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29번째 장편영화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이번 작품의 러닝타임은 61분이다. 그동안 홍상수 감독 영화를 꾸준히 따로잡은 씨네필이라면 이번 작품에서도 ‘홍상수월드’의 동일한 감흥을 얻게 될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라는 미명 아래 자기 이야기(로 의심되는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스크린에 영사시킨다. 의욕상실의 남자가 나오고, 자의식 과잉의 여자가 나온다. 찌질한 아저씨가 인사동에서 막걸리를 마실 것이며, 다음 골목길에서 만난 외국인과 예정에 없는 산책을 하고, 초록색 병(소주)을 나눠 마실 것이다. 남자는 끊임없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여자는 바르게 살기의 힘듬을 말할 것이다. 술판의 끝에서는 개똥철학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제작실장이 영화에 등장하여, “우리 이야기에 관심 갖지마세요”라고 직접 말한다. 홍상수 영화는 그런 미니멀리즘의 극치이다. 무려 29번째 작품 <물안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할까. 아니 전해줄 이야기가 남아있을까. 그렇게 홍상수 감독 영화를 보게 된다.

신작 <물안에서>는 제주도에서 영화를 찍는 젊은 영화인의 이야기이다. 언젠가부터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주인공을 된 신석호가 단편영화를 찍으려는 승모를 연기한다. 이번엔 돈이 없다. “아르바이트로 겨우 구한 300만원으로,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머물면서 단편영화를 찍으려고 해.”란다. 그의 여정에 친구인 상국(하성국)과 후배 남희(김승윤)가 동참한다. 두 사람은, 혹은 세 사람은 제주도 바닷가에서, 숙소에서, 그 사이에 갑자기 멈춰 서서는 ‘돌발’연기를 이어간다. “어, 바다에 고동이 많아~”, “돌담에 핀 꽃이 참 이쁘네~”라고. 무슨 영화를 어떻게 찍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만드는 일상적 과정임을 알고 있다) 그렇게 아까운 시간, 혹은 창작이라는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미니멀한 대발견을 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한 여인네를 발견한 승모는 자신의 영화는 이래야한다면서 상국과 남희와 함께 ‘단편’을 찍기 시작한다. 대단할 것 없는 대단한 ‘29번 작품’이다.

홍상수 감독은 실험적, 도전적, 창의적 작품을 쉼 없이 내놓는 영화인이다. 흑백영화라든지, 미니멀한 스토리라든지, 두 사람의 동선이 효과적인 편집 등을 볼 때마다 ‘영화적 재미’와 ‘일상의 감동’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번에는 기술적인 실험을 더한다. 일부러 아웃포커싱된 화면을 커다란 스크린에 띄운다. 모르고 극장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아마 영사사고라도 난줄 알 것이다. 눈이 나쁜 사람이 안경 벗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저 배우와 저 배경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그럼 대사가 중요할까? 그렇지도 않다. 일상적인 말들이 반복될 뿐이다. 물론, “300만원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 명예야!”라는 대사를 굳이 남기려한다. 마지막까지 기대하게 만든 ‘제작실장’ 김민희의 노래도 뭉개지며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물안에서>는 결코 수중카메라로 찍은 것도 아니고, 어안렌즈로 찍은 것도 아니다. 감독이 왜 ‘물안에서’라는 미스터리한 제목을 택했는지도 사실 궁금하지 않다. 

그럼 홍상수 감독이 <물안에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 괜한 선문답이 아닌 이상, 그것은 '영화에 이르는 애정, 완성으로 향하는 열정'으로 수렴될 것이다. 물론, 그전에 홍상수 감독은 그에 대한 답변과 또 다른 질문을 먼저 내놓을 것이다. No.30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