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환 감독의 <1987>에서 '마이마이'를 든 여대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김태리의 원석 같은 매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녀의 실질적인 데뷔작인 <문영>(감독 김소연)을 주목해야 한다. 2015년 단편으로 출발해 64분 분량으로 완성된 이 영화는 카메라를 든 여고생 문영을 통해 소통과 단절, 그리고 외로움의 정서를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영화의 주인공 문영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길을 묻는 아주머니의 훈수에도 오직 손짓으로만 답할 뿐이다. 술주정꾼 아버지의 폭언을 피해 방으로 도망쳐 문을 걸어 잠그는 그녀에게 세상은 거대한 벽과 같다. 그런 문영의 유일한 창구는 작은 캠코더다. 그녀는 지하철 안 사람들의 얼굴을 담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희수(정현)라는 여자와 기묘한 소통을 시작하며 세상과 담을 쌓았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문영>은 마치 <비정성시>의 양조위처럼, 김태리의 깊은 눈빛이 서사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영화다. 그녀는 목놓아 엄마를 부르거나 세상을 향해 욕설을 내뱉지 않는다. 대신 길고양이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캠코더에 집착한다. 가족의 정에서 소외된 사춘기 소녀의 처연함은 후반부 그녀가 그토록 영상 기록에 매달린 이유가 밝혀질 때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김태리와 정현, 두 여배우가 내뿜는 동질감은 <델마와 루이스> 같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며 극의 온도를 높인다. 이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상처 입은 영혼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영>은 배우 김태리의 발굴인 동시에 한국 여성 영화의 가능성을 재발견한 소중한 기록이다. 현재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작품은 화려한 스타가 되기 전, 김태리가 뿜어내던 날것의 연기력을 확인시켜 준다.ⓒKBS미디어 박재환.2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