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는 18회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동방신기’ (혹은 전현무의 우스갯소리) 때문에 유도유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라는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서구인의 시각에서는 한국의 박정희 정권과 함께 ‘아시아 개발독재정권’을 언급하며 수카르노를 이야기할 것이다. 수카르노는 1965년 수하르트를 몰아내고 집권한 군인이다. 그가 정권을 잡았던 그해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최소 40만에서 최대 300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끔찍한 역사의 공간으로 안내할 영화를 소개한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이다.
미국 출신의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2012년 인도네시아에서 다큐멘터리를 한 편 찍게 된다. 5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실제 있었던 대(大)학살극을 다룬다. 감독은 남아있는 영상, 뉴스자료를 통해 당시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놀랍게도 역사의 산증인을 내세운다. 그것도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증언이 아니라 그 때 학살을 자행한 살인마를 내세운 것이다. 그들이 누구를, 어떻게, 얼마나 죽였는지를 직접 증언하는 것이다.
이런 촬영이 가능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 1960년대의 아시아 정치지형을 생각해보자. 중국은 공산화가 되었고 그 주변 국가들도 차례로 공산화 된다. 인도네시아에도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수카르노는 그런 정세를 활용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를 몰아내자고! 추방이 아니라, 홀로코스트 버금가는 살육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단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조자라는 이유로. 그리고 범위는 확대된다. 그들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워낙 많은 희생자가 생겼고,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가담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자신의 조국을 지키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인식했기에. 그리고 그 이후 인도네시아는 그것이 얼마나 반인류적 범죄였는지를 공식적으로, 공개적으로 사과하지도 않았고, 후대의 교육에 반영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그 시절에 필요했던 최선의 방식’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위해 인도네시아에 머물며 ‘그 들’과 교감을 가져온 오펜하이머 감독은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아무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그들은 거리낌 없이 그때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빨갱이 놈들을 이렇게 죽였지..”라고.
이 영화에는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안와르 콩고’(Anwar Congo)와 헤르만 코토(Herman Koto), 아디 줄카드리‘(Adi Zulkadry) 라는 인물이 주로 증언한다. 1965년 당시, 그들은 북 수마트라의 메단 (Medan)의 극장 앞에서 암표를 팔던 건달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프레만‘(preman)이라고 말한다. 영어 ’프리맨‘에서 나온 말이다.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프레만은 ’깡패‘와 다름없다.
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안와르 콩고는 50년이 지나서도 영화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어떤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그들을 그렇게 죽였다고 무용담을 펼친다. 그런데 그들은 학살의 책임자도, 지휘자도 아니었다. (그나마 엘리트라고 할 신문사 기자가) 단지 “저 놈!” 이라고 지목하면 그냥 건물 옥상으로 끌고 가서는 마구 두들겨 팬다. 때려서 죽이는 게 힘이 들자 점차 간단한 방식을 고안한다. 철사로 목을 묶어 교사시키는 것이다. 시체는 강물에 던져버린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들이 천 명을 죽였다고 말한다.
오펜하이머의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고,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기 바쁜 살인자들은 우쭐하여 ‘살인행각’을 끝없이 털어놓는다.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죽이고, 내다버린다. 살인마들에게는 그들의 금품을 강탈하고 가족들을 강간하는 것은 보너스에 불과하다. “중국놈 빨갱이를 죽이고는 14살 딸을 겁탈했지~”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지, 처음부터 이 다큐멘터리의 목표점을 생각해 뒀는지 궁금하다. 살인마는 점점 더 리얼하게 살인행각을 재연하면서 어느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특히 이제는 노친네가 되어버린 안와르 콩고는 ‘피살자의 대역’이 되어 고문당하고, 목이 잘리고, 처참하게 난도질당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기침을 거듭하고 구토에 이른다. (그게 후회인지, 반성인지, 악어의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카메라는 담담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그들의 살인행각을 재연시킨다. 여전히 빨갱이를 증오하고, 과거의 행동을 미화하며, 지금도 그것이 조국의 영예라고 떠든다. ‘판차실라 청년회’가 집회를 여는 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액트 오브 킬링>은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찬을 받았다.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최우수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인도네시아로서는 경사라기보다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당국은 이 영화가 “역사적으로 정밀하지 않으며, 영화 한 편으로 당시의 역사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에는 이런 것도 있다. "많은 나라들이 역사상 가장 황량한 순간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노예 역사, 호주의 원주민,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기억해야한다. 많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인류에 대한 위반 요소가 있다.“면서, "문제는 냉전, 즉 공산주의와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일어났음을 기억해야한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과거를 얼마나 수용하고, 인류 보편적 정의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실제 인도네시아에서도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Komnas HAM)에서 오랫동안 조사를 펼쳤다. 2012년 나온 최초의 공식보고서에는 “살인, 노예, 고문, 성적학대, 실종 등을 포함한 심각한 인권침해와 추방, 박해 등이 자행되었다”면서 군 관계자의 도움을 받지 못해 검증을 수행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에 초를 치는 듯 한 영화지만, 오랫동안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싸워온 ‘아시아국가’로서의 공통의 역사의식과 끝나지 않을 과거사 논쟁을 생각하면서 한 번 쯤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여전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영화 끝나고 올라가는 스태프들 대부분이 ‘Anonymous’(익명)으로 표기되어있다.
살인마들의 살인행각 재연은 ‘스너프 무비’로 착각할만큼 잔인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셔야할 듯.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2년 뒤 인도네시아의 비극을 다룬 또 하나의 작품 ‘침묵의 시선’으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OTT플랫폼서비스인 ‘왓챠플레이’에서는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을 감상할 수 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