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과 쓰나미가 자주 발생해서 그런지 일본에는 유독 '재난 콘텐츠'가 많다. 그런 콘텐츠 중에 <드래곤 헤드>라는 작품이 있었다.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주인공이 신칸센을 타고 터널을 지나는 순간 , 일본열도에 엄청난 재앙이 발생한다. 겨우 터널에서 빠져나와 바라본 풍광은 ‘묵시록, 그 이후’이다. 엄청난 규모의 천재지변, 지구적 재앙을 맞았을 때 기존의 질서체제가 유지될까. 만약 파워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제일 먼저 어떤 조치부터 취하게 될까.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다음 영화를 보자. 넷플릭스에 지난 13일 올라온 따끈따끈한 영화 <종말의 끝>(원제: How It Ends 감독: 데이비드 M. 로젠탈)이다.
넷플릭스에는 종종 맥락 없고, 뜬끔없는, 사전정보가 전혀 주어지지 않은 작품들이 별안간 등장한다. <종말의 끝>도 그러하다.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은 ‘제로’이고, 단지 넷플릭스 메인에 ‘New'라는 타이틀만이 클릭을 유도한다. 넷플릭스의 이해할 수 없는 자신감과 마케팅/프로모션이고 런칭 방식이다.
미국 동부 시애틀에 사는 변호사 윌(테오 제임스)은 임신상태인 여친 샘(캣 그레이엄)과의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저 멀리 서부 시카고의 예비장인을 찾는다. 전직 군인이었던 장인(포레스트 휘태이커)은 윌이 탐탁치가 않다. 못 미덥다는 것이다. 여하튼 다음날, 윌은 시애틀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행기는 모두 연착이고, 공항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TV뉴스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고, 각지에 정전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급박하게 전해주더니 그것마저 끊겨버린다. 혼자 두고 온 샘이 걱정된 윌은 장인과 함께 차를 몰고 씨애틀로 향한다. 미국 대륙은 이미 충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단지 전기가 나갔다는 것은 ‘현금 사회'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름을 차지하기 위해, 차를 얻기 위해 군중은 폭도가 되어 간다. 살기 위해 총을 들고, 누군가를 죽여야하는 일도 생긴다. 윌은 대륙을 횡단하여 씨에틀까지 가서 샘과 재회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미국은 한순간에 지옥이 되어 버렸을까.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는 ‘지구 재앙의 모습’을 롤랜드 에머리히 급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치 <드래곤헤드>에서 주인공이 ‘터널’ 속에서 가졌을 법한 온갖 망상이 뇌리를 스칠 뿐이다. 외계인의 침략이든지, 대지진이 일어났든지, 핵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누가 이랬을까. 북한이? 중국이? 둘이 짜고 했을지도 몰라. 둘다 우릴 싫어하니까...”라는 대사가 있다.
구체적인 대재앙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고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는 코맥 매카시의 묵시론적 소설 <로드>를 연상시킨다. <로드>가 아버지와 아들이 펼치는 필사의 생존 로드쇼였다면, <종말의 끝>은 임신한 약혼녀에게 돌아가기 위한 필사의 드라마이다.
넷플릭스에서 뜬금없이 공개되는 신작답게, 보고 난 뒤 개운함보다는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각광받던 시나리오였다지만, 결과물은 ‘재앙의 정체를’ 너무 꽁꽁 숨기다보니, 긴박감도 떨어지고, 영화 보는 재미도 반감한다. 물론, 감독이 말하려고 하는 바는 아마도 ‘디스토피아에서 찾은 희망’인 모양이다. 미국영화답게 후속편(시즌2)도 가능한 열린 구조이지만, 이 작품만으로 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살아남은 자는 더욱 잔인해지고, 더욱 비인간적이 될 것이란 것은 많은 작품에서 보아왔으니 말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