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수살인’은 ‘부산’을 배경으로 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부산’ 출신의 곽경택 감독이 관여한 작품이기에 더욱 그렇다. ‘암수살인’이란 피해자(죽은 사람)는 있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어 경찰서 문서고에 사건철에 미제사건으로 존재하는 케이스를 말한다. 피해자는 보통 노숙자거나, 신원불상자여서 경찰이 폼 안 나는 그런 사건에 오랫동안 매달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피해자 가족은 원통하고 억울하게 눈물로 세월만 삼켜야한다. 이런 이야기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종종 소개되고, 이 땅의 아주 ‘특별한 경찰’이 정의감에 이런 사건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준다. 여기 그 이야기가 있다. 영화 <암수살인>(감독:김태균)이다.
‘암수살인’은 부산의 평범하지 않은 한 형사를 보여준다. 김형민(김윤석)은 마약사범을 쫓는 형사지만 여느 강력계 형사와는 달리 중후한 포스를 느끼게 한다. 차도 고급스럽고, 골프도 즐긴단다. 악인들과 뒷거래를 하나 싶은 이 형사는 눈앞에서 다른 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강태오(주지훈)가 체포되는 것을 본다. 강태오는 김형민을 콕 집어 구치소로 오라더니 자신이 모두 일곱 명을 죽였다고 천연덕스럽게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가 일러준 곳에서 토막살인 사체가 발견되면서 형사는 위험한 게임에 매달리기 시작한다. 그가 왜, 그런 자백을 하는지 몰라도, ‘암수살인’의 피해자의 원혼, 가족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폭주한다.
‘암수살인’에서는 부산의 낯익은 동네가 등장한다. 사상, 남포동, 온천장, 동래, 교대, 연제경찰서, 동광동, 낙동강 갈대숲 등등. 택시기사가 여자승객을 싣고 온천장에서 만덕터널을 넘어 사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흥미를 넘어 공포감을 안겨준다. (보통 로케이션 촬영이 진행되면 그곳의 화려하거나, 로맨틱한 장소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는 휘황찬란한 광안대교의 야경조차, 범죄의 뒤안길 같은 쓸쓸한 이미지를 전해줄 뿐이다.)
김태균 감독과 각본을 함께 쓴 제작자 곽경택 감독의 작품에는 ‘부산’의 정서가 ‘부산사투리’와 함께 녹아있다. 오래 전 <친구>에서부터. 그리고, 또 하나, 그의 작품에서는 후효현이 대만의 현대사를 그리듯, 그의 작품에는 지나간 어느 시점의 한국의 모습을 붙잡아둔다. 화염병과 여의도 이야기 없이도 한국의 민주주의와 한국인의 의식세계를 복각해 내는 것이다.
그가 전해주는 옛날이야기는 ‘극비수사’를 거쳐 ‘암수살인’에 이르렀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전두환 정권시절을 에둘러 보여주면서 애타게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송강호를 그렸듯이 곽경택은 ‘어느 정권’, ‘어느 시대’에나 보편적으로 존재할 치안문제와 범죄행각을 담는다. 피해자의 상황도 지극히 일반적이다. 그것을 대하는 경찰과 검찰의 태도도 평범할 정도로 정적이다. 그런 기조에서 사건을 깔아뭉개고 망각으로 밀어 넣으려는 나쁜 경찰이 아니라, 사비를 털어서라도 찾고야말겠다는 공복(公僕)히어로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동안 스테레오타입의 연기를 보여준 감이 없지 않은 김윤석은 이번에도 그 표정과, 그 말투를 답습한다. 그런데, 그 속에서 ‘치열한’ 김형민 형사의 분투가 느껴진다. 물론, 주지훈의 ‘생양아치’ 연기는 탁월하다. 순간순간 바뀌는 표정은 구치소 면회실의 공기온도를 바꿀 정도이다.
영화 <암수살인>은 2012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소개된 사건이다. 당시 범인은 모두 11건의 살인을 털어놓았었다. 한국영화계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경찰청의 먼지 쌓인 미제사건철에서 ‘범인’과 ‘형사’와 ‘피해자’의 ‘피’와 ‘눈물’과 ‘의지’를 찾아내고 있다. 2018년 10월 3일 개봉/15세관람가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