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작년 코로나를 뚫고 만들어지고, 극장개봉까지 된 곽민승 감독의 잔잔한 청춘물 <말아>가 방송된다. “이것 하지 마, 저것 하지 마”가 아니라, 한 줄 한 줄 정성들여 김밥을 마는 영화이다.
집에만 콕 박혀 지내는 청년백수 주리(심달기)는 김밥 가게를 하는 엄마(정은경)의 전화를 받는다. 자취방을 부동산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계속 그 집에 살려면 김밥집을 하라는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딸에게 가게를 맡기고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보려 내려간다. 주리는 처음으로 김밥을 말고, 김밥가게를 운영하게 된다. 손님이래야 동네 오가는 사람들, 어쩌다가 들르는 등산객들. 엄마에게 속성으로 배운 김밥 제조기술로 어설프게 김밥을 말고, 칼로 자르고, 접시에 담고, 테이블에 옮기고, 계산까지 한다. 처음엔 서툴고, 맛이 없지만 조금씩 익숙해간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눈이 가고 관심이 가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게 된다. 엄마는 가끔 전화로 할머니의 병세를 알려주신다. 그리고, 어느 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가게로 돌아온다. 주리는 엄마와 함께 김밥을 말며, 조금은 달라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중에는 가게 손님으로 온 남자(우효원)와의 이야기도 김밥 속 재료처럼 끼어든다.
영화 <말아>는 소박하다. 마라탕처럼 자극적이지 않다. 곽민승 감독은 전작 <입천장 까지도록 와그작>이라는 제목만 꽤나 폭력적인 영화에서 프랑스식 샌드위치 잠봉뵈르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삶과 ‘어쩌면’ 로맨스를 예쁘고 맛있게 그렸다. 이번 작품에서는 코로나 시대 청춘의 답답함과 ‘출구없음’을 까만 김에 싼 하얀 쌀밥, 그리고 알록달록 재료처럼 맛있고 예쁘게 그려낸다. 여러 영화, 드라마에서 ‘조금 나오지만, 오래 기억될’ 장면을 연출하는데 특출한 재능을 가진 심달기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는 작정하고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어쩌면 의욕 없고, 비전 없는 청춘 같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면 열심히 살고, 나름 노력한다.
영화에서는 주리가 취직하려고 화상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있다. 입고 있는 옷은 왠지 자신의 정장 같지가 않다. 어쩌면 사연이 있는 옷인지 모른다. 내세울 것도 없는 ‘이력서 프로필’에 잘 하는 것이 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쭈뼛쭈뼛 “김밥을 잘 말아요”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안다. 참, 어이없는 대답이고 최악의 멘트지만, 바쁘게 살다가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먹다보면 이 대사가 생각날 듯하다. 심달기는 김밥이라도 잘 마는데, 나는? 김밥이라도 잘 말 수 있다면 좋은 것 아닌가. 적어도 배 곯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청춘은 배고프고, 외로울 것이다. 하지만 <말아>는 소박하게, 정성들여, 인생의 정수를 알려주는 것 같다.
이 영화 최고의 미덕은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곽민승 감독 작품의 특색일지 모른다. 김밥을 마흔 줄이나 주문하고 노쇼라도 할까 불안했는데, 그런 흉측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오늘(25일) 밤 11시 30분에 KBS 1TV에서 방송된다.
▶감독:곽민승 ▶출연:심달기(주리), 정은경(영심), 우효원(이원), 정의순(춘자), 손석배(산악회아저씨),유연석(꼬마손님) ▶2022년 8월 25일 극장개봉/ 76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