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선호가 돌아왔다. 연극무대에서 내공을 쌓고, 드라마에서 차곡차곡 인지도를 쌓아올리더니 <갯마을 차차차>로 스타덤에 오른 김선호는 지난 21일 개봉된 박훈정 감독의 느와르 영화 <귀공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고 목적도 알 수 없는 ‘추적자’이자 ‘킬러’를 맡아 영화팬에게 액션 쾌감을 안겨준다. 박훈정 감독의 다음 작품 <폭군>에도 잇달아 출연한 김선호를 만나 가슴 떨리는 영화데뷔작 경험을 들어보았다.
Q. 시사회를 갖고 <귀공자>가 베일을 벗었다. 데뷔 영화를 본 소감은.
▶김선호: “떨린다. 언론시사회는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다. 시사회 날 제 영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소리 지르고 고개 숙이면서 봤다. 배우가 자기 연기를 보는 게 쉽지가 않다. 다시 봐야겠다. 개봉한다니 설레고 떨리고, 기쁘고, 만감이 교차한다.” (자기 연기가 아쉬운가?) “처음 스크린에 내 얼굴이 너무 크게 나오니까. 제 단점만 보인다. 작품 찍은 지 1년이 지났다. 보면서 ‘왜 저랬지?’ 영어하는 장면 나올 때 일어나려고하니 (김)강우 형이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가도로 장면에서는 소리 질렀다. 대신 강우 선배 나오는 장면은 편하게 보았다.”
Q. 자기가 출연한 작품에 대한 반응이나 기사를 찾아보는지.
▶김선호: “이번 영화가 신기했다. 인터뷰하는 것도 신기하다. 코로나 때문에 몇 년 만에 하는 것이라. 힘들지는 않고 재밌다. 이렇게 기자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재밌다. 긴장되어 어제 잠을 못 잤다. 하지만 재밌다.”
Q. 무대인사를 한 소감은?
▶김선호: “그것도 재밌었다. 배우로서 내가 직접 무대에 서게 된다는 것이 조금 설렜다. 영화 볼 때 포스터 보고 마음에 들면 보는 편이었었다. 보면서 어느 감독 작품인지는 몰랐다가 나중에 ‘어, 감독님 작품 봤어요’ 그랬다. 관객으로 객석에서 그렇게 보다가 어느 날 아는 배우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로에서 연기하던 배우가 저기 왜 있지? 그랬다. 그러던 제가 영화에 나오고, 무대에 섰다. 그날 시사회하고 무대인사할 때 무대에 올라가는 동선이 복잡하고 신기했었다. 제가 특별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하하하)
Q. 드라마, 예능에 이어 영화에 처음 출연하였다.
▶김선호: “매번 처음은 긴장되고 떨린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정신없다. 첫 영화인데 시사회에서 집중해서 못 본 게 아쉽다. 연기하면서는 큰 문제는 없었다. 요즘 드라마 현장이나 영화 현장이 다른 게 없다. 영화는 테이크가 더 많이 가고, 디렉팅 받는 시간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다. 막상 무대인사 하니까 땀이 나더라. 난 내가 말 잘 할 줄 알았는데. 그날 무대인사할 때 강우선배는 재밌게 말을 잘 하더라. 연륜은 무시 못 하구나 생각했었다. 시사회 끝나고 간담회할 때 제가 그렇게 말을 못하나 충격 먹었다.”
Q. 제목이 ‘귀공자’인데 본인이 귀공자같이 나왔다고 생각하는지.
▶김선호: “그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번 영화에 귀공자는 많다. 돈 많은 ‘찐’귀공자도 있었고, 숨겨진 귀공자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부담 갖지 않고 연기했다.”
Q. 기자시사회 당일 저녁에 일반시사가 있었다. 팬들이 기립박수를 쳤다는데.
▶김선호: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 시간이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 배우는 관객 없이 혼자 연기할 수 없다. 나의 편이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 영화 보면서 ‘저 연기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나오는 길에 팬들의 박수와 응원을 보고 잠시 잊게 된다. 심적으로, 연기적으로 바로 서게 해 주는 게 팬들이다.”
Q.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 배우 없이는 (귀공자)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김선호 배우는 일종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김선호: “‘대안이 없었다’는 말은 이번에 처음 들었다. 저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거나 시험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독님은 철저히 연출자로서 김선호라는 배우가 그 역할을, 그 인물을 잘 표현할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찍으면서 ‘괜찮았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것이 ‘김선호답게’ 잘 했다는 것 아닐까. 김선호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고, 이런 방식으로 느와르를 풀 수 있다고 평가하신 것 같다. 큰 부담 안 가지려고 한 걸음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Q. 강태주를 쫓아가는 장면은 어땠나. <터미네이터>의 ‘T1000’ 같았다. 연기에 참고한 작품이 있는지.
▶김선호: “대본 받았을 때 ‘왜’라는 질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 도와주려고 해’라고 말하면 될 터인데. 감독님은 마르코(강태주)는 겁을 먹은 상태이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위험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귀공자를 연기하며 레퍼런스 삼은 것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악행과 선행의 구분이 모호한 알렉스(말콤 맥도웰 연기) 같았다. 이 아이는 아직 사회적 행위에 대한 구분이 없는 것 같다. 아이처럼 범행을 저지르며 웃는다. 그 점에 대해 감독님이랑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언제든지 자신감 넘치고, 지금의 상황을 즐긴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인생 마지막을 즐기는 것처럼. 그래서 ‘왜?’라는 질문보다 상황을 즐기는 것에 집중했다.”
Q. 함께 공연한 배우들에 대해서 한 말씀.
▶김선호: “‘김강우의 재발견’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제 촬영 분량이 아니어도 현장에 갔었다. 딴 데 갈 데가 없으니. 강우 선배는 진지한 연기를 하면서도 재밌게 한다. ‘지그재그로 뛰어라’라니. 굉장히 디테일하고. 호흡을 작게 쓰면서 대사를 또렷하게 한다. 배우로서 기술적인 측면, 집중력이 대단하다. 정말 프로답다. 극에서 부딪힐 때 그냥 좋았다. (강)태주는 워낙 성실하고 진짜 연기를 잘한다고 느꼈다. 눈빛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남다르다. 그리고 영어는 왜 그리 잘하는지. 미국에 간 적도 없다고 하더라. 부러웠다. 눈빛도 그렇고. 고아라 배우는 선배인데 임하는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대본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고민해서 현장에 온다. 그걸 보고 저도 연습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라 선배는 현장도 많이 경험해본 친구라 에너지 넘치고, 현장을 밝게 한다. 배울 점이 많았다.”
Q. <귀공자>로 스크린 데뷔를 하고, 같은 감독의 작품 <폭군>에도 출연했다. 배우로서 성장한 것 같나?
▶김선호: “작품을 할 때 초반에 질문을 많이 한다. 감독과 배우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서로 살아온 인생이 다르니 사용하는 언어가 다를 것이다.” (카페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뭇가지를 보고 어떻게 말할까. 쓸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날이 유독 화창해서 예쁘고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촬영 초반에 감독의 의도를 빨리 알아들으면 유연하게, 빨리 대처할 수 있다. <폭군> 찍을 때는 그런 것 때문에 지연되는 별로 없었다. 박훈정 감독님은 ‘넌 할 수 있다’, ‘더 재밌게’하라고 지시한다. ‘재밌게’는 ‘웃기게’하라는 것이 아니다. ‘풍부하게’, ‘맛있게’ 하라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그러면 감독님이 ”맞아. 되잖아.‘ 하신다. 그러면서 ’한 번 더 하자‘ 그러신다. 그런 식으로 두 번째 작품은 여유 있게 만들어 간 것 같다.”
Q. <귀공자>는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까.
▶김선호: ”감독님이 우스갯소리로 한 것이다. 확신을 갖고 한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는 했다. ’선호야, 잘 들어. 넌 이제 쫓기는 거야. 그들에게 사기를 쳤으니. 첫 장면은 이럴 거야. 가시에 찔리는 거야. 그러면 많이 아파.‘ 하는 식으로.“ (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출연할 것인가?) ”해야죠. 불러주신다면. 감독님이 ’싸우지 않는다면‘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싸우겠는가. 전 감독님 말 잘 듣고, 형들에게 까불지 못하는 편이다.“
Q. 제주도에서의 촬영은 어땠는가.
▶김선호: “제주도에서 원 없이 살아본 것 같다. 제주도가 감독님 영화색깔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신세계‘, ’마녀‘, ’낙원의 밤‘처럼 느와르적인 색을 표현하는데 좋은 것 같다. 감독님께 물어보니 제주도의 광(光)이란 게 서울 도심의 것이랑 느낌이 조금 다르라고 했다. 태국에서 촬영할 때 그 말의 뜻을 확실히 알겠더라.”
Q. 태국 로케이션은 어땠나.
▶김선호: “태국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나를 보고 ‘홍반장!”이러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분이세요?‘ 물어봤다. 공항에서부터 보는 사람들이 ’홍반장‘, ’홍반장‘ 그러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알아보시는 것이었다. 감독님도 당황하셨다. 팬들이 촬영장 찾아오기도 했었다.“
Q.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김선호: “같이 일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박훈정 감독은 대본도 안본 상태에서 일단 만났고, ‘하고 싶어요’라고 했었다. 그러고 대본 받았다. 절 불려주시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런데 내가 보는 건 다 재밌는 것 같다.”
Q. 해 보고 싶은 연기나 장르가 있다면.
▶김선호: “옛날엔 살인마 역할도 해보고 싶었다. ‘귀공자’도 했으니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느와르도 김선호 방식으로 가능하네’ 같은 소리를 듣고 싶었다. <폭군> 하면서 준비가 필요하다고 혼자 자괴감을 빠지기도 했다. 일희일비하는 내가 싫었다. 연기칭찬만큼 배우에게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한다. ‘와, 잘했어’. 이 한 마디에 정말 날아갈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딱 3일 좋다. 3일 쉬고 다시 현장 오면 다시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서 일희일비 하지 말고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
Q. 김선호에게 <귀공자>의 의미는?
▶김선호: “영화로서는 첫 작품이다. 영화의 주연으로 영광스럽게 나왔다는 것, 이상하지만 재밌는 사이코패스 같은 캐릭터를 맡았다는 게 의미 있는 것 같다. 모든 작품이 소중하지만 첫 작품이니 소중하고 특별할 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 처음으로 놀이공원 간 것처럼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Q. 본인 연기에 만족 못하는 편인가.
▶김선호: “배우들은 다 그럴 것이다. TV 드라마 할 때도 보기 힘들었는데 커다란 스크린으로 나를 보니 ‘야, 이거~’하고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어떡하지.. 못 보겠다’ 그랬다. 그럼에도 다시 보면 괜찮을 것이다. 드라마도 처음엔 그랬다. 처음엔 내가 나온 작품 모니터링을 못하겠더라.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정말 이불킥이란 것도 했다.”
Q. 이번 영화 맘에 드는 장면이 있었다면.
▶김선호: “고생하고 찍은 액션신들. 보면서 이건 좀 더 멋있게, 연습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Q. 배우의 자세?
▶김선호: “배우는 쓰임을 당하는 직업이다. ‘이 배우 아니면 안 돼’ 같은 소리를 듣는 배우 가 되려고 한다.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는 작품이 남기고 싶다. 나도 선배들의 레퍼런스가 있었기에 연기를 빨리 배운 것 같다. 히스 레저의 조커처럼. 그런 레퍼런스를 참조하고 연기 역량을 넓혔다.”
Q. 김선호 배우에게 연기를 가르쳐 준 선배가 있다면.
▶김선호: “진짜 순수하게 연기를 대하는 자세는 오만석 선배로부터 배운 것 같다. 어떤 프로젝트를 연출했었는데 대본을 정말 열심히 보더라. 13번 이상 보고 임한다. 배성우 선배와 김소진 선배에게 연기를 잘하는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조)정석 형이랑 같이 하며 많이 배웠다. 경험이 더 넓어진 것 같다.” (김선호 배우가 언급한 배우들은 같은 학교(서울예대)거나 드라마와 연극에서 함께 작업한 배우들이다)
”지금 드라마 ’망내인‘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를 두 편 했으니. 재밌는 대본이 있으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면, 마음이 동하는 뭔가가 있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김선호 배우는 준비해 온 선물이라며 텀블러와 콜라(캔이 아니라 보틀)를 인터뷰에 참여한 기자에게 하나씩 건네주었다. “텀블러를 준비했습니다. 제 이름 크게 쓰여 있으면 안 쓸 것 같아서 작게 붙였습니다. 콜라는 재밌으라고 준비했습니다.” 하얀 색 텀블러에 작은 이니셜 ‘KSH’가 붙어있었다. 김선호 배우가 극중에서 코카콜라를 병으로 마시는 영화 <귀공자>는 지난 21일 개봉했다.
[사진=스튜디오앤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