 아니다. 자기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항상 다르게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안하니까 ‘께름칙하다’고 말한 것 같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한 것 같다. 25년 동안 다섯 편을 함께 작업하면서 항상 ‘께름칙한 관계’였다. 감독은 항상 께름칙한 것을 기대하고, 배우는 께름칙한 것을 더 께름칙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그런 만남의 연속이었다.”
Q. 김지운 감독은 배우들에게 가혹할 정도로 영화에 몰입한다는데.
▶송강호: “김지운 감독만이 아니다. 모든 감독님들이 열정적이고 집요하다. 아마도, 한국영화산업에 있어서 김지운 감독의 <놈놈놈>이 그런 혹독하게 영화현장이 돌아가던 마지막 작품이 아니었을까 한다. 영화현장, 생태계는 많이 바뀌었다. 이젠 그렇게 찍으려야 찍을 수 없다. 그게 오명인지, 특징인지 모르겠다. 김지운 감독은 여전히 집요한 면이 있다. 예전처럼 현장에서 이것저것 끝까지 해보며 창의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지금은 그런 환경이 못 된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콘티도, 동선도. 현장에서 배우와 같이 실험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베스트를 가지고 와서 만나는 것이다.”
Q. 거장 김지운 감독이 연기의 달인 송강호에게 연기 디렉션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송강호: “디렉션을 한다. 김지운 감독님은 저하고는 말을 많이 안한다. 하지만 연기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는 집요하게 말씀해 주신다. <거미집> 초반에 많이 말씀해 주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표현을 안했지만 두어 번 촬영할 때 그런 일이 있었다. 이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일반적인 드라마트루기를 가진 게 아니라서. 이 영화만의 리얼리즘을 내가 초반에 만들어야하는데 쉽지가 않았다. 초반에 감독님이 잡아주었다.”
Q.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거듭 보는 편인지?
▶송강호: “배우들 중에는 자기 작품을 보는 사람도 있고, 못 보는 사람도 있다. 저는 제일 안보는 편이다. <설국열차>때 크리스 에반스가 자기 작품을 못 본다고 하기에 이유를 물어봤었다. 부끄러워서 못 보겠다더라. 그때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TV로 우연히 내가 나온 작품이 나오면 끔직해서 채널 돌린다.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못한 것만 보이는 것 같다. 데뷔 초기부터 그랬던 것 같다.”
Q. 내달 열리는 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부산영화제와의 인연을 말하자면.
▶송강호: “올해로 부산영화제가 28년을 맞았다. 저의 영화 데뷔와 엇비슷하다. 그동안 부산에서 두 번의 사회를 봤었다. 초반에 한 번, 20주년 때 한 번. 이번엔 부산국제영화제가 비상체제이다. <거미집> 행사도 있어서 내려가야 하니. 이틀 먼저 내려가는 것이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다 극복하고, 새로운 쇄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할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도움이 되려고 한다. 제가 나온 영화로는 <초록물고기>때 처음 갔었나? 잘 기억이 안 난다. 초창기부터 계속 참석했던 것 같다.” (부산영화제의 앞날은?) “그럴 말을 할 위치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다. 어찌 되었든 비가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좀 더 젊고, 활력 넘치는, 세계적 영화제로 발돋움 할 수 있기를 바란다.”
Q. 연극무대에 다시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송강호: “영화를 하면서 연극을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버렸다. 지금은 연극에 대한 생각이 희미해진다. 용기도 안 나고. 좋은 기회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단절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야..”
Q. 한국영화가 격변기에 휩싸인 것 같다. 영화인으로서 어떤 마음인지.
▶송강호: “그래서 <거미집> 같은 영화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콘텐츠가 너무 많다보니 쉽게 본다. 손쉽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할 것이다. 도전하고, 좌절하더라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다양한 영화가 나와야 할 것이다. ‘이게 영화지!’라는 작품. 그래야 또 다른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Q. 드디어 드라마에도 출연한다.
▶송강호: “지금까지는 영화이야기를 했지만 이 드라마 공개되면 반대되는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 하하하. 영화와는 다른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만날 것이다. <삼식이 삼촌>이다. 저는 오티티를 많이 보지 않지만 요즘 트랜드와는 다른 결이 있다. 자극적이고, 한순간에 시선을 끌어야 하는 기존의 OTT작품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좋아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지점이 좋았다.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긴 호흡, 끈끈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송강호가 출연한 작품 중에는 스포츠(배구) 영화 <1승>이 있다. 함께 출연한 박정민 배우는 최근 <밀수> 인터뷰 때 ‘30대 송강호’라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에 “본인이 들으면 싫어할 것 같다‘고 말했단다. 이에 대한 본인(송강호)의 반응은 어떨까.
”하하하. 언제 개봉할지는 모르는데 스포츠영화를 같이 했다. 진짜 연기 잘하는 배우이고, 너무너무 태도가 훌륭하다. 연기를 너무너무 잘하는 박정민 배우가 오히려 그런 비교를 싫어할 것 같다. 나는 그 기사 보고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겨우 송강호야?‘라고. 박정민 배우의 속은 그렇지 않을까요? 너무 연기를 잘하는 배우입니다. 하하하..“
유쾌하게 후배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한 송강호는 ”<거미집>같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영화든 드라마든, 그런 작품을 찾아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사진=바른손이엔에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