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악당은 많다. 대학살을 저지르는 미치광이 독재자부터 도시의 어둠을 먹고사는 연쇄살인마, 정치판의 더러운 족속들과 돈만 아는 재벌자식까지. UN이 어찌 못하고, 공권력이 움찔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평범한 사람, 일반시민들은 몽상을 하게 된다. 직접 총을 들고, 정의의 복수를 펼치는. 오래 전 찰스 브론슨의 <데드 위시>가 총을 들었고, 만화 <시민 조로>가 소심하게나마 그랬다. 이제, 자경단 수준을 뛰어넘는 슈퍼 ‘어둠의’ 히어로가 나섰다. 배트맨 말고!
‘퍼니셔’는 마블코믹스의 1974년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처음 등장했다. 원작에서 ‘퍼니셔’는 월남전에서 돌아온 전쟁용사이다. 뉴욕 센트럴시티파크에 사랑하는 가족과 놀려나왔다가 테러를 당한다. 눈앞에서 아내가, 아들이, 딸이 피살당하는 것이다. 마피아 갱들의 총격전에, 그리고 목격자라는 이유로. 복수의 피가 끓어오르는 이 월남참전 군인 ‘프랭크 캐슬’은 ‘퍼니셔’(응징자)가 된다. 그의 눈에 띠는 나쁜 놈들은 -마피아든, 갱단이든, 악당이든- 완전히 쓸어버린다. ‘프랭크 캐슬’이 자경단 전투실력을 선보이는 ‘퍼니셔’는 이미 영화로 세 차례 만들어졌다. 돌프 룬그르렌(1989), 토머스 제인(2004), 레이 스티븐슨(2008)이 프랭크 캐슬을 맡았었다.
그리고, 아이언맨과 스탠 리가 힘을 쓰기 시작하자 마블 영웅들이 차례로 세상 밖으로 다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프랭크 캐슬은 넷플릭스를 통해 재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존 번설(Jon Bernthal)이 연기하는 프랭크 캐슬은 넷플릭스의 <데어 데블 시즌2>에서 존재감을 빛내더니 원톱 주인공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무비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난 17일부터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시즌1’은 모두 13편이다. 넷플릭스답게 시즌 전편이 동시에 개봉됐다.
넷플릭스 <퍼니셔>는 출신(!)이 오리지널과는 조금 달라졌다. 월남전이 아니라 아프카니스탄 에 간 미국 해병대 특수부대인 포스리컨(Force Recon) 출신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그는 명확히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커다란 고층건물 건설현장에서 분노를 삭이며 해머를 내리칠 뿐이다. 조그만 골방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문득 악몽에 시달리는. 죽은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누군가가 권총으로 아내의 머리를 쏜다. 에피소드가 진행되면서 프랭크 캐슬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난다.
프랭크 캐슬은 아프칸에서 CIA주도의 더러운 작전(케르베로스 작전)에 투입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CIA 오렌지요원의 지시로 요인암살, 고문, 살해를 일삼았던 것이다.(그리고 더 큰 범죄가 숨겨져 있다!) 캐슬은 귀국 후 가족이 모두 죽는다. 자신도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숨어지내던 것이다. 케르베로스 작전의 고문, 살해 광경이 누군가에게 녹화되었고, 그 동영상을 둘러싼 과거와의 전쟁, 현재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복수심에 불타는 프랭크 캐슬, 전 NSA분석관 데이비드 리버만(에본 모스배크랙), 정의에 불타는 국토안보부의 열혈요원 디나 마다니(앰버 로즈 레바), 역시 정의감에 불타는 여기자 카렌 페이지(데보라 앤 월)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오렌지 에이전트인 윌리엄 롤린스(폴 슐츠)는 명확한 악당이지만, 프랭크 캐슬의 전우 빌리 루소(벤 반스)의 정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시즌1을 끝까지 봐야한다.
'아이언맨'같은 마블 슈퍼히어로의 엄청난 역량에 비하면 ‘해병대 특수부대원’ 프랭크 캐슬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용사는 용사. 엄청난 육박전과 총격전, 그리고 용기를 볼 수 있다. 전 NSA분석과 리버만과의 브로맨스도 찡하다. 전쟁터에서 단련된 전사답게 사람 죽이는 것이 ‘파리잡는 듯'하고 화면엔 피가 흥건한 작품이다.
그런데, 프랭크 캐슬의 선택과 결정들에 묘한 공감을 하게 된다. 일반적 자경단식 복수극에, 국가조직의 더러운 비밀을 통쾌하게 폭로하는 파워풀한 드라마이다. 참, 마블팬들은 프랭크 캐슬과 카렌 페이지의 로맨스를 기대하고 하고 있단다. 보면서 디나와 로맨스가 엮어지는 줄 알았건만. 물론, 그런 로맨스가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피와 복수의 마음이 절절하다.
시즌1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작품에서도 '메멘토 모리'란 말이 한번 언급된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이기고 돌아오는 장군에게 큰소리로 "메멘토 모리"라고 외쳤단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으로, '지금은 너가 이겼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시키는 뜻이란다. '퍼니셔'에서도 죽음이 많다. 프랭크 캐슬은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아는 '인간'같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