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말, 튀니지 혁명이란 게 해외뉴스를 장식한 적이 있다.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튀니스를 시작으로 많은 중동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도미노처럼 벌어진 것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장기독재와 정부의 부패, 인권유린 등으로 민중이 고통 받았다는 것이다. 게다라 무슬림의 영향(?)으로 여성의 지위는 극한의 상황이었다. 어땠을까. '중동의 봄'을 이끈 튀니지에서 당시 여성의 지위를 엿볼 수 있는 튀니지 여성감독의 영화가 한 편 한국에 소개된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7회 아랍영화제에서 소개된 카우테르 벤 하니아(Kaouther Ben Hania) 감독의 <뷰티 앤 독스>(원제:Aala Kaf Ifrit / Beauty and the Dogs,2017)란 작품이다. 작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이번 아랍영화제 '포커스2018:일어서다,말하다,외치다'라는 비장한 타이틀을 단 섹션에서 상영된다. 영화제에 맞춰 감독도 한국을 찾았다. 영화는 한 여대생이 겪어야한 악몽 같은 하룻밤을 담고 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영화가 시작되면 21살 여대생 마리암(마리암 알 페르자니)의 들뜬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밤 호텔에서 열리는 자선파티에 참석하는 것. 기숙사 친구에게 특별히 드레스도 빌려 입는다. 짧고 타이트한, 그래서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 옷이다. 파티장에서 호감 가는 남자 유세프(가넴 즈렐리)를 만나 파티장을 떠난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마리암이 한밤중의 도로를 달려가는 장면이다. 유세프가 쫓아온다. "이젠 끝났어. 겁먹지 마!" 여자는 겁에 잔뜩 질려있다. 옆에 차가 지나가면 기겁을 한다. 관객은 조금씩 조금 전, 그 여대생에게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고, 그 여자가 겪게 될 끔찍한 악몽을 지켜봐야한다.
여자는 그 남자와 해변에 나갔다가, 경찰의 심문을 받게 되고, 경찰은 남자를 위협하여 떼어놓고는 경찰차 안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것이다. 여대생은 핸드폰이 든 지갑 등을 경찰차에 둔 채 경우 빠져나온 상태였다. 유세프는 마리암을 일단 병원으로 데려 간다. 경찰을 고소하기 위해서 증거를 채취하려고. 그런데 이때부터 마리암의 악몽은 모든 관객의 악몽이 되어 버린다.
“이름? 신분증?” (그 놈들 차에 있어요) “신분증 없인 접수 못합니다.”
아무리 매달려도 안 된단다. "어떻게 해야 하죠?" 경찰에 신고부터 하면, 조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비틀대며 경찰서에 간다. 보기에도 음흉해 보이는 남자 경찰들의 시선이 '파티드레스의 마리암'을 훑어본다. 전혀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 경찰서에서 한 차례 수모를 당한 마리암과 요세프는 또 다른 경찰서에 갔다가 더 끔찍한 수모를 당한다. “이 남자와 관계는? 두 사람 간통이지, 체포하겠다.”는 협박.
이날 밤 두 사람은 경찰들의 협박과 위협 속에 이 곳 저 곳을 옮겨 다니며 '증거물채취를 위해 고통 받는다' 속옷까지 벗어서 내놓는다. 그리고 그 악마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경찰서에서 악몽은 계속된다. 조사받을 때 불쑥 들어와서 낄낄대는 그 악마. 그리고, 이번 일을 아버지에게 일러 가문의 수치로 만들겠다며 협박하고 고소취하를 종용한다. 마리암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화가 끝난 뒤,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열띤 GV시간이 이어졌다. 감독은 이 영화는 튀니지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다음해에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하루밤새, 12시간동안 두 경찰서를 오가며 악몽에 시달리는 여성을 담았는데 실제로는 24시간동안 7군데 경찰서를 오가며 고통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경찰들은 법의 처단을 받았고, 이 영화는 현 튀니지 문화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영화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화가 성폭력 예방과 대처법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살인의 해부>(1959)가 떠올랐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살인범(벤 가자라)의 변호를 맡았다. 그가 아내를 강간한 남자를 총으로 쏘아 죽인 사건이다. 변호사는 분노에 의한 순간적 정신착란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검사측은 아내의 평소 행실을 문제 삼아 '강간'이 아닌 '화간'이었음을 내세우며 살인죄를 주장한다. 1959년의 미국 법정드라마에서도 '강간당한 여성'이 다시 한 번 법정에서 발가벗겨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의 튀지니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고. '미투 열풍'이 불어 닥친 2018년의 한국이라고 뭐가 다를까.
그래도,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용기를 갖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손길을 내밀 곳은 많다. 무엇보다도, 마리암처럼 죽음의 공포와 불명예의 저주 등을 끝내 이겨내며 고소취하 없이 “법정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는 의지가 중요할 것이다.
여하튼 카우테르 벤 하니아 감독은 '쟈스민 혁명'이니 '아랍의 봄'이니 하는 거대담론의 중동에서, 여성의 문제를 신중하게 영화에 담아냈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