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이 지났다. TV 개그프로그램에서 스리랑카 노동자 블랑카는 매회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라고 말한다. 시청자들은 그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픈지 다 안다. 어제 밤 KBS 1TV [독립영화관]시간에 방송된 송원찬 감독의 단편영화 <이방인>은 바로 그 블랑카의 이야기이다. 개그로 치부될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호러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컨테이너 물류단지에서 벌어지는 산업재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재를 당하는 사람은 ‘블랑카’ 같은 외국인 노동자이다. 컨테이너가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작업을 지시하는 한국인 관리자는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고압적으로 업무지시를 한다. “이건 무거워요. 네 사람이 필요해요“라는 외국인노동자의 말을 무시하고, ”셋이서 해도 돼!“란다. 결국 거대한 상자가 떨어지고 노동자의 한쪽 손을 덮친다. 그리고, 악질 관리자의 본색이 이어진다. ”산재처리는 무슨? 퇴직금 챙겨 줄 테니 나가!“ 새로 이곳에 현장관리직으로 온 우진은 이런 회사의 부조리한 행태가 언짢다. 그런데 상사의 채근과 우호적인 않은 현장분위기 속에서 자신도 점점 ‘악질 관리자’가 되어 간다. 그와 함께 그는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밤이나 낮이나 컨테이너 물류단지에서는 어린 외국인 소녀가 유령처럼 배회하는 것 같고, 사고는 계속되고, 외국인노동자를 윽박지르는 회사의 작태는 계속된다. 그리고 우진은 똑같은 신세가 된다.
영화 <이방인>은 많이 보아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노무관리’를 다룬다. 그 기저에는 ‘우월적 한국인’과 ‘하류 인간’이라는 계급적 인식이 놓여있다. 그것은 마치 미국사회에서 백인계층 밑의 아시아인들처럼. 극중 주인공 우진은 처음에는 그런 상황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도 그런 지시를 내리고 있고, 그런 ‘한국인 관리자’가 되어 간다. <이방인>의 특별한 점은 그런 상황을 징벌하는 영화적 방식이다. 노동자는 힘이 없고, 외국인 노동자는 도움을 받지 못한다. 사고현장에 나타난 경찰이 하는 말이 “이전처럼 잘 처리할 테니, 박 차장에게 안부나 전해.”이다. 그들은 그들의 좁아터진 기도실, 혹은 종교적 공간에서 그들만의 의식을 통해 위안과 이승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 ‘바퀴벌레’같은 대우를 받더라도, 신과 교류하는 고귀한 인간들이다.
우진에 앞서 그런 관리자가 있었고, 우진의 뒤에도 그런 관리자가 ‘블랑카들’에게 부당하고, 위험한 지시를 내린다. 언제까지 그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고, 부당한 지시에 따를까. 그러지 않을 것이란 것을 다 안다. 다행히 20년 전 블랑카가 울분을 토했던 악질 사장님은 줄어들 것이다. 그래야할 것이다.
이 작품은 작년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장르부문 작품상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을 수상했다.
▶ 이방인(2022) ▶감독/각본/편집:송원찬 ▶출연: 박충환, 노아, 오희준, 하산 ▶상영시간:28분
■인터뷰■ 송원찬 감독 - < 이방인 >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이방인>은 어떻게 연출하게 되었는지.
▶송원찬 감독: “대학교 졸업작품이다. 학교 워크숍 기간에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터지면서 흑인 인권을 주장하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미국 코리아, 차이니스, 재패니즈 타운 등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흑인들이 동양인들을 무차별 폭행을 하는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흑인의 인권을 주장하던 이들이 동양인을 차별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 여론에서는 동양인들의 인권 또한 중요하다고 외치며 흑인들을 위선자로 몰더다. 하지만 동양인 인권을 주장하던 한국인들 또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무시하고 더 나아가 혐오, 차별하는 경우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인들 역시 편견과 뒤틀린 시선으로 다른 인종들의 계급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부들뿐 만이 아니라, 컨테이너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현장에 노동자들 간에도 위계와 계급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런 부조리한 상황을 시나리오로 집필하고, 연출하게 되었다.”
Q. 컨테이너에 손이 깔리는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송원찬 감독: “첫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다. 인물의 대화는 흔한 산업구조를 비판하는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컨테이너 상자가 노동자에게 떨어지고 팔이 깔려 피를 흘리는 장면을 통해 순간적으로 장르를 바꾸며, 관객들을 몰입시키고 싶었다. 거대한 상자 두 개를 제작했고, 촬영도 딱 두 번 진행했다. 준비를 철저하게 했고, 모든 동선을 숙지해 제작한 거대한 상자를 떨궜을 때 소리가 생각 이상으로 커서 배우들이 많이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크게 놀란 표정이 화면에 담겨 만족스러웠다.”
Q. 물류창고 현장관리직 우진의 눈에 한 소녀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원찬 감독: “소녀의 정체는 ‘수호신’이라는 설정을 하였다. 동,서남아 문화권에 있는 종교들을 공부했을 때 다양한 수호신들이 있지만, 공통으로 소녀의 형상의 띄는 수호신들이 나왔다. 실제로 네팔에서는 5살 이하의 어린 소녀를 선발해서 신으로 모시는 ‘쿠마리’라는 문화도 있더라. 수호를 반하는 자에게는 ‘악신’이 되어 벌하는 종교 신화들을 보며 소녀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Q. 현장관리직 우진을 연기한 박충환 배우에 대해서.
▶송원찬 감독: “박충환 배우는 학교 작품 조감독을 했을 때 만났다. 우진 역은 처음엔 외국인 근로자를 지지하다가 결국 자신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그들을 차별하는 역할로 변화하는 캐릭터기에 분위기에서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공존하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 21살 때 만났던 박충환 배우는 선한 얼굴이 어느 순간 목소리 톤과 표정 분위기로 싹 바뀐다.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를 전복시킬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그래서 6년 만에 연락을 했고, 시나리오 리딩을 하면서 확신에 찼다. 박충환 배우는 본인이 연기하면 영화제를 못 가는 징크스가 있으니 더 좋은 배우를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계속 연을 이어가고픈 배우이다.”
Q. 외국인 노동자에게 갑질하는 종수는 오희준 배우가 연기한다.
▶송원찬 감독: “오희준 배우는 제가 20살 학교 작품 미술부 막내를 할 때 처음 본 배우이다. 종수 역은 처음부터 오희준 배우를 모델로 시나리오를 썼다. 날 것의 느낌이 나면서도 사실은 상당히 정제된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평이한 역할도,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법한 캐릭터를 생생하게 연기하는 마력을 가진 배우라고 생각한다.”
Q. 장르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고려한 것들이 있다면.
▶송원찬 감독: “가장 큰 줄기는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되 딴 길로 새지 않게 마음을 견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사건들을 배치하고, 사이에는 공포와 스릴러 장르를 통해 계속 심리적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고자 연출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노동자의 계급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의 공간이 주는 위치와 동선을 수직 구도를 활용했다. 2층 사무실에서 노동자를 내려다보는 우진, 위에서 떨어진 상자로 부상을 당하는 쯔렌, 추락하여 사망한 종수, 수직으로 올라가 있는 컨테이너들, 위에서 신이 내려다보는 듯한 버드아이뷰 등을 활용하여 연출했다.”
Q. 영화에 등장하는 바퀴벌레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송원찬 감독: “차장 역의 등장 씬을 고민하던 중에 나온 것이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극악무도한 느낌을 주면서 시작하고 싶었다. 우진을 위하는 척 말하지만 결국 회사의 실리를 따지고. 바퀴벌레를 폭력적으로 죽이듯 산재 처리를 받아야 할 외국인 근로자를 신경도 쓰지 않고 처리하려고 하는 모습과 병치하기 위해서이다.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 사건·사고 관련된 처우에 관한 기사, 문서 등을 최대한 많이 찾아 읽었다.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 배역을 맡아주는 배우 중에서도 실제로 현장 근로자분이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참고가 되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고 있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 담긴 외국인 근로자들의 처우와 사고들은 전부 실제 기사나 이야기를 듣고 작성한 것이다.”
Q.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을 수상했다.
▶송원찬 감독: “짧은 인생 속 가장 커다란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매해 방문해온 마음속 독보적 원탑 영화제였다. 그런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에 엄청난 기쁨도 있었지만 그만큼 부담도 컸던 것 같다. 영화를 상영하는 28분 동안 긴장돼서 정신이 거의 나가 있었다. GV를 하며 관객들에게 좋은 말씀, 좋은 질문을 듣고 소통하고 나서야 긴장이 조금 풀렸던 것 같다. 영화를 상영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했지만 수상까지 이어지니 믿기지 않았다. 특히 상업 영화감독을 꿈꾸는 저에게 관객상은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다. 왓챠가 주목한 단편상도 몇 년간 왓챠 결제한 걸 다 환급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상을 받는 게 좋은 영화의 기준이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배우고 시도하는 저에게는 아직은 나쁘지 않게 길을 걷고 있다는 작은 위로가 되어준 것 같아 격려되었던 것 같다.”
Q. 차기작 계획은.
▶송원찬 감독: “현재 영상 프로덕션 ‘부귀영화’에서 팀원으로 다양한 분야의 영상을 찍으며 지내고 있다. 함께 일하는 대표이자 고등학교 선배이신 감독님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모티브로 초단편 영화를 제작하여 올리는 유튜브도 하고 있다. 차기작은 유명 단편소설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프로젝트에 각본·연출로 함께 할 예정이다. 그리고 운석, 마약, 종교를 키워드로 장편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은 관객의 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제 영화의 마침표를 찍어주신 관객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 송원찬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