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돈키호테’란다. 1605년 처음 발간된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400년 동안 5억 부가 팔렸다고 추산된다. 물론, 오리지널 원작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궁금하다. 우리나라에 민용태, 박철 교수 등이 역작이라고 할 번역서를 내기도 했다. 워낙 두꺼운 책이고 조금 오래된 스타일이라서 쉬 읽기는 어렵다. 대신, 압축판, 중역본, 영화나 뮤지컬 등 다양한 버전으로 ‘돈키호테’를 접한다. 그래서 ‘돈키호테’라는 작자가 허망한 꿈을 꾸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미치광이 혹은 집념의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가 고뇌하는/우유부단한 남자라는 것을 알듯이 말이다.
돈키호테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 조승우와 정성화가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이 여전히 가슴에 울리는 듯한데 이번 공연에서는 홍광호와 오만석이 풍차를 향해 달린다.
미국의 데일 와써맨이 각색한 ‘미치광이 기사’ 이야기는 1959년 미국 CBS TV를 통해 드라마로 처음 방송된다. 방송사는 제목을 ‘나, 돈키호테’로 잡았단다. 이후,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어진다. 데일 와써맨은 세르반테스의 소설에서 출발하여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돈키호테’만큼 파란만장했던 세르반테스의 본인의 이야기를 적절히 섞은 것이다.
세무서 공무원이었던 세르반테스는 감히 교회에 차압딱지를 붙였다가 신성모독죄로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지하 감옥에 보내진다. 그런데 재판도 받기 전에 감옥 속 죄수들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쓰다만 원고를 보여주며 ‘재미있는 연극’을 펼치겠다고 한다. 그렇게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에서는 미친 기사 알론조의 활극이 시작된다. 우리가 다 아는 돈키호테와 산초와 알돈자(둘시네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한 미치광이가 기사가 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모험담이다. 그 기사의 길을 따라가며 측은함과 함께 그의 행동과 말에서 묘한 공감을 갖게 된다. 그것은 비겁함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억눌러 숨죽이는 사회에서, 양심과 정의의 소리를 저당잡힌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운 각성의 울림을 안겨주는 것이다. 실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그에게서 순수와 열정, 신념과 희생의 고귀함을 배우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안위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보답도, 응당 받아야할 칭찬도, 충분한 자격의 지위도 원하지 않는다.
이번 공연에서 돈키호테 역은 홍광호와 오만석이, 알돈자(둘시네아)는 윤공주, 최수진이 맡았다. 산초 역은 이훈진과 김호영이 연기한다. 산초는 돈키호테에게 힘을 주고, 둘시네아에게 정을 주고, 관객에게는 당연히 웃음과 페이소스를 안긴다.
돈키호테가 휘어진 칼을 휘두르며 위태하게 서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부르고, 산초가 광적으로 “좋으니까”를 부르고, 알돈자가 “슬픈 수염의 기사”를 부른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스페인의 한 미친 노인이 부르짖는다. 그리고 그 노인이 한 말,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되어질 모습을 연모하나이다”가 얼마나 깊은 뜻을 지녔는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왜 그리 많이 팔렸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보고나서 유튜브를 찾고, 노래를 듣고, 다시 보고싶어지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홍광호 / 오디컴퍼니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