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은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인터뷰하면 할수록 매력적인 배우이다. 곧 개봉하는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은 ‘서울대 출신’의 변호사를 연기한다. 40년 전 속초 영랑호에서 함께 물고기 잡던 친구들이 이제는 번듯하게 커서 오랜만에 부부동반으로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다가 문제의 핸드폰게임을 펼치게 된다. 오는 전화, 문자, SNS를 다 공개하자고. “친구사이에, 부부사이에 비밀이 어딨어~”라며. 과연 그럴까. 위험한 게임이 시작된다. 개봉을 앞두고 유해진 배우를 만나 영화 <완벽한 타인>과 사인(私人) 유해진에 대해 알아보았다.
“저는 영화 ‘해적’에서의 철봉이 같은 캐릭터가 어울리는 것 같다”며, “서울대라니... 뭐, 저도 서울대긴 하죠.“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유해진은 감독에게 극중에 등장하는 ‘서울대’ 대신 그냥 ‘명문대’라고 바꾸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완벽한 타인’은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영화판으로 옮겨온 뒤 <역린>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영화이다. 유해진은 이재규 감독에 대한 인물평부터 했다. “내 분량 다 찍고 감독님 촬영하는 걸 뒤에서 지켜봤다. 모니터 앞에서 체크하는 모습이 좀 짠하더라. 그래서 그날 ‘고생하셨다. 수고했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오더다. ‘선배님도 고생하셨다’는. 좀 형식적인 답변이었다. 그런데 조금 뒤 문자가 한 번 더 왔다. ‘왜 그런 얘기를 했냐. 그 자리에서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가 추운 겨울이었는데 거기서 문자를 받고 울고 있었던 거다. 참 애잔하더다”며 이재규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유해진은 ‘완벽한 타인’에서 권위적인 가부장/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변호사 태수를 연기한다. 아내 역은 염정아가 연기한다. “영화니까 그런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대나 윗세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이런 이야기가 관객들에게는 자신들이거나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것 같았다”고 자신의 캐릭터를 소개했다.
물론, 권위적인 남편 모습이지만 ‘유해진다운’ 구석이 엿보인다. 염정아는 그런 모습을 ‘정말 ‘츤데레’같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유해진은 “하나의 모습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식사자리에서 아내에게 음식을 권하고, 친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등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마냥 권위적인 것처럼 보인다면 그런 캐릭터에 정이 안 갈 것이다.”
염정아와의 연기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염정아 씨가 되게 잘해줬다. 결혼해서 살다보니 (극중 나 같은) 지랄맞은 남편과 사는 노하우가 생긴 모양이다. 덕분에 너무 편하게 촬영했다.”
극중에서 베테랑 배우들이 완벽한 만찬을 즐기면서 끝없이 수다를 펼친다. 애드립의 향연이 펼쳐졌을 듯한데. “애드립은 별로 없었다. 대신 상황을 만든 것이 많다. 극이 덜 지루하도록. 감독님과 상의하며 상황을 만들어 나갔다.”어떤 것? “예를 들어 ‘커피’라는 말 대신에 ‘둥글레차로 하자’ 그런 식이었다. 갑자기 반짝인다고 내던지는 대사는 상대배우에게 대한 매너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 좋은 생각이 나면 촬영 전에 의논한다. ‘난 이렇게 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어떠니?’라고. 그런 합의를 하고 나서 한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고 배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깜짝 놀랄 장면을 소개한다. “윤경호 씨랑 베란다에서 얘기할 때 사진 보내오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 12살 차이가 난다고 하고선, 그 다음 말은... 사실 내가 생각한 것이다.”고 밝혔다. 아마, 이 장면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웃음을 터뜨렸을 것 같다.
이재규 감독의 ‘완벽한 타인’은 리메이크 작품이다. 이탈리아 코미디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를 한국적 상황으로 바꾼 것이다. 유해진은 ”원작은 사실 우리한테 안 맞는 것 같다. 핸드폰게임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게임을 왜 하고 앉아 있나?’며 그만 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작품에서는 이서진의 말 한 마디에 게임을 이어간다.“ 이때 이서진이 한 말은 ”뭘 그만 둬. 넌 그게 문제야“라고.
이번 촬영은 배우들과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었다고 말한다. “앙상블이 잘 맞았다. 몰랐던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좋았다. 이서진 씨는 까칠하고 바른말만 하는 사람으로 보았는데 함께 찍다보니 마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윤경호 씨는 좋은 에너지를 가진, 인간성도 좋은 배우이다. 염정아 씨는 언제나 그랬듯이 똑 부러지게 연기해줘서 너무 편했다.”
유해진은 이 영화를 본 뒤의 감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을 잠깐은 속일 수 있어도 결국 드러나고 마는 인간의 못돼먹은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면서 "사람과의 관계도 반추해보게 된다.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잖은가. 작은 일이라면 그냥 묻어두고 사는 것이 좋은 게 아닌가 생각도 해봤다.”고 덧붙였다.
이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유해진은 조금은 야성적인, 조금은 깔끔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지금 촬영 중인 작품의 ‘현장성’을 대변하는 듯. 얼마 전 ‘말모이’ 촬영을 끝내고 현재 ‘전투’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고. 한국전쟁이 아니다. ‘봉오동 전투’를 그린다고.
단역에서 출발하여 오늘의 자리에 오른 유해진은 이제 ‘꼰대’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되었단다. “저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는 거 같기도 해서 걱정된다.”고 솔직히 밝히기도.
이날 유해진은 “자신의 이름 앞에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었을 때 어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와인 마시고, 클래식 듣고, 책 많이 읽는 호감형 배우’라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이렇게 응답했다. “사람들은 제가 책을 많이 읽고, 클래식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저는 와인보다 소주를 좋아한다. 그리고 책 본지도 오래되었다. 시나리오만 본다. 제가 그렇게 고급진 이미지는 아니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클래식이야 무슨 제목인지도 모르지만 다들 라디오 93.1 틀어놓지 않냐?"라며 "좋게 봐주시는 건 감사하고 어느 부분은 그런 게 맞는 것 같다."고 덧붙인다.
유해진은 자신의 영화가 개봉되고 삼청동 카페에서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면 즐겁다고 한다. “인터뷰 하다 쉬는 시간에 이 근처를 걷는다. 갤러리가 있으면 들어가 보기도 하고 그런 다."
핸드폰 이야기가 나와서 배경화면이 뭐냐고 물어보니, 직접 보여준다. “어제 아침에 바꿨다. 아스팔트를 뚫고나온 국화꽃이 보이기에 찍어뒀다. 너 어쩌면 이렇게 예쁘니하고 찍었다". 참 감성적인 중년배우이다. 핸드폰 뒷면에 베어먹은 사과로고가 보였다. <완벽한 타인>은 31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