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0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실록의 단 한 줄에서 시작됐듯, 조선왕조실록은 창작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다. 중종 22년(1527년), "삽살개 같고 크기는 망아지 같은 것이 나타나 궁궐 안을 소란스럽게 했다"는 기괴한 기록은 충무로의 상상력을 만나 국내 최초의 크리처 액션 사극 <물괴>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역병과 기근이 덮친 도탄의 시대, 민심을 흔드는 정체불명의 괴수와 이에 맞서는 수색대의 사투를 그린다.
중종은 한양을 공포로 몰아넣은 물괴를 수색하기 위해 과거 내금위장이었던 윤겸(김명민)을 다시 불러들인다. 윤겸은 딸 명(이혜리), 충직한 부하 성한(김인권)과 함께 전설 속 괴수의 실체를 쫓는다. 영화는 단순한 역사 드라마를 넘어 봉준호 감독의 <괴물>류를 지향하는 크리처물의 형식을 취한다. 과학적으로 덜 계몽된 봉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은 정적을 제거하려는 영의정(이경영)의 정치적 계략과 맞물리며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하수구 시체를 먹고 거대해진 공포 영화 <엘리게이터>처럼, 극 중 물괴 역시 산속 깊은 곳에서 버려진 역병 사체들을 먹으며 괴물이 되어간다. 하지만 감독은 괴수물의 쾌감과 민중 봉기의 서사라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듯 보인다. 김명민의 하드캐리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사극의 무게감과 크리처의 이질감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해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발생한다. 삽살개와 해태를 섞어놓은 듯한 물괴의 형상은 독창적이지만, 관객을 완전히 미혹시키기엔 서사적 깊이가 다소 부족했다.
추석 시즌 대작들 틈에서 <물괴>가 남긴 성적은 아쉬움이 남는다. 조선의 괴물이 현대 관객들에게 충분한 몰입을 선사하지 못한 이유는, 크리처라는 시각적 욕심에 치우쳐 실록이 함의하는 시대적 비극과 정치적 함의를 간과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 속 미스터리를 장르 영화로 변주하려 한 시도는 한국 영화의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800자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