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물, 형사극의 장르는 다양하다. 지금은 최첨단 과학장비가 위력을 발휘하는 CSI스타일의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순전히 ‘감’과 ‘촉’으로 승부하는 탐정이야기가 사랑을 받던 때가 있다. 셜록 홈즈가 일궈놓은 추리소설 영역에서 유명세를 떨친 탐정으로는 아마도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가 창조해낸 ‘에큐르 포와로’(Hercule Poirot)와 미스 마플(Miss Marple)이 있을 것이다. 사실 미스 마플은 영국 할머니이고, 포와로는 벨기에 사람이다. 그래서 읽을 때 에뀌드 뽀와르라고도 한다.
실로 오랜만에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뽀와르 탐정’이 주인공인 영화가 만들어져서 개봉한다. 크리스티 여사가 1934년 발표한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살인>(Murder on the Orient Express)이다. 이 작품은 1974년 거장 시드니 루맷 감독에 의해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당시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진짜 ‘한 타스’로 등장했었다. 그리고 34년이 더 지나 영국의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다시 영화로 만들었다. 이번 작품의 캐스팅도 화려하다. 포와로 역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직접 맡았다 이번 열차의 탑승객들도 호화찬란하다. 하다못해 이 열차에서 살해당하는 인물 역시 대스타이다. ‘조니 뎁!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소설에서는 포와로 탐정이 중동의 한 나라에서 미제사건 하나를 해결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번 영화의 출발점은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이다. 세 종교의 영적지도자가 용의자로 등장하는 성물 도난사건을 두고 포와로는 ‘감’과 ‘촉’으로 매끈하게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는 유럽횡단 특급열차에 오른다. 그러나 이 열차는 산악지대에서 눈사태를 만나 멈춰 서게 되고, 그 와중에 탑승객 라쳇(조니 뎁)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포와로는 등 떠밀려 사건해결에 나선다. 라쳇은 악당기질이 있어 보이는 골동품 판매상이었다. 포와로는 승객 한 명 한 명을 취조(!)하기 시작한다. 알리바이를 알아보고, 살인의 동기를 캐내기 위해 ‘감’과 ‘촉’을 총동원한다.
포와로의 수상선상에 오른 인물로는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미셸 파이퍼, 윌렘 대포, 데이지 리들리 등이 있다. 범인을 압축해 나가고, 범행동기를 밝히고, 결국 범인을 찾아내는 것이 포와로의 역할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1932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동유괴사건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당시 최초로 대서양(미국~프랑스 파리)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 찰스 린더버그 이야기이다. 마치,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른 산악인 고상돈이 국민영웅이 되었듯이 린더버그는 미국의 히어로, 셀렙이 된다. 그런데 그의 겨우 생후 '20개월'된 아들이 호화저택에서 유괴된다. 요구한 돈까지 넘겼지만 아이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1974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를 보면 유괴당한 뒤 슬픔에 빠진 가족에게 달려드는 파리떼같은 취재진의모습에 경악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슬픔을 겪은 사람들은 유괴범에 대해 분노하고 복수심을 키울지 모른다. 아니면,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무언가/어떤 행동을 하려고 할지 모른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그런, 범인(凡人)의 심리를 다룬다. 오래된 복수. 간절한 소망 말이다. 포와로는 눈 덮인 산중, 멈춰선 특급열차에서 밝혀진 범인을 앞에 두고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한다. 이 영화는 진실과 정의의 길목에서 숭고하면서도 세속적인 판단을 내려야하는 포와로의 고뇌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는 살아 생전 66편의 추리소설과 14편의 단편선, 그리고 다수의 로맨스물을 남겼다. 두꺼운 자서전도 냈다. 포아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첫 번째 작품 ‘스타일즈 저택의 수수께끼’에서부터 등장한다. 아마, 도서관에 가면 서가 한 편을 가득 채운 크리스티 추리소설 작품에 놀랄 게 된다. 기네스북에 따르면 성경과 셰익스피어작품에 이어 크리스티 저작물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1971년 영국 왕실이 수여하는 데임(Daem)작위(남성의 Knight에 해당하는 작위)를 받았다. 2017년 11월 29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