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걸작영화 ‘박하사탕’(1999)에서 설경구의 첫사랑 윤순임을 연기하며 영화계에 데뷔한 문소리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 잇달아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문소리는 뇌성마비장애인을 훌륭하게 연기하며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그 뒤 20여 년 동안 꽤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충무로의 중견 여배우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최근 나온 작품 중에는 도 있다. 무슨 역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선동자로 목소리연기를 했다. 그 영화는 ‘남편’ 장준환 감독의 작품이다.
여하튼, 베니스에서 상탄 충무로 중견배우, 남편도 유명영화감독인 문소리는 평소 어떻게 지낼까.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가 직접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물론 리얼 라이프를 담은 것은 아니고, ‘오늘을 사는 충무로 중견 여배우’가 겪을 법한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바로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작품이다. 원래 이 작품은 문소리가 나이 들어, 영화를 배우며 연출한 세 편의 단편영화,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을 모아/이어 완성한 작품이다. 오늘밤 KBS <독립영화관> 시간을 통해 방송된다.
‘중견 여배우 문소리’는 스크린 밖에서는 힘든 소시민일 뿐이다. 오늘도 며느리, 딸, 엄마, 아내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한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무척 힘들 것이다. 영화 커리어에서는 이제는 들어오는 변변찮은 작품도 없다. 기껏해야 나이 많은 여자, 뻔한 아줌마 캐릭터가 다이다. 아직은 ‘잘 나가는 여배우의 위엄’을 지키고 싶은데 말이다.
여배우 문소리는 자신의 로드 매니저와 티격 대고, 영화사 사람과 말 섞고, 시답잖은 시나리오를 들이미는 감독과 입씨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원장님과 억지웃음과 함께 사진 한 컷 찍어주고 엄마 임플란트 할인받아야하고, 은행가서는 조금의 특혜를 위해 종이에 사인을 해 줘야한다.
전반부에는 참 피곤한 여배우의 삶을 사는 문소리를 보여주다가 후반에 들어서는 의외로 묵직한 영화철학(?)을 다룬다. 여배우의 삶, 배우의 길, 감독과의 관계, 신인배우의 자세, 이른바 '걸작과 걸레작'의 차이 등에 대한 ‘업계 시선으로 보면’ 꽤 예민하고, 수준 높은 말싸움을 보게 된다.
문소리는 자신의 영화적 삶을, 그리고 영화판에서 지켜본 일반적인 광경을 재밌고, 공감가게, 흥미롭게 펼친다. 문소리와 함께 출연한 성병숙, 윤상화, 이승연, 전여빈, 윤영균 등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넘어 아주 천연덕스럽게 연기란 걸 해낸다. 재밌다. 오늘 밤 12시 30분. KBS 1TV방송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