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2년 전, 일본열도의 동쪽 바다에서 커다란 해일(츠나미)이 몰려온다. 311 도호쿠(東北)대지진이라고 불리는 자연재난이었다. 그 때 지진은 일대 해안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사건이 크면, 사람을 잊을 때가 있다. 그때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사람들은 아침이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하거나 “여보 출근할게요”하고 집을 나섰을 그 사람들 말이다. 여기에 그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있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이다. ‘스즈메’는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다. '문단속'이라니?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였다.
영화가 시작되면 꿈속의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린 소녀 하나가 폐허가 된 마을, 초원을 마냥 걷는다. 애타게 엄마를 찾다가 지쳐 웅크리고 있다. 그 때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소녀를 바라보다가 ‘스즈메’는 꿈에서 깨어난다. 아마도 오래된 꿈이며, 기억이며, 악몽인 듯하다.
일본 서남쪽 규슈의 미야자키 현의 조용한 마을에서 이모와 살고 있는 17살 소녀 스즈메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언덕길을 내려올 때 저 멀리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다. 순간 눈길을 사로잡은 그 남자는 근처에 폐허가 있는지 물어본다. 알고 보니 이 남자, 무나카타 소타는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폐허가 된 곳을 찾는 토지시(閉じ師)란다. 소타의 임무는 폐허의 땅에서, 무너져 내리는 건물에서, 그 문을 찾아, 입구를 봉쇄하고, ‘요석’을 박아 ‘또 다른 재앙’이 쏟아지는 것을 봉인하는 것이란다. 땅 밑에는 들끓는 마그마 같은 거대한 지렁이 ‘미미즈’(ミミズ)가 꿈틀거리고 있단다. 이제 스즈메도 소타와 함께 미미즈를 막고, 재앙을 봉인하는 길에 나선다. 그러다가 소타는 저주에 걸려 ‘세 발 의자’가 되어버리고, 말하는 고양이 ‘다이진’과 함께 길을 떠난다. 도쿄를 거쳐 도착한 곳은 스즈메의 어릴 적 추억, 어릴 적 악몽이 살아있는 곳이다. 폐허가 된 땅에는 흉물스럽게 어선 한 척이 버티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한국 개봉에 맞춰 신카이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감독은 매일 아침, 일상적인 인사말을 하고 집을 나섰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던 그 비극적 재앙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갑작스런 사고, 재앙은 평온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길 것이다. 그것이 911테러이든, 갑작스런 교통사고이든,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대규모 자연재해이든 말이다. 다 큰 어른들도 이겨내기 힘든 그런 고통을 다섯 살 스즈메가 감내해야하는 것이다. 행복했던 추억으로 가득한 그림일기장엔 어느 순간 온통 먹칠을 하게 되는 두려움과 고통의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토지시’ 소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으로, 힘겹게 싸우고, 재앙을 틀어막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바다건너 관객으로서는 그들의 비극이, 그들의 상상력이 더욱 애처롭다.
그래도, 어린 스즈메는 17살 스즈메를 만난다. ‘미래는 살아있고, 미래는 안전하다’는 희망이 남아있기를. “다녀오겠습니다”하고는 저녁에 돌아오는 삶이 정말 다행스럽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영화이다. (글:박재환)
▶스즈메의 문단속 (원제:すずめの戸締まり)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출연(목소리연기): 하라 나노카(스즈메), 마츠무라 호쿠토(소타), 후카츠 에리(타마키 이모), 카미키 류노스케(세리자와) ▶2023년 3월 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