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 태종 이세민의 대군을 상대로 고구려의 기개를 떨친 안시성 전투는 1500년 전의 전설적인 승리다. 기록과 유물이 태부족한 탓에 성주 '양만춘'의 실존 여부나 당 태종의 실명(失明) 설 등 역사적 논란은 여전하지만, 영화 <안시성>은 그 빈틈을 거대한 상상력과 화려한 시각효과로 채워 넣는다. 작품은 단순한 사극을 넘어 고구려 특유의 호쾌한 민족성과 불굴의 투혼을 스크린 위에 복원해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화의 백미는 단연 공성전(攻城戰)의 역동적인 묘사다. <반지의 제왕>이나 <트로이>가 연상되는 압도적인 물량 공세와 기병의 장렬함은 한국 영화 기술의 진일보를 증명한다. 성을 함락시키려는 당나라의 거대 공성 기구들과 이를 기지로 막아내는 고구려군의 사투는 흡사 다빈치와 정약용이 전장에 참전한 듯한 지략 대결로 펼쳐진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에서 보던 '영상 미학적 과장'이 한국적 정서와 결합하자, 격오지의 작은 성 하나를 둘러싼 싸움은 동아시아 역사를 뒤흔든 거대한 전역(戰域)으로 치환된다.
성주 양만춘(조인성)은 권위적인 지도자가 아닌, 백성과 운명을 함께하는 애민적 리더로 그려진다. 그를 의심하며 성에 들어온 사물(남주혁)이 현장에서 목격하는 전우애와 리더십은 관객에게도 묵직한 감동을 전한다. 특히 적국인 당나라를 단순히 평면적인 악당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이세민(박성웅)의 카리스마를 대등하게 세워 전쟁의 긴장감을 높인 점도 매력적이다. 승리의 쾌감에만 매몰되지 않고 연개소문(유오성)과의 갈등 등 복잡한 시대적 역학 관계를 짚어낸 점도 돋보인다.
<안시성>은 관객을 단순히 '국뽕'의 취기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힌 영웅 양만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중국 사서에서 '천개소문'으로 기록될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고구려의 위상을 재확인시킨다. 웅장한 전투 장면 속에 녹아든 고구려인의 단단한 자긍심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가져야 할 리더십과 공동체 정신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역사적 고증의 한계를 영화적 재미로 훌륭하게 돌파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지평이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