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의 오랜 벗 KBS 독립영화관에서는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 연속으로 정재은 감독 작품을 방송한다. 오늘(23일) 밤에는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가, 그리고 30일에는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가 시청자를 찾는다.
올해 봄 개봉되었던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서울 강동구 둔촌의 주공아파트 재개발단지의 고양이의 향배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1979년 완공된 둔촌주공아파트는 6천 세대가 입주할 만큼 대규모였다. 그러나 풍상의 힘과 서울 아파트의 프리미엄은 이곳을 사상 최대 규모의 재개발 사업으로 이끈다. 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 비록 낡은 저층 아파트단지였지만 이곳에는 오래도록 입주민과 함께 살아온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른바 '둔촌냥이'들. 사람들이 떠나가고, 낡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기반공사가 이어지고, 새로운 고층아파트가 들어설 이곳에서 고양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둔촌냥이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고양이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바로 그런 사람과 고양이들을 이야기한다.
정재은 감독은 재건축이 결정 난 이곳을 찾았다가 아파트 곳곳에서 환대하듯 다가오는 고양이에 흥미를 느꼈단다. 오래된 아파트단지, 인간에게는 낡은, 불편한 공간이지만 고양이들은 나름 따듯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삶의 공간이며 생존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이곳에는 약 250마리의 둔촌냥이가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공순, 예냥이, 뚱이, 반달, 깜이 등 이름만 들어도 그 모습이 연상될 둔촌냥이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2년 반 동안 80여 차례 촬영했단다. 그렇게 만든 첫 편집본은 9시간에 달했단다.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캣맘이 주는 먹이를 여유있게 먹는 냥이들. 정재은 감독은 이 모든 평화롭고, 안락한, 그러나 불온한 내일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정재은 감독은 여성 성장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고양이를 부탁해>로 데뷔하였고, 이후 도시와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말하는 건축가>(2011),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3), <아파트 생태계>(2017) 등 건축과 관련된 장편 다큐멘터리를 잇달아 만들었다. 그의 건축에 대한 사랑은 2017년 한일 합작영화 <나비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료코(나카야마 미호)의 집은 일본 유명건축가 아베 쓰토무(阿部勤)의 집이다. 특이한 공간구조가 눈이 가는 작품이었다.
정재은의 둔촌냥이 촬영은 2019년 말에 끝냈었고고, 둔촌주공아파트의 철거도 이미 끝났다. 이제 그 넓은 대지에는 올림픽파크포레온이라는 새로운 초거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그곳에서 하품으로, 어슬렁거리고, 그르릉대던 그 많은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오늘밤 12시 10분, KBS 1TV 독립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