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와 캐슬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가 각기 9개 후보에 오르며 최대 경쟁을 펼쳤다. 두 사람은 한때는 부부였고, 영화동료였었다.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은 캐슬린 비글로에게 돌아갔다. 이 놀라운 여감독은 ‘폭풍 속으로’, ‘스트레인지 데이즈’, ‘제로 다크 서티’ 등의 작품을 통해 여느 할리우드 남자감독 못지않게 호쾌한 액션과 묵직한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고 있다. 그녀의 최신작품은 1967년의 불타는 미국을 다룬 <디트로이트>(원제:Detroit)이다.
베트남에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폭동이 일어났었다. 백인사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던 흑인(African Americans,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일으킨 폭동이었다. 가게를 불 지르고, 진열된 상품을 훔치는 그런 전형적인 도시폭동이었다. 그런데, 폭동이 일어난 사유가 전형적이다. 불온한 사회분위기, 돌발적 사태발생, 인종차별적 사고방식을 가진 경찰들에 의한 강압적 시위진압 등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캐슬린 비글로 감독은 그해 여름 미국사회를 뒤흔든 디트로이트 폭동을 영화에 담았다. 특히 7월 25일에서 26일 사이에 디트로이트의 알지어스 모텔에서 발생한 경찰독직폭행사건(Algiers Motel incident)에 집중한다.
영화는 허가 없이 주류를 판매하던 한 클럽을 단속하는 디트로이트 경찰의 모습을 담는다. 흑인의 모임을 분쇄하려는 작전이었는데 검거과정에서 평소 불만에 가득 찼던 인근 흑인들의 분노를 야기한다. 경찰차에 술병을 던지던 일단의 무리는 곧이어 가게를 불태우고, 약탈을 시작한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마침내 주 경찰과 군이 투입된다. 탱크를 앞세우고 사태진압에 나서지만 알지어스 모텔에서는 사태가 엉뚱하게 번진다. 모텔 쪽에서 총소리가 나자 디트로이트 경찰, 주경찰, 주방위군들이 몰려가고, 특히나 인종차별적 경향이 심했던 경찰 크라우스(윌 폴터)와 동료들이 흑인 투숙객을 몰아붙이며 끔찍한 폭행과 총기 처형을 벌이기 시작한다. 당시 인근 건물 경비원으로 일하던 흑인 메린 디스뮤크스(존 보예가)가 목격하게 되는 알지어스 모텔은 끔찍하다. 비글로 감독 작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단한 카메라 워킹으로 피해자들의 당시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모타운을 통해 음반을 낼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던 래리(알지 스미스)를 비롯하여, 월남전 참전용사였으면서도 고스란히 경찰의 폭행을 감수해야했던 그린(안소니 마키), 단지 흑인들과 있었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백인여자들까지.
알지어스 모텔 장면을 거의 호러수준의 공포로 이끌던 비글로 감독은 흑백 인종갈등의 분노를 법정씬에서도 이어간다. ‘전원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과 능글맞은(악마같은) 경찰 쪽 변호사와 정의롭지만 실제적 역할을 못하는 검사까지 50년 전 미국 땅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관객은 고구마 백개의 분노를 갖기에 충분하다. 영화는 캐슬린 비글로가 일방의 주장에 근거한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감독은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영화적으로 담으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캐슬린 비글로의 이번 작품을 보면 그녀가 1995년에 내놓았던 ‘스트레인지 데이즈’를 다시 보게 된다. 그 영화에는 흑인 래퍼를 마구 폭행하는 백인경찰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그 장면은 ‘로드니 킹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을 것이다. 폭행경찰이 무죄로 풀려나자 분노에 찬 흑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LA를 불바다로 만들었었다.(1992 Los Angeles riots) 그 사건은 당시 LA한인사회에도 큰 피해를 안겨주었고, 오랜 생채기를 남겼다.
여하튼 캐슬린 비글로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영화를 용감하게, 우직하게, 폭발적으로 완성시켰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