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만든 희대의 사기꾼 사건이 있었다. 그럴듯한 피라미드 사기에 넘어가서 너도나도 ‘투기’에 뛰어든 조희팔 사건이다. 원래 돈을 끌어 모아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돈을 불리고 일정한 타이밍에 튀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였다. 조희팔은 충남 태안군 마검포항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한다. 피해자는 3만 명을 넘어섰고,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 4조원을 웃돌았다. 자살하는 사람도 속출한다. 이런 사기꾼의 사기행각의 뒤를 봐주는 공권력(경찰,검찰,정치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추론. 과연 어느 수준까지 배후가 밝혀질까. 어쨌든 조희팔은 2011년 중국에서 죽었다면서 화장까지 한 상태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일은 아닐 것이다. 조희팔의 진짜 생사여부, 뒤를 봐준 권력가들을 파헤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22일 개봉하는 <꾼>이다.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시작은 사기피해를 당한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큰돈을 벌수 있다고 해서 가족, 친지, 친구까지 끌어들이고 빚까지 내어 투자했다가 쪽박 차고, 자살하는 모습. 그 피해자 가족 중에는 현빈도 있다. 소매치기였던 현빈의 아버지(정진영)는 위조여권기술자. 조희팔 밀항사건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한다. 현빈은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며 8년의 세월을 와신상담한다. 그의 복수심을 비틀고 들어온 사람은 검사 유지태. 유지태는 조희팔사건 담당검사였다. 이른바 이너서클 멤버지만, 그의 진짜 속내는 끝까지 포커페이스이다. 현빈을 이용하여 커다란 복수극을 펼치는 것인지, 아니면 보이는 대로 부패한 검사일 뿐인지. 그런 현빈과 유지태 사이에 배성우, 박성웅, 나나, 안세하가 위험한 줄타기를 하며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 ‘검사를 물 먹이는’ 위험한 작전을 펼친다.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꾼>이 처음이 아니다. 이병헌의 <마스터>는 필리핀까지 확장된 조희팔 스토리였고, 임시완의 <원라인>, 김우빈의 <기술자>, 그리고 좀 덜 알려진 <쇠파리>까지 모두 조희팔의 사기술에 영감을 얻은 작품들이다. <꾼>은 이런 성공 또는 실패한 작품에서 무슨 교훈을 얻었고, 어떤 차별을 두었을까. 감독은 ‘사기꾼을 속이는 사기꾼’이라는 컨셉으로 대반전의 ‘케이퍼 무비’를 완성시켰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마음으로 판에 뛰어든 현빈 뿐만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도 확실한 스탠스를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 <꾼>의 긴장감을 이어가는 포인트이다. 만약, 유지태가 개과천선할 정의의 검사라면? 박성웅이 어리숙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중배신자라면? 배성우가 알고 보니 이중스파이라면? 그럼 나나와 안세하는 혹시 보이는 것 이상의 임무를 펼치는 히든카드 아닌가? 그나저나 조희팔이 살아있다면?
유지태가 정녕 원했던 것이 비리장부 엑스파일이었든 피해자의 피 묻은 돈이었든 이 영화는 마검포항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에서 그 화려한 사기극의 전모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구조이다. 사건이 해결되든, 진실이 영원히 묻혀버리든 명확한 것은 <꾼>은 속편을 만들 수 있는 열린 결말이란 것이다. 조희팔이 살아있다면 말이다. 참, 영화에서는 ‘조희팔’이 아니라 ‘장두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