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새크라멘토에 대한 애정 어린 문구로 시작되지만, 그곳에서 자라는 열일곱 소녀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에게 고향은 탈출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공간일 뿐이다.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명명하며 특별한 존재가 되길 꿈꾸는 그녀는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가족과 보수적인 가톨릭 고등학교를 벗어나 뉴욕의 번듯한 대학으로 떠나길 열망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사춘기 소녀의 성장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크리스틴의 삶은 화려한 로맨스나 극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 단짝 친구와 멀어지고, 첫사랑에 실패하며, 부모님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과정은 우리가 지나온 사춘기의 단면과 닮아 있다. 특히 엄마와 함께 오디오북 <분노의 포도>를 들으며 눈물짓는 장면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도로 위에서 불안정하게 행복을 찾아 떠도는 미국 서민 가정의 삶의 무게를 상기시킨다.
둥지를 떠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소녀는 결국 껍질을 깨고 나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자신을 키워낸 공간의 의미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이름마저 부정하며 날아오르려 했던 ‘레이디 버드’가 다시 ‘크리스틴’으로 돌아와 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관객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한 뼘 더 자라난 영혼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성장의 보편적인 진리를 유려하게 담아낸 수작이다.ⓒKBS미디어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