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도, 음악에도, 영화에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품격과 아우라 느껴지는 작품이 있다. 그 목록에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도 포함되어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그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명확한 미학과 철저한 심리묘사는 그를 영화교과서의 한 챕터를 당당하게 완성시킨다. 그의 대표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대형스크린에서 말이다. CGV아트하우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알프레드 히치콕 특별전’이다.
영국출신의 히치콕 감독이 영국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미국으로 건너가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이 바로 <레베카>(Rebecca,1940)이다. ‘레베카’는 클래식 무비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이다.
‘레베카’는 영국작가 대프니 듀모리에의 동명의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당시로서는 거액이라고 할) 5만 달러에 판권을 구매하여 히치콕을 할리우드로 불러 영화를 찍은 것이다.
<레베카>의 여주인공은 레베카가 아니다. 레베카는 등장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레베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음울한 그림자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실제 여주인공(조안 폰테인)의 극중 이름은 단 한차례로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단지 ‘나’(I)로 등장할 뿐이다.
“어젯밤 맨들레이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라는 아주 유명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한 미국 유한마담의 비서 겸 말동무로 휴가철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맨덜레이 저택의 주인 막심 드 윈터(로렌스 올리비에)를 운명처럼 만난다. 전처(레베카)를 여의고 세상 다 잃은 사람같이 지내는 맥심과 번개같이 결혼한다. 그리고 ‘나’는 그 유명한 맨덜레이 저택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드 윈터 부인’이 된다. 그곳에서 만나는 집사장 댄버스(쥬디스 앤더슨)의 미스터리한 위압감과 함께 레베카의 과거 캐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의 공포는 주로 맨덜레이 저택이 전해주는 위압감과 속을 알 수 없는 댄버스 부인의 괴이한 행동에 기인한다. 많은 ‘고전영화 소개책자’에서 알려주듯 댄버스 부인과 (등장조차 하지 않는) 레베카와의 관계는 충분히 동성애적 분위기를 암시한다. 영국에서 막 미국으로 건너온 히치콕 감독은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화면에서 최대한 분위기만 띄우려고 노력했단다. 댄버스 부인이 침실에서 레베카의 란제리를 어루만지는 장면이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검열은 의외로 보수적이었다. 동성애자와 노출만이 문제가 아니라, 주제에 대해서도 엄격했다. 즉, ‘레베카의 죽음’과 관련된 살인자가 누구인지,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소설과는 달리 묘사된다.
맨덜레이 저택 전경은 미니츄어로 촬영했단다. 촬영당시 로렌스 올리비에는 비비안 리에 빠져있을 때다.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으로 출연 중이었고 극중에 멜라니로 등장한 배우 올리비에 드 하빌랜드가 바로 이 영화주인공 조안 폰테인의 친언니였다. 조안 폰테인의 본명은 ‘조안 드 보이 드 하빌랜드’이다. 언니 후광을 받고 싶지 않아 조안 폰테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한 남자 때문에 사이가 틀어졌다는 것은 ‘서프라이즈’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
요즘은 옥주현의 뮤지컬 <레베카>가 더 유명하겠지만 <레베카>는 여전히 흑백영화로서의 품격과 아우라가 느껴진다. CGV아트하우스에서는 ‘레베카’, ‘오명’,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현기증’ 등 히치콕 걸작들을 상영 중이다. 이전에 EBS를 통해, DVD컬렉션과 만나던 <레베카>와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마블의 본영화가 끝나면 제작진 자막이 수십 분씩 올라가는데 <레베카>는 ‘The End’ 나오자마자 진짜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에 불이 켜진다. 그게 좀 놀랍더라.
참 이 영화는 히치콕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참참. 영화에서 악당 잭 파벨로 등장하는 배우가 조지 샌더스이다. 이 배우는 1972년 자살로 삶을 마감했는데 유서가 유명하다. "친애하는 세상이여, 나는 따분해져서 떠납니다. 나는 충분히 오래 산 것 같습니다."라고 남겼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