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는 <소년심판>과 <약한영웅 Class1>으로 주목받은 이연 배우가 출연한 두 편의 단편영화 <오 즐거운 나의 집>과 <거북이가 죽었다>가 시청자를 찾는다. <거북이가 죽었다>는 2021년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서 처음 공개된 김효은 감독의 단편이다.
인정(이연)은 회사 회식 자리에 무표정하게 앉아서 소주잔을 들이킨다. 고졸이고, 계약직으로, 디자이너 보조로서 마지막 날이다. 불편한 자리를 지키다 음식을 쏟는다. 집에 돌아오니 키우던 거북이가 죽어간다. 친한 친구가 디자이너 자리를 하나 소개해 준다. 면접 자리에서 자신의 디자인 실력을 충분히 말하지만 ‘어, 고등학교 친구였어?’라는 말에 의기소침해 지며 커피 잔을 엎지르고 만다. 자격지심에 사무실을 나와 그 친구를 만나 화풀이를 한다. 어디선가 이명이 들리고 뭔가 냄새가 나는 듯한 언짢은 기분이 든다. 거북이를 산 마트에 가서 심하게 항의한다. “1년 전에 이런 걸 팔다니”라며. 그러다가 종일 들고 다니던 쇼핑백에 든 거북이가 죽은 것을 안다. 그리고 줄곧 자신을 따라다니던 그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된다.
영화는 ‘고졸’ ‘보조 사원’의 까칠한 사회생활인 듯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사태의 원인’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탓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격지심으로 황망한 순간, 애완동물 관리부실의 결과를 블랙슈머가 되어 화풀이하는 것이다. 사람은 실수도 하는 법이고, 잘못도 범할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고치면 될 일이다. 김효은 감독은 “인정이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먼 미래가 될지언정 언젠가는 인정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넷플릭스 <소년심판>에서 소년 백성우 역을 맡아 주목받기 시작한 이연 배우는 그동안 단편영화, 독립영화, TV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거북이는 죽었다>에서 이연 배우는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자신의 상황에 갇혀, 세상에 불만을 터뜨리는 마이너 인생을 섬세하고, 공감받게 연기해낸다. (박재환)
■■인터뷰■■ 김효은 감독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거북이가 죽었다> 연출 계기는?
▶김효은 감독: “오래전 키우던 거북이가 죽게 되어 그 거북이를 들고 나온 하루가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녔던 냄새가 있었는데 저는 그 냄새를 피할 수가 없었다. 제 손에 들고 있는 거북이가 부패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만 원인을 찾았던 것이다. 거기에서 저는 평소 남 탓만 하며 정체되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 부끄러워졌다. 이 이야기는 혹시나 어딘가에서 냄새의 원인을 찾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면, 정체되어 있는 내면을 깨고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Q. 영화의 제목에도 등장한 ‘거북이’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김효은 감독: “거북이는 남 탓만 하는 ‘인정’에게 있어 자신이 선택한 것 중 유일하게 보이는 결과물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거북이를 산 건 자신의 선택이었다. 거북이는 환경에 예민한 동물이다. 극 중 ‘인정’은 마트 직원에게 거북이가 바다에서 산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인정이가 키우는 거북이는 민물 거북이이다. 인정이는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가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거북이를 키웠던 것이다. 결국 거북이가 죽었다는 것은 인정이가 이제는 남 탓만 하며 자기방어를 하던 삶의 태도를 버리게 된다. 저는 인정이가 새끼 거북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냄새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자신이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알을 깨고 다음 단계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Q. 영화 속에 등장하는 ‘거북이’는 ‘북치기박치기’라고.
▶김효은 감독: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북치기’와 ‘박치기’이다. ‘이스턴 페인티드 터틀’이라는 품종이고 올해로 3살이 되었다. 영화에는 둘 중 한 마리만 출연하는데 크레딧에 팀 이름으로 넣게 되었다. 엊그제 보니 새로운 등껍질이 올라왔더라. ‘북치기박치기’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Q. 주인공 ‘인정’은 어떤 인물인가요.
▶김효은 감독: “‘인정’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오히려 패배감보다 자기만족감이 높았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전공했고 누구보다 디자인을 잘했기 때문에 바로 디자이너로서의 생활을 꿈꿨다. 자신만의 고집도 있고 어찌 보면 약간의 자만심이 있어 바로 취업을 한 것인데 사회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부족함이 당연히 있었을 텐데 이를 인정하기보다 자신을 방어하는 쪽을 선택함으로써 점차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강해진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Q. <거북이가 죽었다>에서 인정을 연기한 배우 ‘이연’에 대해.
▶김효은 감독: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당시에 이연 배우의 작품들을 볼 기회가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고집스러운 눈매와 옹골진 눈빛, 그리고 특유의 목소리가 잊히지가 않더라. 정제된 목소리임에도 어딘가 날것의 느낌이 어우러지는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배우가 궁금해져서 이전 작품들을 모두 찾아봤다. 모든 캐릭터는 각자 자신들만의 고집이 확실하게 보이더라. 배우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 모든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특히 어떤 캐릭터든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가져갔으면 했던 한 가지가 바로 인정이가 미움받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다. 촬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정식으로 섭외 요청을 드렸고 정말 감사하게도 여러 상황들이 잘 맞아떨어진 덕분에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나리오를 쓰면서 은연중에 이연 배우에게서 많은 모습들을 영감 받지 않았을까 생깍한다.”
Q. ‘인정’은 냄새를 맡는다. ‘냄새’를 설정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
▶김효은 감독: “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강렬했던 이유인 ‘냄새’는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특히 냄새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감출 수도 없다. 결국 이 영화 속에서의 ‘냄새’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인정의 상태를 드러내주는 장치라고 생각했다. 물이 고이면 언젠간 썩듯이 인정의 내면에 고여 있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등이 이제는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있었으므로 거북이가 죽게 된 시점에 맞춰 인정이 혼자만 그 냄새를 맡게 되는 거다.”
Q. 감독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갔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김효은 감독: “둘 다 시나리오 상단에 ‘인정이는 인정받고 싶다’라고 똑같이 써왔던 것이 기억난다. 개인적으로 연기가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 장면 역시 면접 장면이다. 상대역인 승민을 오해하면서 눈빛이 변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은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면접 장면은 전체적으로 상황이 명확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이라 배우의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너무 훌륭하게 소화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이연 배우가 참 영리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Q. ‘인정’은 마트 직원을 향해 감정을 쏟아낸다.
▶김효은 감독: “마트 장면에서만큼은 ‘인정’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냈으면 했다. 어찌 보면 급발진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과하다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거북이를 책임지라고 따지는 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 그저 한풀이할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연 배우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 없이 첫 연기부터 너무 완벽하게 표현해 주었다. 그만큼 많은 준비와 고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마지막 장면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면. (*스포일러*)
▶김효은 감독: “인정은 부패한 거북이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거북이의 죽음을 실감하게 된다. 자신의 관리소홀로 거북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북이를 죽게 만든 것도, 냄새를 지니고 있었던 것도 모두 자신이었던 것처럼, 그동안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만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환경이나 사회를 탓하는 대신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린다면 스스로가 변화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정이 냄새의 원인을 알게 되는 마지막 순간이 먼 미래가 될지언정 언젠가는 인정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Q. 이 인터뷰를 통해 배우 이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효은 감독: “이연 배우는 저에게 선물 같은 존재이다. 많은 영감을 주는 뮤즈이기도 하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연기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열정이 있는 배우이다. 항상 다음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 바람은 저도 제 길을 꾸준히 닦아 나아갈 테니 이연 배우 역시 지금처럼 꾸준히 자신의 길을 닦아 나아가다가 가끔은 중간에 만나서 함께 걷기도 했으면 좋겠다. 언제나 아낌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고.”
Q. <거북이가 죽었다> 이후 근황을 전해주신다면.
▶김효은 감독: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이십 대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로, 외로운 사람들 간의 관계와 믿음을 그리게 될 예정이다. 그런 이유로 요즘에는 주로 관계 혹은 믿음에 얽힌 사건들이나 이야기들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는 시청자분들에게.
▶김효은 감독: “아마 저도 함께 TV를 보고 있을 텐데요. 동시간대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까워진 느낌이 드네요. 영화를 보시면서 각자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시든 그것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생각하고요.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늦은 시간 소중한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김효은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 1TV 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