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독립영화관 - '낫아웃'
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이 방송된다.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는 고교 운동선수의 인생선택이 먹먹하게 하는 작품이다.
고교 야구부 3학년 광호는 나름 팀 내에서 잘하는 축에 속한다.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역전타를 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제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프로팀에 가고 싶어 하지만 그에게 ‘신인 드래프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대학 야구팀에 특기생으로 들어가야하는 것. 하지만 그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력이 월등하거나, 충분히 만족할 만한 돈 봉투가 준비되어야 한다.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친구 민철과 함께 위험천만의 불법적 행위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것조차 광호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떡해야하나.
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야구 룰이 ‘낫아웃’과 ‘피처 보크’일 것이다. 경기를 진행하다가 그라운드에서도 우왕좌왕하고, 관람석에서도 시끌벅적해지니 말이다. ‘낫아웃’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 한 번 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는데 (타자는 아웃이어야하지만) 포수가 그 공을 놓칠 경우, 타자는 ‘아직은 아웃 당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타자는 1루로 달려가서 베이스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포수가 공을 주워 던지기 전에 말이다. 이렇게 설명해도 모를 사람은 모를 것이다. 어쨌든 ‘아웃인데 아웃이 아닌’ 특이한 상황이다.
‘광호’에게는 어떤 특이한 상황이 있을까. 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학교 운동부의 부조리나 입시철이면 터지는 체대 부정사건을 보면 항상 나오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뒤로 하고,운동하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떨까. 어릴 때부터 야구가 좋아, 죽자 살자 운동만 해온 학생 말이다. 학년은 올라가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운동선수가 어떤 표준 교육과정을 이수했는지는 대부분 짐작할 것이다. 광호도 그런 운동선수이다. 광호는 학생이지만 책가방을 들고 있거나, 교실에서 책을 펼쳐놓고 하다못해 엎어져 자는 모습조차 없다. 졸업을 앞뒀지만 프로야구팀 드래프트도, 연습생 발탁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광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리고 야구 말고는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이정곤 감독은 미래가 불확실한 광호에게 야구를 위한 또 다른 문제를 던져놓는다. 친구와 함께 불법휘발유 배달을 시작한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야구를 하다 중도에 포기한 아픔이 있다.
스포츠영화는 피, 땀, 눈물로 포장된 운동선수의 드라마틱한 트로피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낫아웃>은 그런 영광의 순간을 담지 못한다. 금메달이 아니라, 후보 선수로 엔트리에만 올라도 감격할 청춘의 아픔이 가득한다.
극중에서 절망에 빠진 광호가 친구 민철과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명대사가 나온다. 민철이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닐 수 있어.”라고 말하자 광호는 “아직 시작도 못했잖아. 내가 어디까지 갈수 있는지 알고 싶어.”라고 말한다. ‘아직 시작도 못했잖아’는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걸작 성장드라마 <키즌 리턴>에 나오는 명대사 “바보! 아직 우리는 시작도 안 했어!”의 오마쥬일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제작사 이름도 ‘키즈리턴’이다.
이정곤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낫아웃>은 22회 전주국제영화제(2021)에서 CGV아트하우스 창작지원상, 왓챠가 주목한 장편, 한국경쟁-배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씁쓸하지만, 잔향이 남는 드라마이다. 놓치지 마시길.
▶낫아웃 ▶감독/각본:이정곤 ▶출연: 정재광(광호), 정승길(아버지), 김희창(감독), 이규성(민철), 송이재(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