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핵 사태와 관련하여 제기하는 문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이 어디를 목표로 하는 것이냐”는 것. 사실 이 문제는 전쟁종말 단계에 처한 최종책임자의 자포자기적 심정을 상정한다면 부질없는 질문일 수도 있다. 그런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문제가 꼬인다. 그리고, 미국의 압도적인 핵 무력 앞에서 실제 김정은이 핵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하는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이런 특수한 한반도 상황에서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과연 진짜 핵전쟁이 발발할 수 있을지, 타겟은 어느 나라인지를 상상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4년 전 정치인 이전의 인간 노무현을 담은 영화 <변호인>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던 양우석 감독이 신작 <강철비>를 내놓았다. 양우석 감독은 웹툰(작가)으로 <스틸 레인>이란 작품을 내놓았었다. 김정일이 암살된다는 설정을 담았었다. 양 감독은 그 작품을 기반으로 좀 더 진전된, 훨씬 복잡해진 한반도 핵 상황을 그린다.
북한이야기로 시작된다. 보위총국, 총정치국, 그리고 군부가 얽혀서 복잡하게 돌아간다. 분명 어떤 권력기관이 쿠테타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중국 기업이 입주식을 갖는 날, 인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경애하는 지도자동지에게 열화같은 성원을 보이는 가운데 남쪽 하늘에서 미사일 한발이 날아온다. 클러스터형 로켓이다.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북의 정예요원 정우성이 피투성이가 된 지도자 1호를 들춰 업는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탈출하는 중국기업들의 차량 틈에 끼어 남쪽으로 향하는 것. 정우성은 그렇게 부상당한 1호와 함께 일산의 한 병원으로 숨어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믿기 힘든 사태와 함께 남과 북의,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 중국, 일본의 첩보전과 군사대치가 시작된다.
사드 배치와 핵/ 미사일실험 등의 사태를 거치며 방송매체에서 탁월한 전문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양욱 군사평론가가 이번 영화 제작에 자문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영화팬들이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무기나, 군사동향, 강대국의 전략 등이 그럴싸하게 보인다. 게다가 양우석 감독은 보이는 것 이상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한반도의 어두운 운명을 예측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북한의 누가(어떤 세력이), 어떻게, 왜 핵 버턴을 누르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죽음의 핵미사일이 어느 지점을 통과할 때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어떤 방어시스템을 작동시키는지, 그리고 그 후과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가 개봉된 후에는 핵미사일을 둘러싼 논쟁은 훨씬 세밀하고, 현실적인 계산방식이 적용될 것 같다.
양우석 감독은 실제 하는 위협과, 그것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를 곁가지를 쳐내고 묵직하게 던져놓는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욱 노골적이다. 이른바 현직대통령과 차기대통령 당선자의 역학관계와 ‘북한/통일’에 대한 전략적 접근법이 ‘북한 핵’ 못지않은 논쟁거리를 던져놓는다.
정우성과 곽도원의 발굴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지드래곤의 노래가 광채를 더한다. 이 영화는 두말 할 것 없이 한반도를 체스판으로 한 워게임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급 상상력의 충돌이다. 2017년 12월 14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