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 주권국가의 ‘전쟁대비태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나치 히틀러가 유럽을 휩쓸 때 그 위험성을 간파한 불세출의 정치가인 처칠의 결단의 순간을 그린 영화 <다크스트 아워>(원제: Darkest Hour 감독: 조 라이트)이다. 영화를 보면서 잘 몰랐던, 혹은 간과했던 역사의 순간이 펼쳐진다. 역사를 읽어야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인 셈이다.
1940년의 영국이라면, 웬만한 영화팬들이라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가 보여준 역사의 편린을 인식할 것이다. (2차 대전의 영광을 다룬 스필버그의 <라이언일병구하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왜 40만 이상의 군인이 독일군의 포위공세에 밀려 허겁지겁 도망쳐 나온 군사작전을 ‘성공한 전쟁’이라고 하는지 영국인이 아닌 이상 의문이 남을 것이다. ‘두 발 전진을 위한 한 발 후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이다.
그 빈 공간을 영화 <다키스트 아워>가 채워준다. 당시 유럽정세는 이랬다. 1차 대전에서 철저히 무너진 독일은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나치)의 히틀러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세를 회복하고, 유럽대륙 최강의 국가로 떠오른다. 히틀러의 야심은 순식간에 유럽을 집어삼킨다. 1938년 체코, 리투아니아, 폴란드를 잇달아 점거하더니 곧이어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프랑스까지 진격한다. (아직 아우슈비츠의 비극이 있기 전의) 독일의 전광석화같은 군사작전의 성과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그 때 그 시절 정치지도자들은 판을 읽어야했다. 독일군의 승승장구에 맞춰 세계사의 재편이 이뤄지던 순간이었다. 당시 최강의 국가였던 영국은 섬나라로서 두 가지 선택이 가능했다. 프랑스(덩케르크)에서 전멸하든지, 영국으로 내빼서 섬나라의 안전을 지키든지. ‘덩케르크’에는 40만 이상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독일의 포위작전에 몰려 전멸 직전이었다.
그때, 영국 런던의 정치상황은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이 있을 것이다. 체임벌린 수상은 백척간두에 선 영국을 위해 처칠에게 지휘봉을 넘긴다. 당시 영국에선 처칠이 꾸준하게 나치 히틀러의 야심을 경고하고, 야욕을 분쇄해야한다고 주장해왔다. 요즘 스타일로 말하면 매파, 강경파였던 셈. 많은 정치가들은 독일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소련의 공산주의의 팽창이 민주국가들의 적이라고 이야기할 때 말이다. 그런데, 정말로 히틀러의 독일이 유럽을 휩쓸고 프랑스를 그로기에 몰자, 영국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나서는 곧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을 침공할 것이니.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것은 그때에도 많은 정치가들이 저마다의 정견과 해결책을 내놓는다. “지금은 타협할 시간, 지금은 협상할 시간”이라고. 이탈리아 무솔리니에게 잘 이야기하여 독일과 평화협정을 맺어야한다고. 협상? 독일에게는 무엇을 내주고?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고, 유럽의 항구를 석권하고, 유럽 국가들의 (이전) 식민지국가들을 차지하고, 영국에는 또 무슨 요구를 할지?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바로 그 시점의 영국의 정치를 보여준다. 체임벌린 수상은 어쩔 수 없이 전시내각을 처칠에게 넘긴다. 처칠은 조지 6세에게서 총리로 임명되고, 아직도 자신을 인정하진 않는 여당과 야당의 견제와 위협 속에서 영국의 운명을 결정지어야했던 것이다. ‘전시내각’이란 기존 내각과는 별도로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처칠과 함께 체임벌린 전임수상, 헬리팍스 외무장관, 야당인 노동당의 애들리와 그린우드 등 5명으로 구성되었다. 여와 야가 머리를 맞댄 거국내각의 수장회의였던 셈이다. 영화에서는 체임벌린의 기회주의적 관망세와 호시탐탐 처칠의 실각과 총리 자리를 노리는 핼리팩스 외무장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끊임없이 처칠을 흔들고, 평화공세(히틀러와의 타협)을 주장한다. 영화는 노회한 정치가 처칠의 정치적 수완을 보여준다. 물론, 뚱뚱한 몸매에 손에서는 시가를 놓지 않고, 알코올 중독이 우려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처칠의 모습을 게리 올드만은 완벽하게 연기한다.
<다키스트 아워>에서는 독일의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그야말로 애타게 미국에 매달리는 처칠의 모습도 담겨있다. ‘W,C’(화장실이 아니라 윈스턴 처칠이었다!) 문패가 걸린 좁은 룸에서 루즈벨트와 전화통화를 한다. 대서양 너머로 군사를 보내달라고. 유럽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선 신흥초강대국 미국의 군사력이 필요할 때였다. 하지만 그 시점에선 루즈벨트도 영국의 다른 정치가들처럼 처칠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미국은 중립법이 있어 군사를 내보낼 수 없다. 미국은 유럽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다키스트 아워> 개봉 후 영국 언론에서는 이 영화가 처칠과 당시의 정치상황을 잘 다뤘다는 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몇 장면에 대해서는 친절한 ‘영화적 장치’라면서도 후한 점수를 준다. 처칠이 명연설을 하기 전, 지하철을 타고 런던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장면과 루즈벨트와의 전화통화 장면 등에 대해 언급했다. (그런 전화는 없었지만 두 사람은 수많은 메시지를 교환했었단다)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보았다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를 다시 보고, 존 루카치 교수가 쓴 <세계의 운명을 바꾼 1940년 5월 런던의 5일>이란 책을 권한다. 1940년 5월 24일부터 28일까지의 처칠의 이야기이다.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현지(덩케르크와 다른 전선의) 상황을 알 수 없을 때, 전장에서, 외교가에서, 그리고 웨스트민스트와 버킹검궁, 그리고 다우닝 10번가에서 펼쳐지던 급박한 ‘고뇌의 순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처칠은 덩케르크의 수십만 군인을 한 순간에 잃는 것도 염두에 둔다. 그는 군인이었고, 해군성장관이었고, 역사의 그랜드디자이너였다)
어쨌든 덩케르크 철수가 완료된 후 처칠은 하원에서 “우리는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다.
덩케르크가 독일 수중에 완전히 떨어지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참전한다. 프랑스는 항복하지만 영국의 처칠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결국 루즈벨트도 세계대전에 뛰어든다. 그렇게 역사는 전진 아닌 전진을 한 셈이다. 출연: 게리 올드만(윈스턴 처칠), 릴리 제임스(레이튼),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클레멘타인 처칠), 벤 멘델슨(조지 6세), 스티븐 딜레인(핼리팩스), 로날드 픽업(체임벌린) 2018년 1월 17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
“우린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린 프랑스에서도 싸우고, 바다와 대양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점점 더 용맹하게 싸울 것입니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우린 이 땅을 지킬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린 해변에서도 싸울 것이며, 상륙지에서도 싸울 것이고
벌판에서도 거리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언덕에서도 싸울 것입니다.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