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타오르는 단편들’이라는 부제로 세 편의 독립영화가 소개된다. 유종석 감독의 <새벽 두시에 불을 붙여>와 <아쿠아마린>, 그리고 조은선 감독의 <피아니스트>이다. 이중 <새벽 두시에 불을 붙여>는 끔찍한 한국현대사의 한 면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영화는 1995년 8월 21일 새벽 2시에 발생한 ‘경기여자기술학원’ 방화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화재로 37명이 희생당했다. 이 이야기는 올해 초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어떤 이야기일까.
영화는 어느 외딴 건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기숙형 입시학원, 혹은 종교단체의 수련원 같기도 하다. 이곳은 ‘화원여자기술학원’이다. 10대로 보이는 여자들이 강제로 이곳에 수용되어 있다. 무슨 사연으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그들은 강압적 감시체제 아래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몇몇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들은 비행청소년으로 일정기간 이곳에 갇혀 재봉이나 미용 같은 실용기술을 배워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얼핏 보아도 정상적인, 인간적인, 현대적 의미의 갱생교육은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사감은 편지 검열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 있다. 밤이면 모든 문이 잠긴다. 창문은 모두 쇠창살로 덮여있다. 결국, 부당한 대우에 항거한다. 유림이 나선다. “새벽 2시에 창문 깨는 소리를 신호로 각자 방에 불을 지르라”고. 건물에 불을 붙이면 외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을 구해주고, 자신들을 자유로운 세상으로 돌려보내줄 것이라고.
실제는 끔찍했다. 원래 이곳은 단속에 걸린 매춘부/윤락녀들이 수감되던 장소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문제소녀들의 갱생기관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부모의 의뢰나 학교나 사회 부적응자, 가출청소년들이 이곳에 수용되어 일정기간 직업교육과 갱생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구타와 욕설, 비인간적 대우는 비일비재 했던 모양이다. 결국은 이들이 탈출을 모의한 것이다. 그런데. 기숙사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영화는 수용자들의 우상으로 받들어지는 유림을 관찰하는 서리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각자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갇힌 공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묘한 동료애를 갖게 된 듯하다. 하지만, 그들은 1995년의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실제 사건에 대해 안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든 단편영화인지를 알 수 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방화사건의 재판결과를 이야기한다. 사건이 제대로 파헤쳐지고, 반인륜적 감금생활을 자행한 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았을까. 물론, 아니다.
초절정 무더위 속에서 각종 사건으로 얼룩진 한국사회를 보며 분노와 불안감이 끓어오를 때, 그런 비극의 이면에는 ‘경기여자기술학원’ 사건처럼 제대로 파헤치지도 못하고, 제대로 징벌하지 못한 한국사회의 결함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유종석 감독의 <새벽 두시에 불을 붙여>는 제43회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단편영화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제에서 상찬 받은 작품이다. 단편영화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감독/각본: 유종석 ▶출연: 조은형(서리), 한성민(유림), 김지민(미란), 온정연(선아), 김민지(하진), 송지언(사감) ▶상영시간:1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