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밤 12시,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2014년 헝가리 영화 <화이트 갓>(Fehér isten/ White God)이 방송된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의 이 작품은 그해 헝가리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내세웠던 작품이다. 감독 이름도 그렇고, 출연자 조피아 프소타, 산도르 즈소테르, 릴리 모노리 등 배우들이 낯설다.
영화는 무시무시한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적이 끊긴 차도에 수십 마리, 수백 마리의 개들이 미친 듯이 내달린다. 자전거를 탄 소녀가 그 앞에 있다. 마치 미친 개떼들, 유기견의 습격 같다.
그리고 영화는 그 전 이야기를 펼친다. 13살 소녀 릴리의 엄마와 새아빠가 학회 참석차 몇 달간 집을 떠나게 되자. 릴리는 키우던 개 하겐을 데리고 아빠의 집에 잠시 가 있게 된다. 잡종견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 때문에 아빠는 개를 길에 내다 버린다. 유기견이 된 하겐은 끔직한 길을 걷게 된다. 투견업자에게 붙잡혀 ‘생체실험’급 대우도 받게 되고, 유기견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할 뻔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하겐의 행방을 애타게 쫓던 릴리는 뜻밖의 장소에서 하겐과 마주치게 된다. 애완견에서 유기견으로, 이제는 인간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거리의 개 하겐은 유기견의 대장이 되어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개판으로 만든다. 옛 주인 릴리를 알아볼까?
영화는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사랑받던 개가 한순간 버림받았을 때, 그리고 그 개가 겪어야할 최악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영화에서의 투견장의 모습은 방송에서 어떻게 제대로 나갈지 걱정스러울 만큼 끔직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개의 복수를 다루는 ‘동물보호 계몽영화’가 아니다. 코르넬 문드럭초 감독은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백인 주축의 서구문명이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불공평을 고발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직 파괴를 목적으로 소수자를 길들이고 불평등을 부정하면서 평화로운 공존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었단다.
주인공 개 ‘하겐’은 잡종견으로 무거운 세금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 주인을 갖거나, 투견장에서 비참하게 물어 뜯겨 죽거나, 보호소에서 ‘처리’될 운명을 지녔다. 하겐은 자신의 변화된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물고, 싸우고, 달린다. 개의 시선이 유지된 부분은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을 연상시킨다. 아직은 사회체제의 일원이 아닌 ‘소녀’ 릴리는 맹목적으로, 결사적으로 옛 관계의 회복과 유대회복을 기대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찍기 위해 200마리 이상의 개를 훈련시켰단다. 개들이 한꺼번에 몰려 달리는 무시무시한 장면을 과연 어떻게 연출했을까 궁금했다. 유튜브에는 영화촬영 과정을 담은 동영상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싸움 장면이 진짜 싸우거나, CG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으르렁 소리는 뜻밖에 사람이 낸 것이란다.
영화의 분위기를 더하는 것은 당연히 개의 울부짖음과 함께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 그리고 릴리의 트럼펫 연주이다.
영화 오프닝 크레딧에 “미클로시 얀초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는 구절이 있다. 얀초 감독은 1972년 <붉은 시편>으로 칸느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던 헝가리 영화감독이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