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금)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 2018의 여섯 번째 작품은 ‘이토록 오랜 이별’(연출:송민엽 극본:김주희)이었다. 송민엽 연출은 올 시즌 세 번째 작품 ‘참치와 돌고래’도 연출했었다. ‘참치와 돌고래’가 동네수영장을 배경으로 강사와 수강생의 예측가능한 로맨스를 그렸다며,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와 편집자의 예측불가능한 로맨스를 다룬다.
임주환은 극중 작가 배상희를 연기한다. 소설데뷔작 <새들은 썸머타임>으로 신인작가로서는 경이적인 50만부 발행과 함께 출판사에 차기작을 입도선매 계약한 상태이다. 그의 새 책을 담당하는 출판사 직원(정이나)은 장희진이 연기한다. 현재 둘은 연인사이로 동거중이다. 출판사는 전도유망한 배상희 작가에게 1억원이라는 거금의 계약금을 지불한 상태이지만 지난 5년 동안 신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출판사 대표는 정이나에게 점점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정이나는 작가를 사랑하고, 자신의 일도 사랑한다. 책을 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잘 알기에 ‘신작’을 마냥 채근할 수도 없다. 어느 날 출판사창립기념식장에서 갈등이 폭발한다. 작가가 신작을 내지 못하는 이유, 연인이 결혼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 출판사와 작가가 마냥 좋은 결과로 끝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다.
작가가 글을 못 써서 머리를 쥐어뜯는 이야기는 많다. 구겨진 원고지가 쓰레기통 근처에 나뒹구는 창작의 고통 말이다. 게다가 데뷔작으로 대중의 찬사와 출판사의 구애를 받은 작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중압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함께 사는 연인이 그 출판사 직원이라면. 그 출판사 직원도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고통 받는 작가와 분노하는 출판사 대표 사이에 끼어서 말이다.
오래 전 TV에 방영된 미드 <야망의 계절>(Rich Man, Poor Man)에서 작가는 글을 못 써서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그를 안쓰럽게 지켜보던 아내가 대신 글을 쓰게 되고 그 아내가 이제 스타작가가 되며 남자는 무너진다. 프랑스영화 <베티 블루>에서도 여자는 자신의 남친이 최고의 작가라 믿지만 남자의 원고는 출판사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는다. 독립영화 <시인의 사랑>에서 작가 양익준은 제주도에서 오늘도 풀리지 않는 원고지에서 매달린다. 작가에겐 원고지의 첫 장이, 새로운 작품의 첫 문장이, 첫 단어가 만족감의 시작일 것이다. 풀리지 않고, 열리지 않고, 이어지지 않으면 환장할 것이다. 게다가 연인은 옆에서 지켜본다. 매일매일 컴퓨터를 쳐다볼지도 모르고, 매일매일 스케줄 표를 점검할지도 모르고, 매일매일 일정을 압박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는 장희진이라며 오탈자에만 매달리며 행간을 읽던 세월 속에서 작가가 겪을 창작의 고뇌를 반쯤은 이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직업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면 일은 여러모로 곤란해질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라면 어쩌면 결말은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술과 담배라는 클리세에 빠져들든지 사소한 언쟁으로 시작되는 파국 말이다. 예민해진 현실을 변명으로 내세우며 상황을 타파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리다. 그간의 시간이 사랑이었는지, 사랑이 아니었는지는 ‘작가의 최종 신작’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정해진 인연이란 것은, 그런 고통의 총합을 모두 수렴하는 지점일 것이니 말이다.
드라마 제목 ‘이토록 오랜 이별’은 극중 헤어진 작가가 내놓은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이다. 작가가 5년을 소모하며 내놓은 작품이 어떤 장르의 어느 정도의 레벨인지는 알 수 없다. 장희진은 좋은 선택을 한 것인지 모른다. 독자를 위해, 작가를 위해서 말이다. 드라마스페셜 <이토록 오랜 이별>은 ‘사랑에 관한 짧은 생각’, ‘창작에 관한 깊은 고뇌’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단막극이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