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암수살인>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투박하고도 서늘한 정서를 바탕으로, 실화가 주는 묵직한 힘을 보여주는 수사극이다. '암수살인'이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사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건을 뜻한다. 제작에 참여한 곽경택 감독은 <친구>와 <극비수사>에서 보여주었던 부산의 골목과 사투리를 이번에도 유려하게 녹여냈다. 화려한 야경의 광안대교조차 범죄의 뒤안길 같은 쓸쓸한 이미지로 그려내며, 영화는 시종일관 차분하고도 치열한 추적을 이어간다.
강력계 형사 김형민(김윤석)은 마약 사범으로 체포된 강태오(주지훈)로부터 일곱 명을 죽였다는 충격적인 자백을 듣는다. 영악한 살인범 강태오는 형사를 구치소로 불러들여 거짓과 진실을 섞은 단서들을 던지며 위험한 게임을 제안한다. 실적도 안 되고 증거도 없는 미제 사건에 집착하는 형사를 향해 동료들은 비웃음을 보내지만, 형민은 사비를 털어가며 낙동강 갈대숲과 사상, 온천장 일대를 샅샅이 뒤진다. 이는 단순한 정의감을 넘어, 이름 없이 스러져간 피해자의 원혼과 남겨진 가족의 한을 달래기 위한 공복(公僕) 히어로의 분투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구치소 면회실의 공기 온도마저 바꾼다. 그간 정형화된 연기를 보여준 듯했던 김윤석은 이번 작품에서 절제된 내면 연기로 집요한 형사의 포스를 완성했고, 주지훈은 순간순간 표정이 변하는 '생양아치' 연기로 관객의 소름을 돋게 한다. 자백을 무기로 형사를 조롱하는 범인과, 그 농단 속에서도 기어이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려는 형사의 심리전은 액션 없이도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2012년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알려진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잊힌 죽음들을 소환한다. <살인의 추억>이 시대적 한계를 비추었다면, <암수살인>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할 보편적인 범죄와 이를 외면하지 않는 한 사람의 의지를 조명한다. 경찰청의 먼지 쌓인 서류철 속에서 '피'와 '눈물'을 찾아내 기록한 이 작품은, 한국 범죄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도 뜨거운 성취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