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전주국제영화제기획 특별단편선으로 <접몽>(유진목 감독), <스승의 날>(이지향 감독), <트랜짓>(문혜인 감독) 등 세 편의 단편이 시청자를 찾는다.
유진목 감독의 <접몽>은 런닝타임 25분의 흑백영화이다. ‘5년차 부부’인 경주(김신록)와 민재(전석찬)의 일상을 담고 있다. 평온한 커플의 일상인 듯하면서도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안겨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옥상(테라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경주의 모습을 한동안 보여준다. 그러더니 이네 경주는 소파에서 잠이 든다. 그러다가 남편이 문을 고치는 소리에 깨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는 시장에서 이것저것 나물을 고른다. 그러다가 조금 걸어가다 돌아와서는 생각이 바뀌었다며 환불해 달란다. 깍쟁이 주부의 평범한 삶인가? 아니면 시나리오에 매달린 스트레스 때문인가. 남편과의 불화가 깊어지더니,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접시가 하나 사라졌다고 또다시 남편과 언성을 높인다. 남편과 야외에 나왔다가 화장실에서 신경질적인 한 여자(김은미)와 마주친다. 어이없이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오니, 방금 그 여자가 자신의 남편과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멍한 표정의 경주,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고나서야 제목 ‘접몽’이 이해가 간다. ‘접몽’은 ‘호접지몽’(蝴蝶之夢)이다. 중국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의 대표적 경전인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가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녔단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나니 자신이 장자라는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장자가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물론, 이 이야기는 ‘테넷’ 같은 시간의 인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철학적으로 보아,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혹은 물아일체가 된 선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 <접몽>을 보는 관객은 경주의 신경질적이고 날 선 반응에 진저리를 치게 된다. 점점 고조되어가는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날 무렵, 마지막 신에서 크게 한 방을 먹는 셈이다. 그것이 경주의 시나리오 속 이야기가 되었든, 아니면 부부관계의 파국이었든 ‘나’의 상태가 ‘꿈속에서 깨어난 나’처럼 구분이 안 되는 무아지경의 신천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주를 연기한 배우는 드라마 <괴물>과 넷플릭스 <지옥>을 거치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김신록이다. 짧은 시간에 극도로 예민해진 인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유진목 감독은 각본과 편집도 함께 맡았다. 감독은 이 작품의 연출의도에 대해 “꿈도 현실도 영화에서는 하나가 된다.”고 밝혔다. 영화 말고도 시집 『연애의 책』과 『식물원』,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산책과 연애』을 낸 작가이다. 영화에 미련이 남아 서점으로 달려가 시집을 찾아볼 것 같다.
▶제목: 접몽 ▶감독/각본/프로듀서/편집/미술: 유진목 ▶출연 : 김신록, 전석찬 ▶촬영: 백문수 ▶제작: 목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