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예능의 입담꾼’, ‘팟캐스트의 인맥팔이 영화인’, ‘김은희 작가의 철없는 남편’으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이 마침내 본업으로 돌아왔다. <기억의 밤> 이후 6년 만에 영화 <리바운드>로 씩씩하고, 발랄하게 돌아온 장항준 감독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 <리바운드>는 5일 개봉되었다. 지난 달 개봉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여전히 3점슛을 쏘아올리고 있고, ‘리바운드’는 개봉 첫날 3만 관객을 불려 모으며 코트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Q. 개봉을 앞두고 열린 일반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장항준 감독: “영화에서 골 들어갈 때마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더라. 안 들어가면 한탄이 나오고. 분위기 정말 좋았다. 영화 끝나면 박수 쳐주고.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이런 경험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으흐하하. 기분이 좋아요. 블라이드 시사에서 평점이 좋게 나와서 기분이 좋다. 신인배우들이 나오는 작품이라 마땅히 홍보할 방법이 많지 않다. 일단 영화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를 많이 해서, 입소문을 많이 내려고 한 것 같다.”
Q. <리바운드>는 2012년 고교 농구대회를 모티브로 한다. 언제부터 준비를 했나.
▶장항준 감독: “제작사 장원석 대표(B.A엔터테인먼트)가 관련 기사를 보고는 바로 학교랑 강양현 코치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영화로 꼭 만들고 싶다’면서 허락을 받은 것이다. 권성휘 작가는 언제 촬영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5년 전에 그 시나리오를 받은 것이다. 보면서 ‘어? 너무 작위적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았다. 그 때 이랬단 말인가? 이 영화 하고 싶었다. 설렜고, 피가 끓었다.”
Q. 어떤 점이 장항준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장항준 감독: “정말 진정성 있는 이야기였다. 충무로 상업영화의 주류는 아니다.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난 한 번 간 길을 안 가는 사람이다. 올 때는 돌아서라도 딴 길로 오는 사람이다. 무슨 심정으로 이 사람들이 농구를 하려고 할까.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지? 궁금증이 컸다. 시나리오를 고쳐야할 것 같았다. 그 때 다른 일로 바쁠 때였다. 옆에서 와이프(김은희 작가)가 보더니 ‘오빠, 이거 할 거야?’고 물어봤다. ‘응. 하려고.’ 그 때 딸도 같이 보더니 ”아빠, 이거 꼭 했으면 좋겠어. 만약 아빠가 아니어도 누군가, 언젠가 꼭 만들었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그 때 딸은 초등학생이었다. 입시나 성공에 대한 강박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고쳐보고 싶다고 그랬다. ’이게 웬 떡?‘ 구성을 다시 하고, 신을 조금 바꾸고, 뺄 건 빼고 그랬다.“
Q. 농구 경기를 영화로 화면에 담기는 어려웠을 텐데.
▶장항준 감독: ”그런 것에 매력을 느낀다. 내가 안전빵을 싫어한다. 드라마 <사인>할 때도 그랬다. 이걸 한다고? 시체 해부하는 것을? 그 때는 로코, 이런 것 뿐이었다. SBS에서 편성에 펑크가 나서 대타로 들어간 작품이다. 남들이 안 간 길을 가는 쾌감이 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난 쉬운 것도 잘 못한다.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Q. 실제와 비교했을 때 영화는 어느 정도 픽션이 가미된 것인가.
▶장항준 감독: ”공익근무요원인 강양현 코치가 농구팀에 합류한 것은 24살 때였다. 그 때부터 몇 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이걸 영화에서는 25살 때의 이야기로 압축한 것이다. 군산대회에서 심판이 공에 맞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격렬하게 항의하다가 퇴장 당한 일은 있다. 사과하려고 농구협회에 찾아가 문 앞에 서 있는 사진도 남아있다. 두 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실제 있었던 일들이지만 이런 게 너무 극적인 장치로 보일까봐 걱정했다. “
Q.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장항준 감독: ”현실을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키나 몸무게가 비슷해야했다. 외모나 버릇, 옷, 신발도 같아야한다고 생각했다. 미술팀이 디테일하게 고민했다. 정진운이 신고 있는 농구화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이미 단종된 것이라서. 인터넷으로 수소문해서 파손된 신발을 겨우 구했다. 밑창이 떨어져나간 것을 수선해서 신고 영화를 찍었다. 다른 선수들도 백방으로 신발과 의상을 구했다. 없는 것은 비슷한 색깔과 색감으로.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은 일정 다른 경기장을 섭외해야했다. 부산 중앙고 체육관은 세월이 지나 새로 단장되어있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체육관을 그 당시 모습으로 뜯어고쳤다. 문을 뜯어내고 옛날 사진대로 꾸몄다. 바닥도 마찬가지로 뜯어냈다. 물론, 나중에 복구했다. 이런 것은 관객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는 송강호 같은 대단한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안재홍, 정진운 두 분 정도 알려지고 나머지는 다들 신인들이다. 무엇보다도 <리바운드>는 실제 이야기라는 것이 중요했다.“
Q. 미국 밴드 펀(Fun)의 ’위 아 영‘(We Are Young)이 사용되었다.
▶장항준 감독: ”현장의 편집기사가 조감독 출신이었다. 그날 촬영 끝나면 바로 편집하겠다고 했다. 후반부 찍으면서 어떤 음악을 쓸까 상의하던 중 ’We Are Young‘도 나오고 다른 곡도 깔아봤다. ’위 아 영‘은 좋기는 한데 (음악사용료가) 너무 비싸서 못 쓸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편집하면서 들어보니 그 곡만큼 맞는 게 없었다. 넥슨 관계자가 편집본을 보고 바로 전화 주시더라 ’그 곡 사겠다‘고. 얼마가 되든 사겠다고. 편집본을 좋아했다. 블라인드 반응도 좋았고. 생각도 못한 제작비가 추가된 경우이다. 한편으로 너무 오버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가사가 너무 찰떡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버해야겠더라.“
Q. 마이클 조던이 나오는 영화도 아니고, 고교농구를 보려는 영화관객이 얼마나 될까. 흥행에 대한 믿음이 있었는지.
▶장항준 감독: ”어떤 일을 오래 하다보면 철학 비슷한 게 생긴다. 남이 좋아하는 것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춤을 추더라도 남의 장단에 맞추지 말자고. 나라도 즐거워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 피가 끓느냐 중요하다. 엎어지면 그건 영화인의 숙명이다. 영화란 것은 처음 기획하고 몇 년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결국 한 번 무산되었고, 준비하던 스태프들이 해산했다. 살아있으면 다시 만나자면서. 다른 작품을 준비하는데 장(원석) 대표로부터 투자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넥슨이 전액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한국영화에 전액을 투자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CJ도 없을 것이다. 막상 다가오니 믿기지 않더라. 드디어 이게 영화가 되구나.“
Q. 넥슨은 어떻게 <리바운드>를 붙잡았을까.
▶장항준 감독: ”넥슨이 당시 영화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찾던 중이었다. 공동제작자인 김영훈 대표(워크하우스컴퍼니)의 형이 하정우 배우이다. 하정우씨가 이 시나리오 너무 좋아했다. 넥슨에서 영화를 하려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한번 전달해 보겠다고 했다. 그 때 넥슨에 19편의 시나리오가 갔는데 만장일치로 <리바운드>가 선택된 것이란다. 그렇게 영화화가 시작된 것이다. 관계자 만나서 물어봤다. 왜 하기로 했는지. 그랬더니 ’감독님. 저희는 이 영화로 돈을 벌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더라. 영화판에 와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이 사람들 장난치나 생각했었다.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20대 이후 이 바닥에서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감독님을 믿으니까, 신인을 기용하든 누구를 캐스팅 하든 저희는 상관없다‘고 하더라. 난 처음부터 신인을 캐스팅하려고 했었다. 캐릭터가 아니라 기성 배우를 보면 감동이 깨질 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냥 부산의 어느 골목길에 있던 사람을 캐스팅하고 싶었다. 넥슨의 말이 고마웠다. 요즘말로 넥슨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였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한번은 부산에서 제일 큰 호텔에서 출장부페가 왔다. 돈을 넣은 사람, 자기 돈을 넣은 사람, 하고 싶은 사람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 하나로서의 가치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을 펼쳐야하는 전쟁터에서 영화가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러 작품 중에 선택되어지는 것이니. (넥슨은) 대단한 일이죠.“
Q.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요즘 핫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장항준 감독: ”영화로 만들어지는 줄도 몰랐다. 요즘 관객은 농구하는 것을 스크린에서 본적이 없으니까.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영화 상영될 때 100만 이상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옛날 만화이니. 개봉되고 나서 매일매일 <슬램덩크> 스코어 체크했다. 매일매일 응원했다.“
Q. 스포츠영화를 찍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장항준 감독: ”스포츠영화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모습을 제대로 구현해야한다. 그런데 배우는 선수가 아니니, 흉내를 낼 수밖에 없다. 동작을 해도 가장 비슷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농구는 1년을 연습해도 자세가 안 나온다. 드리블도 폼이 제대로 안 나오면 무너지는 것이다. 우선 몇 달 동안 합숙하며 합을 맞췄다. 어떤 경기, 어떤 장면에 사용되든. 맞춰 사용하면 된다. 농구 경기는 대단히 역동적이다. 중간에 생각할 틈이 없다. 코트 이쪽에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10초도 안 걸린다. 그렇게 승부가 후다닥 끝나버린다. 고속을 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연습을 끊임없이 하다보니 선수들이 익숙해지더라. 30개 정도의 합이 있다고 하자. ’저건 안양고와의 경기, 17번 합!‘ 이러면, 배우들이 자기 자리 알고는 그 자리로 달려간다. 많은 분들이 농구 장면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찍기도 어렵고, 배우들의 (농구) 실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하지만 나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우들도 신인이었기에 자기들의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정진운. 안재홍 빼고는 다들, 무대인사도 처음이라고 하더라. 다들 열심히 노력했다. 촬영감독과는 장면을 끊지 말자고 했다. ’컷!‘,’컷!‘,’컷!‘해서 이어 붙이는 것은 거짓말이다. 미국이랑 다른 것을 보여주자고 이야기했다.“
Q. 안재홍을 캐스팅했다. 확신이 있었나.
▶장항준 감독: ”<족구왕>때부터 좋아했다. 옆집의 통통한 형 같은, 사람 냄새나는 찌질하기도 하고, 아닌 척 하기도 하지만 허점을 보이는 안재홍이다. 이런 연기를 누가 하겠어요? 박서준씨가 하겠어요? 일단은 올바르고, 선하고, 겸손하고, 생각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배우이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사람을 대할 때 태도가 좋았다. 그의 연기를 좋아했다. 외국 스포츠영화랑 다른 점이 있다. 보통은 불량한 아이들이 있고, 완성형의 전설적 코치가 와서 이들을 교화시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리바운드>는 그렇지 않다. 여긴 코치도 선수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 프로가 되지 못하고, 농구를 포기하고 이제부터 뭘 하고 살아야하나 하는 25살 공익이다 초반엔 아이보다 더 분별력 없게 행동하고, 또 사과한다. 성장드라마인 것이다. 제가 나름 생각하기는 ’리바운드‘는 꿈을 포기한 25살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소외당한 여섯 명이 함께 하는 여행이다 여행의 끝은 모르지만 다들 한 뼘씩 자라있을 것이다.“
Q. 시나리오부터 시작하여, 촬영, 편집과정을 거치며 달라진 게 있는지. 잘려나간 게 어느 정도인지.
▶장항준 감독: ”애초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이 날렸고, 찍으면서도 많이 날렸다. 영화는 선택과 집중이니까. ’이러다간 세 시간 되겠다‘ 싶었다. 엔딩으로 달려갈 때 고민을 했다. 시나리오에는 끝까지 다 있었다. 후반(3,4쿼터) 마지막 부저가 울릴 때까지. 마지막에 선수들이 울면서 관중석 부모에게 인사하는 장면도. ’이게 필요할까?‘ 왠지 아까 끝났어야할 것 같았다. 현장에서 피디에게 ’뒤는 필요 없을 거야. 라커룸에서 끝났어!‘라고 말했다. 피디는 그래도 찍어야한다고 그랬다. 내가 말을 잘 듣잖은가. 그래서 찍었다. 성의 없게. 다 찍고 편집하는데 확실히 라커룸에서 끝내는 게 맞더라. 그래서 후반전 다 날렸다. 분량이 꽤 된다. 원래 편집본의 70%가 완성된 영화이다.“
”아, 원래 교장선생님 이야기도 많다. 애착이 가는 장면도 있고. 강 코치가 체육관에서 선수에게 우리 잘해보자 이야기하고 나오다가 교장 마주치는 장면이 있었다. 교장이 ’이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그런다고 대학에 가겠나, 프로팀에 가겠나. 왜 이 난리야..‘ 뭐 이런 말 하는 장면도 있었고, 교장이 돈 봉투 슬쩍 전해주는 장면도 찍기는 했다. 경기장면 보는 선생님에게 ’경거망동 하지 말라‘고 하고서는 혼자 교장실에서 DMB 보는 장면도 있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다 뺐다.“
Q. 작년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의 <오픈 더 도어>가 소개되었다.
▶장항준 감독: ”그 영화는 말하지 않으면 내가 만든 줄 모를 것이다. 그동안 작품이랑은 전혀 다른 영화이다. 아마 어디, 폴란드 영화감독이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편집은 다 끝났다. 후반작업까지 마치고 개봉을 준비 중이다. <리바운드>가 잘 되면 하반기쯤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게 차분하고, 폭발하는 영화이다. 보면 놀라실 것이다.” (부산영화제 이후, 후반작업을 더한 모양이다)
Q. 차기작은 무엇인가.
▶장항준 감독: ”차기작 말했다가 곤란한 경우를 많이 당했다. 준비하다가 잘 안 되는 것도 영화인의 숙명이다. <리바운드>도 원래 다른 거 준비하다가 엎어진 차에 하게 된 것이다. 전 한 장르를 파질 못한다. 왜 식당들도 전문점, 레스토랑이 있지만 김밥천국이 있잖은가. 난 순두부찌개도 팔고, 김밥도 파는 김밥천국과인 것 같다. 준비하는 것은 블랙코미디이다. <리바운드>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엑소시즘에 관한 이야기이다.“
Q. 김은희 작가의 <킹덤>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장항준 감독: ”다 짠 상태이다. 대충의 얼개는 끝났다. 스토리 라인, 시대배경 다 맞춰놓은 상태이다. 이제 쓰기 시작하면 된다. 김은희 작가는 쉬지를 않더라. 고맙게도.“ (해맑게~ 하하하)
역시 해맑고, 여전히 재미있는 장항준 감독이었다. 장항준 감독의 다이내믹 스포츠 감동드라마 <리바운드>는 지난 5일 개봉되었다. 이 영화가 잘 되면 장항준 감독의 <온 더 도어>와 <블랙코미디 엑소시즘 영화>를 더 빨리 만나볼 수 있을 것 같고, 만에 하나 잘 안되면 TV에서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며 김은희 작가는 더 고생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넥슨의 고민도 깊어질 것 같다. 리바운드 파이팅!
[사진= 바른손이앤에이/ 미디어랩시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