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K콘텐츠'인 넷플릭스 <더 글로리> 파트2 공개 3일 만에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에서 '약쟁이 화가' 이사라를 연기한다. 극중 '이사라'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문동은에게 끔찍한 학교폭력을 행사했던 5명이 가해자 중 한 명이다. 배우 김히어라는 뮤지컬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많은 작품에서 앙상블을 맡았었고, <마리 퀴리>에서는 안느를 연기한다. 연극무대에서는 <관부연락선>에서 윤심덕을 연기하기도 했다. 2021년 JTBC드라마 <괴물>에서 방주선 역으로 드라마 데뷔를 했다. 방주선이 누구였냐고? '20년 전 이유연이 실종되던 시점에 문주천 갈대밭에서 열 손가락의 끝 마디가 잘린 시신으로 발견된 여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글로리'한 순간을 맞은 김히어라 배우를 만나 ‘어둠과 영광’을 이야기했다.
“(파트2 공개 다음날) 지하철을 탔는데 많은 사람들이 <더 글로리>를 보고 있더라. 그걸 보니 그 어떤 수치보다 이 작품의 인기를 실감하게 되더라.“ 김히어라는 <더 글로리>의 인기를 이렇게 말했다.
Q. <더글로리>가 마침내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김히어라: “이렇게까지 글로벌한 인기가 있을 줄은 몰랐다. 감독님, 작가님, 모든 배우에게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Q. 김히어라를 아는 친구나 사람들은 ‘이사라’ 연기에 대해 어떤 반응인가.
▶김히어라: “예전에 방송에 나오면 나를 아는 친구들은 ‘사라가 저런 걸 하네’식의 반응이었다면 이번엔 ‘아예 너가 생각이 안 나더라’라며 작품에 푹 빠져서 보았다고 한다. 친한 동료들은 내가 이렇게 퇴폐적인 인물인줄 몰랐다고 한다. 공연할 때는 정의롭고, 능동적인 역할을 많이 했다. 이런 연기를 잘 할 줄 몰랐다는 반응이 있다.”
Q. 오디션 과정을 이야기해 달라. 처음부터 이사라 역이었는지.
▶김히어라: “대본이 유출되면 안 되니까. 첫 오디션을 볼 때는 30분 전에 대본을 건네주더라. 대여섯 명의 배우들이 있었다. 주어진 대본에는 사라뿐만 아니라 연진이도 있었다. 잠깐씩 나오는 장면들이었다. 그것만 보면 누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본 장면은 혜정이와 사라가 명오 집에서 여권을 찾는 신인데 말투가 귀엽게 느껴졌다. 내용을 모르니. 사라는 귀엽고 러블리한 젊은 친구가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대신 연진이 역할이 눈에 들었다. 후배 기상캐스터에게 ‘넌 월 200벌고, 난 2억 쓴다. 언제까지 젊을 것 같니?’ 식으로 말하는 장면. 그 대사가 입에 착착 붙었다. 혼자서 연진이 캐릭터 위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캐릭터 리딩을 했는데 감독님이 사라를 해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Q. 이사라 캐릭터는 어땠는지.
▶김히어라: “2차 오디션 때도 30분 전에 대본을 주셨다. 이번엔 사라 대사만 모은 것이다. 그걸 보니 사라에 대해 알겠더라. 내게 잘 맞는다기보다는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른한 분위기에, 티키타카를 재밌게 살리면 좋을 것 같았다. 나중에 전체 대본을 받고는 나답게 연기한 것도 있지만 대사 자체를 믿고 하려고 했다. 사라는 가해자이다. 이 친구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거나, 그 어떤 이유를 찾아 연기를 하게 된다면 위험할 것이다. 그냥 대본에 쓰인 대사를 믿고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구원 받을 건데, 넌 못 받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렇게 믿고 연기를 했다. 잘 투영이 된 것 같다.”
Q. 김히어라 배우를 왜 이사라 역에 캐스팅했을까.
▶김히어라: “감독님은 ‘오해하지 말라’면서 ‘너의 눈빛과 눈이 우리가 생각한 사라와 너무 비슷했고, 너무 강렬해서 좋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때만 해도 내가 <배드 앤 크레이지>(tvN,2021.12월~) 방송 되기 전이었다. <괴물>에 딱 한 번 나올 때라 ‘저를 왜?’라고 생각했었다. 감독님은 ‘너의 눈이 그랬고, 너의 딜리버리(전달력)며, 갖고 있는 기본기가 꽤나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세 번째는 오디션이라고 보다는 내 생각을 물어보셨다. 8부까지 나온 대본을 퀵으로 보내주셨다. 어렵거나 배우로서 표현하기에 부담스러운 장면을 체크해 달라면서 같이 하자고 그랬다. 그 자리에 스태프들이 모두 모여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시고 정식 대본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오열한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영화 같았다. 그동안 공연을 하면서 내가 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열심히 했다.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날 걱정을 많이 해 주었다. 이렇게 매체에서 저를 선택해주시니, 지난 10년을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허투루 보내지 않은 모양이다.”
Q. '이사라'는 학폭의 가해자이고, 마약중독자이다. 부담은 없었는지, 도전의식은?
▶김히어라: “부담이기는 했다. 어쨌든 소재가 그렇다보니. 작은 선택이 또 누군가에게는 영향이 가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역할을 제대로,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너무 과하게도 말고, 덜하지도 않게. 정당화해서도 안 된다. 너무 과하게 연기해서 볼 때 불편하게 해서도 안 될 것 같았다. 이건 어쨌든 가상의 작품이다. 배우로서 사라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과 설정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Q. 김히어라 배우는 그림을 취미 이상으로 그린다. 그게 '사라'역으로 캐스팅된 이유가 되었을까? 아니면 캐스팅 뒤에 그런 요소가 작품에 추가되었는지.
▶김히어라: “원래부터 사라는 그림 그리는 아이로 나온다. 오디션 때 내가 그림 그린다는 이야기는 안했다. 극중에서 사라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고, 내가 프로도 아니니까. 그런데 두 번째 오디션 끝나고 나올 때 뭔가 아쉬웠다. 감독님과 제작진이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는데 뭔가 부족한 게 있나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가 무겁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뒤돌아서서 ‘할 말이 있습니다. 제가 마침 전시회를 합니다. 제가 그림을 좀 그리는데, 제가 생각하는 사라의 그림체가 있어서....’했더니 감독님이 ‘그래? 앉아 봐!’ 하셨다.”
“이게 그 때 감독님께 보여준 그림이다.” 김히어라 배우는 이날 취재진에게 자신의 개인전 때 나온 MD상품(그림 카드)을 보여주며 ‘즉석 도슨트’를 진행했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다. 낙서부터 시작했는데 색깔을 표현하다보니 점점 커지고 다양하게 그리는 것 같다. 부끄럽다. 전문가가 봤을 때는 기본기가 아예 없다고 할 것이다. 공연으로 치자면 두 달 정도 연습해서 무대에 오른다. 다듬고 또 다듬어서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은 제가 연습하는 것을 (그냥)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시간을 보냈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목이 ‘시시콜콜’이나 ‘멍’이런 식이다. 겁내고, 초라한 나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라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거칠게 그린다. 그것은 자기가 해결해 낼 수 없는, 당장 할 수 없는, 매번 의존하다가 정신이 들 때 그렇게 거칠게 터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작품에 나오는 그림은 김히어라 그림인가?
▶김히어라: “두 달 정도 작업을 했는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거칠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가 너무 조사를 많이 했다. 중독된 사람이 그리는 것처럼 디테일하게 해놓았던 것이다. 감독님이 디자인해서 드로잉해 놓을 테니. 그 위에 덧칠할 수 있겠냐고 하셨다. <더 글로리>에 나온 것은 그렇게 제가 덧칠한 것이다.그 때 제가 그렸던 것은제 작업실에 있다. 기회되면 공개하겠다.”
Q. 극중에서 사라는 금단현상을 보이면서 '초록 구두'를 그릴 때 그로데스크한 장면이 있다.
▶김히어라: “예전에 한번 그런 식으로 울면서 그린 적이 있다. 캔버스를 찢기도 했다. 나중에 전시회를 하는데 이건 너무 형편없어 팔기에도 마땅치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제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이어서 전시회에 걸어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게 제일 먼저 팔렸었다. 신기했다. 공연 관객, 시청자, 배우들이 전시회에 오셨는데, 그 그림에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많이 우시고 공감이 된다고. 같은 배우들은 '아프다'는 이야기도 했다. 제 감정의 일기장을 모놀로그처럼 펼쳤단다.”
Q. 욕설 연기는 어땠나.
▶김히어라: “진심을 다해 하려고 했다. 평소에 사라는 나른하고도 패션적으로 감각이 있는 아이이다. 약간 고양이나 뱀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욕을 너무 앙칼지게 하면 캐릭터가 하나로 고착될 것 같았다. 그래서 넷플릭스 영화를 보았다. 검은 세계에 있는 남자들이 하는 욕을 많이 들었다. 류승범 선배 나오는 영화도. 사라가 앙칼지게 톡톡 하는 것 보다는 거칠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고급스럽지 않고, 천박하다는 느낌이 나도록. 그렇게 하면 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좀 티가 나고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Q. 김은숙 작가의 대본에는 욕설이 어떻게 나오는지.
▶김히어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대본에 있는 것만 했다. 저 말고도 다른 배우들도 똑같을 것이다. 감독님과 작가님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해달라고 하셨다. 지문이나 행동은 추가할 수 있어도, 대본은 대사 그래도, 애드립 없이 했다. 욕도, 중간에 나오는 찬송가도.”
Q. 완성본을 보면서 본인 스스로도 놀란 장면이 있는지.
▶김히어라: “일단 머리를 탈색하고 눈썹 없는 저를 보고 놀랐다. 촬영하기 전에 샵에서 머리 감겨주는 막내 스텝 친구가 깜짝 놀라더라. 눈썹이 다 사라진 줄 알고. 너무 기괴했다. 점점 갈수록 메이크업도 없애소 다크서클만 짙어지는 제 모습에 놀랐다. 과하게 표정 연기를 하지 않아도 눈만 치켜 떠도 그렇게 보인다. 내가 이렇게 생겼구나. 새로운 각도에서 저의 모습을 본 것 같다.”
Q. ‘(마)약쟁이’ 연기를 어떻게 했는지.
▶김히어라: “조사를 많이 했었다. 정신이 또렷하고, 기분이 좋아 업이 된 상태부터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상황까지. 나중엔 뱀이 나오는 환각에 빠진다.다량 흡입했을 때는 훨씬 더 나른해진다. 근육 하나하나가 내 것이 아니듯 느껴지고, 걷는 것도 힘들다. 그런 것은 대본의 지문에 나오지 않는다. 관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시선은 어디에 둘 것인지 이런 것을 많이 연구했다. 느리게 움직였다. 약에 중독된 사람은 뇌가 굳어가니까. 친구의 말을 듣고는 ‘어?’, ‘어어~’ 이런 식으로 느리게 반응하려고 했다. 딱딱해질 때는 버퍼링을 줬다. (허공에 손짓을 하며) 행동을 넣어서 다르게 하려고 했다.”
Q. 환각상태에서 뱀을 보는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었는지.
▶김히어라: “그 장면은 한두 테이크로 끝났다. 어려운 신이라서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았다. 저는 제 연기에 욕심이 나서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했다. 클로즈업 장면 찍을 때 촬영장에 진짜 뱀이 준비되었다. ‘뱀 도착했습니다!’고 할 때, 난 장난치는 줄 알았다. 명오가 오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인사하세요. 뱀이에요’ 라는 것이었다. 훈련된 뱀이었다. 저보다 연기경력이 많아서 꼬리를 만져주며 방향을 바꾸더라. 제가 또 뱀띠라서 바로 적응이 되었다. 독백할 때는 뱀과 마주봐야했다. 뱀의 혀를 보니 대사가 그냥 나오더라.”
Q. 김히어라 배우는 눈동자가 신비롭다는 이야기가 많다.
▶김히어라: “연갈색이다. 어릴 때부터 이름도 특이하고, 눈도 특이하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도, 엄마도 그렇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는 놀림도 받았다. 어린 마음에 울기도 했다. 외가쪽이 눈이 다 갈색이다. 공연 때는 (관객들이) 내 눈동자까지 볼 일은 없다보니. 매체(TV등)에 오면서 몽환적이거나 묘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클로즈업을 많이 해주니. 눈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많이 만나지 않았을까. 요즘은 눈이 매력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Q. <더 글로리>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과 함께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는데.
▶김히어라: “완벽한 준비라는 게 있겠는가. 하지만 그동안 미성숙했던 나의 시행착오들이 (연기하는데) 다 재료가 되는 것 같다. 예전에 힘들었던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때,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았던 일들이 생각났다. 30대가 되니 겁이 많아진 것 같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이런 것들이 지금의 배우로 있게 한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준비를 계속 해왔던 것이다. 지금 이런 영광도 앞으로의 나를 준비하라는 것 아닐까. 조금 더 커지라고. 책임지고 나아가야할 부분일 것이다. 계속 준비를 하고 있다.”
Q. '연기는 힐링이다?'
▶김히어라: “그렇죠. 그래서 본능적으로 연기를 선택한 것 같다. 링 위에서 복싱하는 것처럼 일종의 '허락된 터치'이다. 이성적으로 살다가도 ‘준비~ 액션!’ 하면 링 위에 오른 것처럼 무한한 자유를 누리는 것 같다. 뭘 해도 가능한 자유를 느낀다. 평생하고 이런 연기를 하고 싶다.”
Q. '이사라'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히어라: “일단은 정신 차리고 약을 끊어라. 그리고, 그 동안에 했던 일에 사과를 해라. 책임을 져라. 만약 계속 살아있다면 다 내려놓고 시작해라. 이런 말들을 하고 싶다.”
Q. <경이로운 소문2>에서는 어떤 연기 변신을 기대해도 되는가.
▶김히어라: “원작이 웹툰이다. 판타지이고, 극중에서 제가 맡은 캐릭터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악역, 못된 아이이다.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지이다 보니 오히려 연기할 때 마음은 덜 힘들더라. 이 작품을 초등학생이 좋아하더라. 변신이라면 많은 액션과 비주얼과 판타지 속에서 저의 능력들이 재밌게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악귀사냥꾼인 카운터와 악귀들의 케미가 재밌을 것 같다.” (김히어라는 ‘중국에서 넘어온 악귀’라고 한다)
Q.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사라가 김히어라의 연기 경력에 어떤 의미가 될 것 같은가.
▶김히어라: “저를 있게 해준 영광스러운, 글로리러스한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많은 기자들과 인터뷰할 줄은 작년에도 몰랐고, 찍을 때도 몰랐다. 저한테까지 이런 영광이 올 줄 몰랐다. 찍으면서 ‘재밌을 것 같았고, 잘되겠다고 생각했었다. 너무 감사하다. 잊지 못할 것이다. 연기생활을 하면서 이런 기회가 또 왔으면 좋겠다.”
<더 글로리> 공개 이후 김히어라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5~6배 증가했단다.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