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같은 과학자, 트루먼 같은 정치인, 그리고 여기에 히틀러 같은 적(敵)이 있을 경우, 지구는 굉장히 불안정할 것이다. (원자핵처럼 말이다) 지난 달, 광복절에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다양한 레이어의 감상을 안겨준다. 놀란 감독은 ‘지구인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여러 요인 중에 ‘핵문제’를 내놓았고, 그 이야기를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불안정한 세계촌을 그린다. 이제 “칼을 휘두른 사람을 단죄해야지, 칼을 만든 사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후쿠시마 앞 바다의 삼중수소에까지 이어질 원죄론을 살펴보자.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유태인으로서의 자부심이나, 정체성은 별로 보여주지 않고, 미국인으로서의 자유와 세계인으로서의 학자적 자질을 보였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맘껏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도 여기저기 다니며 배우고 싶은 스승 밑에서 말이다. 그 과정에는 하버드부터 시작하여 영국 캠브리지도 있고, 독일 괴팅겐도 있다. 그는 1920년대부터 과학 선진국에서 쏟아지는 온갖 새로운 학설과 폭발하는 과학탐구의 수혜자였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부터 수많은 원자분자 양자역학과 실험물리학을 통해 우주창조의 블랙홀에서 지구파괴의 핵분열 실험실 문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히틀러의 시대. 미국은 히틀러의 다음 무기가 심히 걱정이었다. 히틀러가 핵분열을 통한 새로운 무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초비상이었고, 히틀러보다 먼저 그것을 손에 쥐려고 안간힘을 쓴다. 방법은 최고의 두뇌들을 비밀공간에 집결시켜, 풍부한 국부(國富)로 단기간에 그 신무기를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맨허턴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핵개발계획은 미 육군 공병대의 글로브스 장군이 전격전이라도 치르듯 밀어붙인다. 그런데 ‘과학인재는?’ 그것은 학자 오펜하이머의 몫이 된다. 오펜하이머는 이 위험하고, 복잡하고도, 알 수 없는 미래무기의 전 과정을 지켜볼 위치에 있을 만큼 능력자였다. 물론, 그에게 따라붙는 표찰이 있다. ‘햄버거 가게도 운영 못할 사람’, ‘노벨상도 못 받은 학자’라고. 오펜하이머는 그런 세평을 날려버리 듯 개발의 전 과정에 관여하며 필요한 모든 학자들을 끌어들여, 적재적소에 투입한다. 오펜하이머는 그들의 학구열을 북돋우고, 그들의 필요사항을 단숨에 해결해준다. 물론, 그 뒤에는 미국정부의 은밀한 공산분자 색출이라는 레이더망이 가동되고 있었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학자’ 오펜하이머를 선택한 것은 책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매력적 이야기에 크게 기댔을 것 같다. 카이 버드와 마틴 셔윈은 이 책을 통해 불온한 시기의 위험한 학자를 통해, 엄청난 원폭의 발명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낸다. 놀란 감독은 놀랍도록 효율적으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텍스트의 복잡성, 인물의 불안정한 모습을 영상으로 재현한다. 영화는 한 편으로는 연대기처럼 인물의 족적을 따라가고, 스파이물처럼 음모론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개의 청문회를 병치하며 미국 정가의 뿌리 깊은 이념논쟁과 정치싸움을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하는 무기의 비극적 미래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를 몇 차례씩이나 전멸시킬 수도 있는 최악의 핵무기 개발레이스를 염려한 것이다. 로스알라모의 원폭실험 성공 전에는 “우리가 먼저!”였고, 그 과학적 성과를 기반으로 소련과의 군축회담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무기의 개발은 미국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과 말싸움을 할 때 “내 책상에는 더 큰 핵 버턴이 있어!”가 말해주었듯 말이다.
영화는 히틀러의 신무기에 대한 공포만큼이나 공산세력의 확산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체제의 위험이오, 미국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FBI도, 백악관도, 미국 대학도 모두 공산당의 침투와 확산을 기를 쓰고 막으려고 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적에 대한 공격성, 그것도 압도적 공격성’으로 구현된 것이 핵무기인 셈이다.
오펜하이머는 그 개발의 여정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자전거 페달을 계속 돌려야하는 것이다. 트루먼은 세상의 절반의 사람들, 아니면 적어도 미국 그들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이기에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피는 내 손에 묻었는데, 무슨 학자연하며 징징 대냐?”고 할 것이다. 뛰어난 과학자에게는 원자를 쪼개고, 중성자를 박치기 시키고, 사막에서 불꽃놀이할 수 있는 자유만이 주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과학자의 딜레마인 셈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다.
▶오펜하이머 (Oppenheimer)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킬리언 머피(오펜하이머), 에밀리 블런트(캐서린 오펜하이머), 맷 데이먼(레슬리 그로브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루이스 스트라우스), 프로렌스 퓨(진 태틀록), 조쉬 하트넷(어니스트 로렌스), 케이스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2023년 8월 15일 개봉/180분/ 15세이상관람가
[사진=유니버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