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단편 중에 <단식 광대>란 작품이 있다. 이 광대는 철창 안에 갇혀 하루 종일 굶는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된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갈수록 뼈만 앙상해지는 광대를 쳐다본다. 혹시 뭔가 몰래 먹지 않을까 감시하기도 한다. 대중의 호기심이 어떻게 되냐고? 희미하게 잊힌다. 광대는 그냥 굶어 죽는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엘리펀트 맨>에서는 얼굴이 흉측한 한 남자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인간의 감정과 지성을 가진 남자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지독한 관심을 표명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그런 현상도 있었단다. 빈민가 애들을 납치하여 인위적으로 괴물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난폭한 성형수술의 결과로 ‘구경거리’ 피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를 납치하는 콤파르치코스란 범죄조직이 횡행했단다. 아이를 유괴하여 입을 찢어 항상 웃는 모습이 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기이한 모습에 박장대소하였고 말이다. ‘배트맨의 조크’ 형상의 원형이다.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고전소설 <웃는 남자>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마타하리>로 한국창작뮤지컬의 규모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EMK뮤지컬컴퍼니가 세계시장을 노리고 만든 두 번째 작품이다. <마타하리>와 마찬가지로 로버트 요한슨이 대본과 연출을,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을, 잭 머피가 작사를 맡았다. 지난여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가진데 이어, 얼마 전부터 블루스퀘어로 무대를 옮겨 두 번째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17세 영국. 폭풍우가 몰아치던 부두에 한 남자아이가 유괴된다.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관상용으로 팔던 인신 매매단 콤프라치코스의 짓이다. 입이 찢긴 그윈플렌은 눈푹풍 속을 헤매다 얼어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있는 아기 데아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윈플렌과 데아는 운명적으로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에게 거둬진다. 우르수스는 이 괴상한(?) 조합으로 유랑극단을 꾸려 유명해진다. 이제 세상 밑바닥의 사람들과 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웃는 남자’의 부조리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한 문장이 바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이다. 그윈플렌의 기구한 운명과 그와 데아와 우르수스가 보여주는 (유사)가족의 정, 당시 귀족들의 잔인한 모습들이 훌륭한 노래와 장엄한 음률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이번 공연에서 그윈플렌은 박효신, 수호(엑소), 박강현이 연기한다. 앤 공주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작부인은 신영숙과 정선아가 맡아 클래식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마타하리>를 거치면서 EMK는 세계무대에서 통할 창작뮤지컬의 전형을 어느 정도 완성시킨 듯하다. 역사적 배경을 가진, 감동적 서사를 갖춘, 불굴의 인간을 그린, 영혼을 울리는 가사,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배우들이 절대적 요소이다. 그리고, 이번 <웃는 남자>에서는 오필영이 선사하는 환상적 무대 디자인이 서사의 깊이를 더하고,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우루수스는 정성화, 양준모, 문종원이, 데아역에는 민경아 이수빈이 활약한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당초 예정보다 1주일 연장된 11월 4일까지 블루스퀘어에서 팬을 찾는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