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지아웨이, 장꿔룽, 장슈에요, 린칭샤 등으로 이름을 표기하면 어색해서 그냥 한자음을 달았습니다 *
왕가위 감독이 최근 환갑을 맞았다. 지난 2016년 영국 BBC가 전 세계 영화평론가의 투표를 거쳐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100편’ 중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가 데이빗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이어 2위에 랭크되었다. 왕가위 감독은 하바드 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여하튼 왕가위는 대단한 감독이다. 그 왕가위 감독의 작품 목록 중에 특히 눈에 띠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동사서독’과 ‘동성서취’이다. ‘동사서독’은 왕가위가 메가폰을 잡고 칸까지 진출했던 작품이며, ‘동성서취’는 그의 친구인 유진위가 감독을 맡고 왕가위는 제작을 맡아 ‘갈 데까지 갔던’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그야말로 대단한 히스토리를 가졌다.
지금은 그 이름의 위대함을 제대로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기라성 같은 홍콩 톱스타들이 총출동했던 작품이다. 당초 왕가위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완벽한 미학의 작품을 찍기 위해 이들을 이끌고 중국으로 뛰어들었다. 분명 김용의 소설(무협지)은 원대한 철학적 담론보다는 밤을 새며 통독하는 즐거움이 가득한 작품이다. 그런데, 왕가위가 만든 ‘동사서독’은 그렇지 않았다. 자아에 대한 심오한 성찰, 무에 대한 무한한 경배, 인연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가득했다. 즉, 무지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왕가위의 감독데뷔작 <열혈남아>에 이어 내놓은 <아비정전>이 그런 ‘위대한 난해함’으로 흥행에 실패한지라 <동사서독>은 촬영 내내 흥행에 대한 걱정들로 가득했다. 왕가위의 친구이자 사업수완이 있었던 유진위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런 배우들이 또 언제 여기 다시 모일 수 있겠나. 그냥 가벼운 작품 하나 만들자!”한 것이다. 그래서 1993년 설 연휴에 맞춘 코미디가 후다닥 만들어졌다. 28일 만에 완성시켰다는 전설의 코미디 <동성서취>이다. 완전한 제목은 ‘사조영웅전지동성서취’(射鵰英雄傳之東成西就)이다. 누가 봐도 김용 무협 필이 넘치는 제목이다.
사실 왕가위 감독이 만들던 ‘동사서독’도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바탕으로 했다. 오래 전 고려원출판사에서, 그리고 김영사에서 출판된 김용의 <사조영웅전>은 몽골-금-남송이 대립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곽정’과 ‘황용’의 천생연분 결연기를 다룬다. 나오는 인물은 가히 톨스토이 급이다. 칭기즈칸도 등장할뿐더러, 수많은 무협물을 화려하게 장식한 동사(황약사), 서독(구양봉), 남제(단지향), 북개(홍칠공), 중신통(왕중양), 중완동(주백통) 등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양과와 소용녀가 등장하는 ‘신조협려’로 이어진다.
그런데, 출발부터 특이했던 ‘동성서취’는 기대이상으로 엉망진창, 전무후무 막장컬트 코미디로 완성된다. 굳이 줄거리를 옮기자면 이렇다. 금륜국의 왕비(엽옥경)와 불륜을 저지른 구양봉(양조위)은 왕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다. 옥새를 가진 삼공주(임청하)는 말을 타고 도피하고, 구양봉은 국사(장만옥)에게 그녀의 행방을 묻는다. 이후 국새를 둘러싼 추격전은 왕중양(종진도)-주백통(유가령)과 황약사(장국영)-소매(왕조현)의 얽히고설킨 연애소동, 게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단지향(양가휘)의 신선놀음이 더해져 산을 넘어 구름을 지나 목성으로 향할 지경이다.
만약, 1980~90년대 홍콩영화 황금시대의 아이콘을 알거나, 김용의 무협지 좀 읽어봤다는 사람이라면 정말 ‘형편없이’ 엉망인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배우만큼 제작진도 막강했다. 유진위 감독은 이후 주성치와 <서유기>(월광보합,선리기연)을 만들며 ‘컬트의 제왕’이 되었고, 촬영감독 포덕희는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다. 세컨드 촬영감독이었던 유위강은 이후 <무간도> 등을 감독한다. 미술감독은 장숙평, 액션감독은 ‘무려’ 홍금보이다.
참, <동성서취>는 2346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였다. <동사서독>은 그 다음 해까지 거듭 촬영을 이어가며 겨우 완성했고 9월에 개봉시킬 수 있었다. 흥행수익은 900만 홍콩달러. 물론, 세월이 지날수록 영화 팬들은 <동사서독>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동성서취>는 반갑게도 왓차플레이에 올라와 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