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은 내 손자보다 소중해”
실화이다! 세계적인 재벌의 손자가 유괴되고 거금의 랜섬(몸값)을 요구받는다. 보통의 부자가 아니라 기네스북에 최고의 부자로 올랐던 석유왕 게티 집안의 이야기이다. 우선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J.폴 게티(크리스토퍼 플러머)는 1940년대 중동의 사막에서 석유사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탱크선이라고 석유운반선을 이용하여 전 세계로 석유를 실어 나른다. 터번을 둘러쓴 산유국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철저한 비즈니스 접근으로 그는 부를 쌓아올렸다. 하지만 가족관계는 ‘오일 비즈니스’만큼 냉혹했다. 아들(게티 2세)은 존재감 제로였고 이혼 당한다. 며느리(미쉘 윌리엄스)와 손자(게티 3세)는 이탈리아에서 자란다. 어느 날 밤, 16살이었던 게티3세가 괴한에게 유괴당한다. 아마도 ‘게티’라는 아이의 이름이 엄청난 돈을 보증하였으리라.
유괴범들은 아이를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마을로 끌고 가서는 17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한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세계 최고의 부호에게는 그리 큰돈을 아니었으리라. 그런데 유괴범이 간과한 것은 J. 폴 게티의 돈에 대한 철학이었다. 게티 회장은 언론에 대고 그런다. “내겐 손자손녀가 열 넷이다. 이번에 돈 주면 다들 유괴될 것이다.”며 협상은 전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다. 이제 아들의 운명은 오직 어머니(위자료 한 푼 없이 이혼하고 대신 아이양육권만 차지한, 게티 가문과는 전혀 얽히고 싶어 하지 않는) 게일(미쉘 윌리엄스)의 몫이 되었다. 게일은 아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사방팔방 뛰면서 유괴범과 협상하고, 시아버지였던 게티 회장에게 읍소한다.
<올 더 머니>(원제 All the Money in the World, 세상 모든 돈)는 1995년 존 피어슨이 쓴 < Painfully Rich: The Outrageous Fortunes and Misfortunes of the Heirs of J. Paul Getty>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거장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했다. 1973년 7월 10일 새벽녘에 발생한 유괴사건에서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무려 다섯 달을 끈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화면에 담는다. 워낙 부자이고, 워낙 특별한 케이스이고, 워낙 기아한 가족관계였기에 영화로 만들기에 안성맞춤 스토리이다.
이 영화가 막판에 화제가 된 것은 게티 회장 역을 맡은 케빈 스페이시 때문이다. 작년 할리우드를 강타한 성추행 파문의 직격탄을 맞았다. 케빈 스페이시의 몰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화사로서는 영화개봉 시기를 저울질해야했다. 감독은 개봉 6주를 남겨놓고 전격 재촬영을 결정한다. 케빈 스페이시 출연 장면을 다시 촬영하기로 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투입되었고, 당연히 같이 나오는 장면을 위해 미셸 윌리엄스와 마크 월버그가 추가촬영에 뛰어든다. (두 사람의 재촬영 출연료 격차 때문에 또 한 번 논쟁거리가 된다). 감독이, 제작사가 느긋하게 개봉을 연기하고 재촬영한 것이 아니라, 서둘러 개봉일을 지키려고 한 것은 같은 소재(폴 게티 유괴사건)의 드라마가 제작되어 2월 방송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사로서는 쫓기듯 촬영을 진행해야했다. 나이 여든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다.
곽경택 감독의 <극비수사>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듯, <올 더 머니>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물론, 영화적 재미(?)를 위해 몇 부분은 창작된 것이란다.
게티 가문은 여전히 흥미롭다. 게티 회장의 아들 존 폴 게티 주니어는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돈을 버는 법을 배웠다.(위키 정보를 보면 군인으로 한국에서도 복무했다고). 이혼 하고, 나중에 아버지(회장)가 죽은 뒤 우울증에 마약중독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유괴당한 게티3세가 그의 첫째 아들이었다. 16살에 끔찍한 일을 당한 게티 3세는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그 후유증으로 평생을 악몽에 시달린다. 알코올중독, 마약중독에 시달렸고, 뇌졸중에 사지마비, 시각상실 등 육신은 망가졌다. 2011년 54세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동생 마크 게티는 요즘 매일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 언론 사진이나, 인터넷 사진저작권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그 유명한 ‘게티 이미지’의 설립자이다.
게티 회장은 자신의 돈 버는 기술을 책으로 썼다. 오래 전 문학사상사에서는 <큰 돈은 이렇게 벌어라> 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대사지만,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자 되는 법’은 안다. 그런데, 제대로 ‘부자로 사는 법’을 깨닫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게티 패밀리가 증명해 준다. 참, 그래도 게티가 인류를 위해 남긴 것은 있다. 게티 회장은 번 돈으로 열심히 고미술품을 사 모았다. 미국 LA의 폴 게티 미술관이다. 입장료가 무료란다. 2018년 2월 1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