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은 [비트](97)와 [태양은 없다](98)로 청춘의 우상이 된다. 배우 정우성은 이미 2000년 지오디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였고, 단편 ‘킬러 앞에, 노인’(14)을 연출하며 감독의 꿈을 품고 살았다. 단짝 이정재가 [헌트]로 한 발 앞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했고, 이제 정우성이 [보호자]로 장편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올린다.
조직의 큰 형님을 죽인 수혁(정우성)이 10년 만에 출소한다. 그는 옛 연인이 자신의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조직과 완전히 결별하려 하지만 새로운 보스(박성웅)가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10년 전엔 그의 앞에서 얼굴도 못 들었을 성준(김준한)이 수혁을 감시한다. 성준은 무슨 속셈인지 청부살해업자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에게 수혁을 제거하라고 한다. 이제, 수혁은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액션을 펼친다.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대면인터뷰가 급하게 화상인터뷰로 변경되었다. 그날 오후 <오펜하이머> 시사까지 겹쳤기에 오전에 진행된 화상인터뷰는 북새통을 이뤘다. 정우성 감독에게 ‘보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전반적으로 캐릭터 설정이 과하게 희화화된 것 같다. 의도한 바가 있는지.
▶정우성 감독: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수정하면서 캐릭터의 색깔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캐릭터가 가진 결핍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은 일반적인 사고를 가지고 상대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와의 교감이 단절된 인물들이다. 그런 사람이 특별한 상황에 내몰린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어쩌면 귀여울 것 같았다. 성준(김준한)을 처음 보여줄 때에도 내면적인 나약함을 들킬까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이 영화는 사건을 주축으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나온다. 광기일 수도 있고, 종잡을 수 없는 4차원 인간이다. 실소를 자아내는 캐릭터이다.”
Q. 그동안 보여준 정우성의 대중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이런 블랙코미디를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우성 감독: “그동안 진지한 면을 많이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웃음도 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즐기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저랑 가까이서 일하는 사람은 제가 실없는 농담을 끊임없이 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홍보할 때도 그렇다. 관객들에게 다른 모습 보일 수 있는 기회이다. 소통하면서 즐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유엔 친선대사하면서 민감한 이슈로 내 이름이 거론되면서 진지한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다.”
Q. 감독 데뷔를 하면서 가장 불안하게 만든 것이 있다면.
▶정우성 감독: “영화를 마무리 짓고 마음이 좀 놓이려나 했는데 시사회 끝나고 나니 감독으로서, ‘정우성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지만 사람들이 나의 결과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불안하기도 하다. <보호자>는 새롭고, 개성이 강한 영화이다.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정우성다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영화가 우리 영화 산업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Q. 장르영화의 클리세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런 소재에 도전한 이유가 있는지.
▶정우성 감독: “영화하는 사람으로서의 반항심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영화의 소재나 제작 방식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많은 레퍼런스를 모아 붙여 놓고, 상업적인 수사를 동원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작품은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없다. 만약 이 영화가 그런 연장선상의 작품이라는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아끼고, 오래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도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새로운 도전은 할 때 발전이 있고 가능성을 준다고 생각한다."
Q. <보호자>의 톤앤매너를 잡기까지는 어떤 고민을 했는지.
▶정우성 감독: “시나리오를 읽고는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보통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과 스태프 사이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콘티를 짠다. ‘이 신은 이렇게 찍을 거야.’라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감독으로서 연출부에 한 첫 번째 지시는 레퍼런스를 모으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시나리오가 필요한 영상과 이미지는 대본에 있고,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보호자>다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의 톤앤매너를 만들어 나갔다.”
Q. 의도치 않은 행위의 파장이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였다고 했다. 수혁의 딸이 납치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정우성 감독: “고민이 있었다. 많은 영화에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폭력의 정당성을 찾는다. 그러면서 아이를 폭력에 노출 시킨다든지, 아이를 통해서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런 장면이 불편했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대상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등장시키기로 결정한 이상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성숙하지만 가장 성숙한 인격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Q. ‘보호자’를 연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정우성 감독: "부산에서 촬영이 시작될 무렵에 부친상을 당했다. 상만 치르고 바로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촬영을 미루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컴팩트한 예산 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 촬영을 미루는 것은 누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래도 되나 속으로 생각했었다.“
Q. 정우성 감독의 색깔을 넣고 싶었다고 하는데, 다음에도 이런 작품을 할 것인지.
▶정우성 감독: “다음에 선택하는 작품에서도 나만의 색깔을 넣고 싶다. 장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좀 더 통쾌한 미션이 용인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인간심리를 더 많이 파고들어가고 싶다.”
Q. 다채로운 액션이 펼쳐진다. 액션을 잘 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는데, 액션 연출에서 어려웠던 점은?
▶정우성 감독: “없었다. 수혁의 전사가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 추가 촬영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 액션 시퀀스는 6시간 만에 찍은 것이다. 제 머리 속에 나온 아이디어로 진행을 하는 것이라 속도가 빠르더라. 그런 장점은 있더라.” (보스를 처치하기 위해 혈혈단신, 플래시를 단 칼을 휘두르는 액션을 유려하게 소화해낸다)
Q. 야심을 품고 완성시킨 액션 장면이 있다면.
▶정우성 감독: “자동차 액션과 터널 장면. 터널 안에서 사제폭탄 터뜨리는 것이 가능할까 고민이 많았다. CG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그러다가 터널 신을 집어넣기로 했다. 적당한 터널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운 좋게 2.5킬로 길이의 터널을 찾아서 질주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촬영 스태프가 숨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로비에서 자동차 드리프트 할 때에도 분수대가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런 것이 힘들었다.”
Q. 감독으로서 수혁을 연기한 배우 정우성을 평가하자면.
▶정우성 감독: “수혁이 갖고 있는 딜레마로 다른 캐릭터와 충돌한다. 많은 제약이 있었던 것 같다. 대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름 나쁘지 않게 연기한 것 같다. 하하. 이 질문이 제일 힘들다.”
Q. 김남길과 김준한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정우성 감독: “김준한 배우는 연기할 때 자기만의 표현방식이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할 때 연락처를 받았다. 내가 앞으로 연출을 하면 같이 하고 싶었다. 강 이사 역할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우진 캐릭터는 사실 어렵다. 어떤 배우가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김남길 배우가 ‘이거 형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면 되죠?’하더라. 잘 됐다 싶었다. 김남길은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할 줄 아는 배우다. 자기 역할을 정해 놓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김남길의 가능성인 것 같다"
Q. 정우성 배우는 오랫동안 대중 앞에서 배우로, 모델로, 탤런트로, 제작자로 여러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화감독은 또 새로운 모습일 것이다. 부담감은 없었는지.
▶정우성 감독: “배우가 감독을 할 경우 장점은 분명히 있다. 디렉팅을 할 때 배우들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 배우의 입장을 잘 알고 있으니명확한 것 같다. 부담감은 잘 모르겠다. 배우로서 그동안 연기한 것을 보면 ‘왜 저걸 선택했지?’하는 게 많다. 단 한 번도 한 가지 캐릭터를 이어가려고 한 게 없다. 연출을 할 때도 <보호자> 같은 걸 또 해야지 하는 마음은 없다. 시나리오가 주는 영감을 찾으려고 한다.”
정우성 장편영화 감독데뷔작 <보호자>는 15일 개봉되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