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 만나는 시네필의 영화천국, KBS 독립영화관은 최근 한국영화계의 파란을 일으키는 한국의 여성감독들의 활약에 주목하여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는 여성감독 세 편의 영화를 준비했다. ‘달리는 여성감독전’에서 만나볼 영화는 ‘달려라 정이’(박나나 감독), ‘‘달려라 택배’ (황옥영 감독), '육상의 전설' (김태은 감독)이다.
김태은 감독의 <육상의 전설>은 단편으로 완성시킨 한국 가부장 시대의 육상계 부조리극이다. 25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갑작스레 죽은 이모의 장례식장을 찾은 ‘우리’(김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모의 한(?)많은 삶이다. 장례식장에 걸린 사진 속 이모는 아직 젊다. 이모는 왕년에 육상의 전설이었단다. 전국체전에서 2위를 할 만큼 재능이 있었지만, 삼촌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여자이니까’ 대학 대신 희생을 강요당했단다. 우리는 너무나 속상하다. 이모의 제단에 놓인 운동화를 신고는 뛰어본다. 그런데, 어릴 적 이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제 우리가 한 번 뛸 때마다 ‘이모’의 선택의 순간이 달라진다. 이모는 계속 달려야한다. 육상을 계속해야한다. 상급학교에 가서 선수의 꿈을 이뤄야한다.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모’의 운명은 계속 달라지고, 어긋난다. 그래도, 이모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다.
산업화 시대의 한국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은 특이했다. 장남을 위해, 아들을 위해 나머지가 희생한다. 그게 가문의 영광을 누리는 한 방식이었다. 우리네 집안도 그랬다. 육상 영재인 이모에겐 오빠라는 허들만 있는 게 아니라, 육상코치에 대한 ‘촌지’라는 관행도 있었다. 그런 시대, 그런 상황에서 재능있는 ‘여성’ 운동선수는 트랙에서 멀어져갔을 것이다. 그런 과거의 유물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분노하고, 그 운명을 바꿔놓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김태은 감독은 의미있는 이야기를 훌륭한 소재로 재밌게 완성시켰다. 감독은 <롤라 런>을 인상적으로 보았단다. 톰 티크베어 감독의 <롤라 런>에서 여주인공도 운명을 되돌려놓기 위해 열심히 뛴다. <육상의 전설>이 더 울림이 크다! 놓치지 마시길! 오늘 밤 12시 1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육상의 전설(25분) ▶감독/각본/미술 : 김태은 ▶츨연:김도이, 추은경, 정애화, 조지현, 주인영, 김민주
[인터뷰] 김태은 감독 - <육상의 전설> 영화에 관해 궁금한 것들
Q. <육상의 전설>을 연출하게 된 계기
▶김태은 감독: 실제로 저의 막내이모가 60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모가 사실은 중학교 때까지 육상으로 전국체전 2등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이모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게 되었다.
Q. 과거에서 이모 춘희의 삶을 지켜보는 ‘우리’가 등장한다.
▶김태은 감독: ‘우리’는 처음에는 이모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과거로 가서 어린 시절의 춘희를 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 ‘우리’의 엄마인 화순은 춘희의 이야기를 알고 있고, 마음 아파하지만 이미 과거의 일이라며 깊게 생각 안하려고 하는 캐릭터이다.
Q. ‘우리’는 김도이 배우가 연기합니다. 캐스팅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김태은 감독: 배우 김도이는 보고 있으면 짠할 정도로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제 시나리오를 저보다 더 잘 이해해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도 너무 좋았다. 김도이가 최근에 발간한 만화책도 한번 추천 드립니다. 눈물주의! 엄마 화순 역에는 배우 추은경이 연기한다. 오래전부터 알던 배우인데, 어떤 역할을 맡겨도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믿고 맡겼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등장하는 춘희 역할이 중요했는데, 같이 참여해준 연출부가 배우를 잘 찾아주셨다.
Q. 과거를 오가는 영화의 미쟝센에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태은 감독: 단편인데도 여러 시간대를 다루다보니 준비할게 많았다. 어린 춘희가 입던 옷, 이화여고 육상부 운동복 등 직접 제작했어야 했고, 덕분에 동묘와 동대문에 자주 갔었다. 단편에서 시간여행 하지 마세요. 연출부가 넘 힘들어했어요.
Q. <육상의 전설>의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면.
▶김태은 감독: <롤라런>이라는 영화가 당시 저에겐 가장 중요한 영화였다. 그저 무모할 정도로 열심히 뛰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촬영 당시를 떠올리면 그저 힘들었던 기억만 떠오른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스탭과 배우들을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학교 운동장을 촬영 할 때, 그 해에 가장 기온이 높은 날이었다. 스탭들이 탈수 증세가 와서 한명씩 쉬고 오기도 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스탭들을 힘들게 하는 영화감독은 정말로 싫다.
Q. <육상의 전설> 이후 근황을 전해주신다면.
▶김태은 감독: 단편영화는 여러 편을 연출했다. 이제 장편이나 드라마 쓰려고 노력 중이다. 꾸준히 촬영 현장을 나가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육상의 전설> 부디 재밌게 봐주심 좋겠네요. 웃으시면 더 좋고.
** 김태은 감독 인터뷰는 KBS 독립영화관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