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너의 시간 속으로>는 대만 드라마 <상견니>(2019)의 한국 리메이크 작품이다. 가가연, 허광한, 시백우가 출연했던 <상견니>는 일명 ‘상친자’를 양산할 만큼 매니아의 사랑을 받았다. ‘타임슬립’을 활용한 로맨스물이면서 판타지에 미스터리, 스릴러가 혼합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리메이크된 <너의 시간 속으로>는 안효섭, 전여빈, 강훈이 두 개의 시간대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음을 막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위해 애타게 달려간다. 전여빈은 2023년의 직장인 한준희와 1998년의 여고생 권민주를 연기한다. 같은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인물을 탁월하게 연기한다. 다음 주 기대작 <거미집>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전여빈 배우를 만나 ‘너의 시간 속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하게 공개되었다. 반응을 살펴봤는지.
▶전여빈: “아직. 영화 <거미집> 홍보도 같이 하고 있어서 <너의 시간 속으로> 반응을 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야 한 차례 정주행을 마쳤다. 두 번 정도는 봐야할 것 같다. 그래야 객관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건강한 마음으로 반응을 받아들이고 싶다. 칭찬이든, 조언이든 말이다. 지금은 건강하게, 거리를 두려고 한다. 지금 해야할 일들이 있으니까.”
Q. 작품을 보고 나면 ‘1인 2역’이 아니라, ‘1인 3역’ 같다. 권민주, 한준희, 그리고 민주의 몸에 들어간 준희까지. 인물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전여빈: “나는 텍스트, 대본에 충실한 배우 중 한 명이다. 대본에서 느끼는 인물에 집중하려고 했고, 대본 자체가 인물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나눠져 있었다. 준희가 30대이든, 20대이든, 학생인 민주, 그리고 그 몸에 들어간 준희까지. 대본에 상황이 너무 명징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서, 그걸 잘 따라가면 되었다. 대신, 시간 순으로 찍는 게 아니니, 왔다갔다 했다. 그게 모두 저라는 사람 한 몸으로 해결해야하는 것이어야 했다. 모니터하는 감독님께 매 테이크 의견 나눴고, 자주 여쭤보았다. 감독님과 표현에 대해 일치하는 편이었다. 그런 믿음으로 하루하루 쌓아나간 것이다. (안)효섭씨는 1인 6역이라고 할 수 있다. 12부를 정주행하고 느낀 것은 안효섭, 강훈, 박혁권, 장혜진, 민진웅 선배와 함께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감사함이 크다.”
Q. 교복을 입어서 그런지 예전에 출연했던 영화 <죄 많은 소녀>도 생각난다.
▶전여빈: “같은 학생 소녀지만, 완전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두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것은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완전히 다르게 보았다. 그 영화가 제 마지막 교복 차림 출연작품이었다. 이번에 교복 피팅하면서, 눈을 반쯤 감고 나 스스로 ‘나는 고등학생이다’라고 되뇌었다. 안효섭도 강훈도 같은 또래여서 같이 라면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고, 우리끼리 우리의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Q. 원작인 대만드라마 <상견니>는 봤었는지.
▶전여빈: “몇 해 전 <상견니>가 공개되었을 때 재밌게 본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된다고 했을 때 누가 하게 될까 궁금했었다. 그 때는 ‘내가 해야지’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 제게 그 작품이 와 주었다. 막연하게 좋아하던 마음에서 기꺼이 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리메이크 작품인 만큼 우리만의 또 다른 색깔로 채워 넣으며 해석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면서 부담감이 생겼다. <상견니>는 첫사랑을 대하듯이, 보물처럼 소중하게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혹시나 함부로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추억으로 안겨드리고 싶었다. 그런 고민 때문에 이 작품을, 이 역할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받아들인 과제이니만큼 책임감을 갖고, 좋은 책임감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려가게 하고 싶었다.”
Q. 2023년의 한준희와 1998년의 권민주를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각 인물에게 공감한 키워드 같은 게 있었는지.
▶전여빈: “준희와 민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이었다. 어떤 인물을 키워드로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하나의 단어로 설명해버리면 그 인물이 납작해지는 것 같아서 경계하는 편이다. 대신, 그 사람을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신 바이 신으로 상상하며 채워나가려고 한 것 같다. 그 둘의 차별점이라기 보다는 내가 느끼기에는 민주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 준희는 사랑이 소중한 사람 같았다.”
Q. 첫사랑의 이야기이다. 전여빈 배우는 이 작품을 보면서 옛 추억이 떠올랐는지.
▶전여빈: “저는 언제나 ‘Now id Good’이다. 인생 모토 자체가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제일 중요하다. 지나간 시간보다 앞으로 올 시간이 더 중요하다. 저에겐 첫사랑은 지나간 사랑이고, 지나간 추억이다. 앞으로 다가올 사랑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멋진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Q. ‘한준희’와 ‘구연준’을 보면 운명이란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전 배우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여빈: “글쎄 운명이란 것을 믿고 싶지는 않다. 운명은 개인의 의지가 무력화될 수 있잖은가. 지금 이 순간 애쓰면서 살고 있는데 운명이 있다면, 노력이 상관없을 수도 있으니까. 만약 운명이 있다면, 하늘이 좋은 쪽으로 인간을 도와주려고 한다면야. 꼭 구해줘야 할 때 구해주는 그런 운명이라면 좋겠다. 우리 드라마에 쓰인 OST ‘네버엔딩스토리’ 가사가 그렇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인간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런 운명이 도와주면 좋겠다.”
Q. 전여빈의 의지는? 어려운 일과 마주치면 어떤 마음으로 극복하는지.
▶전여빈: “생각해보니 저는 매 순간 약하고, 매 순간 강해지는 것 같다. 그런 믿음이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쓰러지는 날에도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 마음. 스스로에게 대한 믿음일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함께 해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생각해야한다.”
Q. 이번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는지. 서로 다른 역할을 연기해야하는데.
▶전여빈: “그런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그 역할을 하려고 들어왔고, 배우로서 표현하려는 갈망과 연결되는 것이니. 제가 마땅히 감내해야하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고통이며, 인내의 순간이니까. 내가 넘고 싶은 허들인 것이지 못 넘을 장애물은 아니었다. 넘겠다는 의지가 있으니까.”
Q. 준희는 상실의 아픔, 민주는 자기연민의 아픔이 있다. 누구의 아픔에 더 경도되었는지.
▶전여빈: “둘 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슬픔, 혹은 고통은 타인이 쉽게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각자 고유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거 힘든 것 아니야’라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더군다나 두 캐릭터는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며 연기해야했다. 정말 과몰입하며 연기했다.”
Q. 장발이 된 40대 안효섭의 모습을 보니 어땠나.
▶전여빈: “효섭 배우 자체가 실제 만나면 훤칠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촬영 당시 40대 모습을 봤을 때도 ‘저 코트 잘 어울린다. 긴 머리도 잘 어울린다. 저런 중후한 느낌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감독과 배우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 친구가 오랜 시간을 거치며 견뎌내야 했을 고독이나 외로움, 그 시간들을 통과했을 마음들이 외적으로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댄디하고 멀끔한 모습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충분히 납득했었다. 효섭씨가 시헌이로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많은 삶을 살아야 했으니, 1인 6역으로 다른 시간을 채웠을 때 다른 멋있는 모습이 많았으니, 그렇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안효섭, 강훈과의 현장 케미는 어땠는지.
▶전여빈: “강훈이 안효섭보다 형이다. 효섭씨는 또래에 비해 성숙해 보이고 어른스럽다. 그런데 현장에서 불쑥불쑥 소년미가 나온다. 강훈은 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개그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개그본능이 넘치는 사람이다. 개그감각과 함께 마음이 깊은 사람이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는 김진원 감독이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이 돋보이는 어른이었다. 스태프와 배우 한 사람 한 사람을 동료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시는 분이다. 저도 나중에 저런 소통의 자세를 가진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타임슬립할 수 있다면?
▶전여빈: “저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 그래도 한다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가보고는 싶은 마음은 있다.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시간으로. 그래도 결국에는 현재가 제일 좋다.”
Q. <너의 시간 속으로>의 엔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여빈: “어떤 작품을 보면서 ‘엔딩은 이래야 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게 해피 엔딩이든 새드 엔딩이든, 열린 결말이든 닫힌 결말이든 말이다. 이번 작품에서 준희와 민주, 시헌, 인규는 정말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사랑을 절대 놓치지 않기를. 그 친구들이 머무는 시간 속에서 온전히, 완전히 행복하기를 원했다. 해피엔딩으로 꽉 닫힌 것이 너무 좋았다. 오롯이, 한 치의 여지도 없이 행복하게 방어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결말이 굉장히 기쁘다.”
Q. <너의 시간 속으로>에 이어 곧 영화 <거미집>이 개봉된다.
▶전여빈: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었다. 4,5,6월 석 달은 겹쳤다. <거미집> 먼저 시작했었다. 제 몸은 하나여서 체력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있었다. 세트들이 떨어져 있었고, 전국을 돌아다녀야할 상황이었다. <거미집>이 공개되면 아시겠지만 그 인물은 또 다른 온도에 있는 사람이다. <거미집>의 미도가 트로트 같다면, <너의 시간 속으로>의 준희와 민주는 클래식 같기도 하다. 전혀 다른 장르의 인물이어서 오히려 표현하는 배우로서는 용이했던 것 같다. 구획이 정확히 그어지니까.”
Q. 타임슬립 이야기이고, 시간구성이 복잡하다. 원작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혹시 시간표 그려가며 봤었는지.
▶전여빈: “원작인 <상견니> 볼 때 그랬었다. 모두들 어려워하는 구간을 저도 이해하지 못해 블로그 보며, 추리하며 보았다.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타임라인을 정리하려고 한 노력이 느껴졌다.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 충분히 인지하고 연기했다. 그래서 어렵지는 않았다. <상견니> 통해 충분히 고뇌해 봤었고, 감독님이 타임라인 표를 짜서 설명해 주었고, 저희끼리 상의하기도 했다.”
Q. 제일 재미있었다거나,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 있다면.
▶전여빈: “제일 마지막 장면. 현재의 모습이다. 민주가 인규랑 학교 운동장에서 대화 나누는 순간이랑 준희가 시헌이랑 버스에서 같이 내리는 장면. 눈이 내리고 서로 마주 보는 모습이 좋았다.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일맥상통하는 장면 같았다. 굳건한 해피엔딩이라 더 좋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거의 끝에 찍었다. 뭔가 이 작품을 떠나보내는 것 같았다. 정말 많이 사랑한 작품 같다. 그런 마음으로 찍어서 유독 애틋하게 그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Q. ‘운명적인 사랑’ 같은 것을 믿는 편인지.
▶전여빈: “이 작품은 보시는 분들에게 받아들이는 감정이 열려 있다고 본다.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제가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의 사랑은 무엇이냐고.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저의 마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하하.”
Q. 학창시절이 떠올랐는지. 혹은 이 작품을 하면서 떠오는 추억의 장소가 있는지.
▶전여빈: “갑자기 대학시절 연극하던 때가 생각난다. ‘젊은연극제’라고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각 대학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모여 축제를 할 때가 생각난다. 각자 학교 대표로 모여, 공연준비를 했다. 여름이었던 것 같다. 엄청 더웠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천막으로 뛰어들었었다. 그 장면이 청춘의 한때로 남아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축제를 즐기는데 천막에도 빗물이 쏟아졌고, 다른 데도 도망가던 기억. 그 시절 하던 노력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인간은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네요.”
“애를 쓴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니까 오히려 마음을 담담하게 먹으려고 한다. 들뜨지 않고, 앞을 직시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아끼는 사람으로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진하고 깊은 호흡으로 이 생활을 꾸려나가고 싶다. 마음도 그렇고, 제 시선도 길게 멀리 보려고 한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고, 산을 보고, 큰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