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균 감독은 이른바 ‘쌍(雙)천만 감독’이다. <해운대>와 <국제시장>이 모두 천만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김용화(신과함께 1/2), 최동훈(도둑들/암살), 봉준호(괴물/기생충)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의 산업적 지평을 넓힌 영화인이다. 그는 광고회사에 다니다가 IMF로 무급휴직이란 걸 하게 되고, 그 기간에 시나리오를 썼다. 나홍균 감독의 [신혼여행]이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대로 [두사부일체], [색즉시공] 같은 흥행작품을 내놓았다. JK필름에 있으면서 다른 흥행작품도 조율하고 말이다. 그가 <국제시장>이후 오랜만에 내놓은 작품은 <영웅>이다. 에이콤에서 만든 뮤지컬 <영웅>의 스크린버전이다. 물론, 무대 공연을 필름에 담는 실황중계가 아니다. 뮤지컬을 기반으로 만든 윤제균 표 뮤지컬영화이다. 개봉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저녁에 감독을 만나 <영웅>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윤제균 감독으로서는 오랜 시간 준비한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며 홍보흘 위해 펼치는 릴레이 인터뷰의 마지막 타임이었다.
Q. 대중적 감성에 호소하는 흥행감독이 뜻밖에 장중한 역사적 인물을 앞세웠다. 우려와 의심을 하는 사람도 있다. 뮤지컬은 또 처음이다. 뮤지컬업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윤제균 감독: “다양하게, 많은 분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먼저, 정성화 배우한테는 촬영할 때 솔직하게 말했다. 뮤지컬에 대해서는 내가 한참 모르니 도와달라고. 실제 정성화 배우는 날 많이 도와주었다. 뮤지컬에서는 ‘송 모먼트’가 중요하다.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관객들이 뮤지컬 영화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그 지점이다. 뜬금없이 노래가 나오면 이게 뭐지 하는 것이다. 그 부분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었다. 송모먼트에 사활을 걸었다. 예를 들면 김고은이 명성황후 시해장면 때 술잔에 눈물이 한 방울이 떨어지고, 전주가 시작되고, 노래가 나온다. 이토 히로부미가 건배할 때도 잔을 딱 잡으면서 노래가 시작된다. 설희의 기차 신에서도 절을 하고, 문을 열 때 노래가 시작된다. 그런 식으로 항상 신호를 주었다.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에게도 끊임없이 자문을 구했고, 김문정 음악감독에게도 조언을 구했다. <영웅>은 저 혼자 만든 작품이 아니라 뮤지컬계의 전문가들의 도움이 들어간 영화이다.“
Q. 뮤지컬영화를 만들 때 특히 주의를 기울인 것이 있다면? 처음 만드는 뮤지컬이니까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다.
▶윤제균 감독: “영화로 만들 때 사운드를 컨트롤하는 게 도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해본 사람이 없기에 조언을 받을 데가 없었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 <해운대> 때 생각이 많이 났다. <해운대>를 정말 바다에서 찍을 수는 없으니까. 그 당시 우리나라엔 그 정도를 커버할 수조 세트가 없었다. 미국의 특수촬영 세트장을 가봤다. 가서 보니 그냥 일반 풀장에 그린을 쳐놓고 찍는 것이었다. 대신 풀장과 바다의 차이는 파도이다. 파도 발생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큰 풀장 한쪽에서 사람들이 매트리스 위에 올라가서 폴짝 뛰는 것이다. 그렇게 물을 일렁거리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콜럼부스의 달걀’ 같은 것이다. 처음 어떻게 시도하느냐가 중요했다. 커다란 파도(츠나미)도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물을 보내 효과를 만드는 것이었다. 알고 나면 너무 쉬운 방법이었다. <영웅> 초반부, 안중근과 동지들과 숲에서 단지동맹 하는 장면이 그런 경우이다. 숲속에서 노래를 부를 때 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흩날린다. 그런데 바람은 어떻게 하지? 강풍기를 켜면 된다. 그런데 뮤지컬영화 이다보니 라이브에 강풍기 바람소리가 문제였다. 강풍기를 세트장 밖에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두고, 호스를 연결해서 배우들 앞에만 바람이 나오게 하고 그 장면을 찍은 것이다. <해운대>때처럼,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시도를 한 게 주효했다. 그리고 야외에서 로케 촬영할 때 벌레소리가 많이 들어간다. 노래를 부르는데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잡음이다. 어떻게 하지? 하루 전날 그 일대를 방역했다. 그리고 마이크를 최대한 입 가까이에 댄다.”
Q. 데뷔작부터 대중적인 흥행감독, 상업적 대중코드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자세로 접근하였는지.
▶윤제균 감독: “만약 내가 천만 관객을 목표로 했다면, 그래서 트리플 천만감독이 되려고 했다면 이 작품 안했을 것이다. 그건 모든 영화감독이 이해할 것이다. 영화감독이란 자신의 작품에 필이 꽂혀야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을 준비하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정말 감독이 필이 꽂히지 않으면 못한다. 일단 필이 꽂히면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한다. 이 작품이 나에겐 필이 꽂혔던 그런 작품이다.”
“이번 작품을 선택하면서 두 가지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첫 번째는 뮤지컬 영웅을 본 사람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흥행은? 세 번째 정도일 것이다. 감독을 하면서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행복하냐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상업적인 영화, 성공가능성이 있는 영화가 있겠지만 난 이걸 꼭 해야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다. 잘되면 좋겠지만.. 나머지는 하느님에 맡기겠다.”
하루 종일 이어진 인터뷰가 이어졌었고, 마지막 인터뷰가 이미 저녁 6시를 넘어섰다. 윤 감독 전화기에서는 계속 문자수신음이 들려온다. 감독은 발신처를 힐끗 보더니 하나를 받는다. “제가 인터뷰 중이어서,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란다. 에이콤의 윤호진 대표님이시란다.
Q. 일반적으로 뮤지컬을 보면 캐릭터에게 대표곡, 넘버가 하나씩 주어진다. 이번 영화에서도 정성화 김고은, 박진주, 나문희. 조우진까지 고루 안배가 되었다. 원작뮤지컬에서 영화로 옮기면서 선곡의 기준을 어떻게 잡았나.
▶윤제균 감독: “기준은 첫째도 스토리, 둘째도 스토리였다. 넘버 중에 스토리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곡을 추렸다. 스토리상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면 호불호가 있더라도 넣었다. ‘만두송’이 그런 곡이다. 흥행만을 생각했다면 굳이 넣을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꼭 넣고 싶었다. 오리지널에도 있는 곡이다. 그 넘버는 쉬어가는 타이밍에 등장한다. 그런데 이 장면은 사실 안중근과 동지들이 재회하는 신이다. 조우진 배우가 ‘배 많이 고프지’하며 연결되는 노래이다. 꼭 필요하다고 본다.”
Q. 개봉이 앞두고, 모니터링 시사회를 많이 했을 것이다. 블라인드 시사회를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윤제균 감독: “편집본 나오면 바로 모니터링을 했다. 블라인드 모니터링을 하면 전체 수치, 캐릭터별 수치가 신(SCENE)별로 계량화된다. 그걸 가지고 다시 편집 수정을 했다. 2차 수정 하고, 모니터링하고. <영웅>은 3차까지 했다. 완성도가 제일 좋을 때까지. 시사회는 다른 버전을 갖고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 연령별, 성별 선호를 보는 것이다. 이번에 마지막 블라인드 테스트할 때는 자막을 넣어보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래방 영향으로 노래가 나올 때 가사 자막에 익숙하다. 그래서 자막 넣은 버전과 없는 버전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나는 당연히 자막 버전을 더 좋아할 줄 알았는데 무자막이 더 인기가 있었다. 배우들 연기에 집중하는 게 더 좋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물론, 영화가 잘되면 자막 있는 버전도 공개할지 모른다.”
Q. 블라인드 시사회 하니, 기자시사회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일반적으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되는 언론시사회는 분위기가 무겁다. 그래서 정작 개봉될 때 일반 관객과의 반응이 다를 수도 있다. 이번 영화에서 조재윤이 보여주는 코믹코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만두송’도 그렇고.
▶윤제균 감독: “일반 관객이 볼 때 기자시사회 분위기는 너무 다르다. 일반관객들은 ‘단지동맹’ 신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박수가 나올 줄은 몰랐다. 격정적인 넘버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이 영화엔 재밌는 코드들이 깨알같이 들어가 있다. 관객들이 생각보다 많이 좋아해주셨다. ‘만두송’ 장면도 즐겁게 보시는 것 같았고. 그런데 이 영화의 명대사가 ‘부부는 그렇게 하지 않아’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 (아, 그 장면~)
Q. 정성화 배우, 김고은 배우의 캐스팅은 최고였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영화가 제작되기까지는 많은 과정을 거친다. 단순히 뮤지컬을 고스란히 영화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면 캐스팅에 대한 논의도 많았을 것 같다.
▶윤제균 감독: “당연히 많았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네임벨류’, ‘티켓파워’, ‘인지도’, ‘선호도’, ‘스타성’.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저는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오직 흥행만 목적으로 했다면 흔들렸겠지만 저는 분명한 목적, 목표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게 캐스팅 기준이었다. 첫째도 실력, 둘째도 실력. 뮤지컬 <영웅> 정성화 공연을 이미 수많은 관객이 봤다. 그들이 봤을 때 정성화 배우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저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정성화 배우가 인터뷰에서 나한테 고맙다고 하는데, 정반대이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 수많은 의심, 우려를 확신으로 증명해 주었다.”
Q. 혹시 <아바타:물의 길> 보셨는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물에 진심이다. 감독님도 <해운대>나 <7광구>에서 물에 대한 특수효과를 다뤄봤잖은가.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다.
▶윤제균 감독: “<영웅> 개봉을 앞두고 시간이 없었다. <아바타:물의 길> 못 봤다.
Q. 코로나 영향으로 개봉이 많이 밀렸다. 힘들게 작업한 결과물을 내보일 수 없어 가슴이 아팠을 것 같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바타2>와 대결하게 되었다. 더 미룰 생각은 없었는지.
▶윤제균 감독: “개봉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건 감독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배급전문가들이 이 이 시기가 제일 좋다고 했고,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배급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 개봉된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고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작품을 하나 끝냈으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야하는데 계속 붙잡고 있었다. 원래는 2020년 8월에 개봉할 계획이었다. 2년 반이나 밀렸다. 계속 붙잡고 후반작업을 했다. 본 촬영할 때 부족한 부분을 재촬영할 수 있었다.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으니 감독의 입장에선 정말 다행이다. 후반작업에서 사운드 작업에 공을 굉장히 많이 들였다. 다른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오래 매달리며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Q. 지난 추석엔 JK필름의 <공조2>가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윤제균 감독이 무척 오랜만에 직접 연출로 등판한 이유가 있는지.
▶윤제균 감독: “제작하고 감독은 다르다. 제작이 아버지라면 감독은 엄마이고, 작품은 자식 같다. 내 배에 아이를 갖고, 산고를 거쳐 자식을 낳는 게 어머니이다. 감독을 왜 8년 만에 했냐면..(윤제균 감독은 여기서 다시 한 번 ‘감독의 필’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나리오 개발부터 개봉까지 감독은 필이 꽂혀야한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작품을 흥행, 돈을 위해서 하게 된다면 감독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뮤지컬 <영웅>을 보고 필이 꽂혀서 매달린 것이다. 뮤지컬 보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자료조사도 많이 했고.”
Q. <신혼여행>(1999)의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수많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시나리오작가로서,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한국영화가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윤제균 감독:“한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전유물이라는 것도 이젠 없다. CG기술만 봐도 할리우드의 90% 수준에 올라와 있다. 이건 팩트입니다. 부족한 10프로는 ‘히어로샷’ 정도일 것이다. 크리에이티브하게 뛰어난 장면들. 그것 말고는 한국 그래픽은 다 할 수 있다. 한계가 없다.”
Q.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영화 카피가 ‘누가 죄인인가’가 있다. 당연한 것을 내세운 게 의아하기도 하다. 그런데 뮤지컬 초기 때 그런 논란이 있었다. ‘꿈’이라는 노래가사가 많이 나온다. 안중근의 꿈(동양평화, 조국귀환)나 이토 히로부미의 야욕 등이 병치되는 식으로. 이번 작품에서 이토 역의 김승락 배우의 출중한 일본어 노래 실력으로 그런 느낌을 받기도 한다.
▶윤제균 감독: “그런 이야기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안중근과 이토의 대결구도에 필이 꽂힌 것이 아니다. 그건 서브플롯이다. 난 안중근과 그 어머니 조마리아의 관계에 매료되었다. 분량이 적긴 하지만 그 이야기로 절정으로 치달아갈 것이라는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공연에서는 세 곡을 부른다. 영화에서는 그가 회상하며 부르는 곡을 뺐다. 내가 생각한 스토리라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야욕을 드러내는 두 씬이면 충분했다. 그게 전체 스토리에서 중요하다고 보았다. 대신, 앞부분에 정한론(征韓論) 이야기 하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공연에는 없는 것이다.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땠을까 상상한 것이다. 극에서 이토가 붓글씨를 쓰는 장면이 있다.(至誠而不動者末之也) 일본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의 뿌리가 된 사람이다.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영화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안중근의 과거, 거사의 개연성에 더 시간을 할애했다.”
윤제균 감독은 “<국제시장>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만들었고, <영웅>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찍었다.”고 거듭 말한다. “경험보다 더 생생한 소재는 없다. <영웅> 촬영하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으로 정말 많이 울었다. 개인사가 아니라 그런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작품에 투영되는 것 같다.”
문득, 윤제균 감독이 <영웅>이 아니라 <레미제라블>에 필이 꽂혔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궁금해졌다. 영화 <영웅>은 12월 21일 개봉되었다. 정성화, 김고은, 나문희, 조재윤, 배정남, 이현우, 박진주, 조우진 등이 출연한다. 필견의 영화이다. <아바타: 물의 길>이 시각적 즐거움을 준다면 <영웅>은 청각적 울림을 준다. 귀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말이다.
[사진=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