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나는
‘조강지처’란 말이 있다. 지게미(糟)와 쌀겨(糠)로 끼니를 겨우 이을 때, 옆에 있으며 그 어려움을 함께 이겨낸 아내를 일컫는다. 그 덕분에 성공하여 살 만하면 남편은 다른 여자를 찾게 된다. 보통의 막장 드라마는 그렇다. 여기 가난한 연인이 있다. 남자는 2년제 대학을 나와 지금 경찰이 되기 위해 공부 중이고, 여자는 공기관에 취직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둘은 동거 중이다. 여자가 먼저 취업이 된다면? 우리는 알고 있다. 힘든 시기가 길어지고, 삶의 균형추가 기울게 되면 그 관계가 순탄치 않음을. 영화 <그 겨울, 나는>의 커플은 어떻게 될까.
29살 동갑내기 경학(권다함)과 혜진(권소현)은 내일의 희망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취업 준비 중이다.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지만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행복은 이룬 것 같다. 그런데, 경학의 친모가 남긴 빚이 경학의 발목을 잡는다. 경학은 떠안은 은행대출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친구에게 ‘그들에겐’ 거금을 주고받은 오토바이로 배달, 라이더에 뛰어든다. 주경야독의 생활이 시작되고, 어느 순간 공부보다는 배달의뢰- 콜에 더 매달리게 된다. 그 사이 혜진은 가고 싶던 관광공사는 떨어졌지만 중소기업체에 취직하게 된다. 그러면서 둘의 사이는 ‘동화’에서 ‘현실’이 되어간다.
그 겨울, 나는
영화 [그 겨울, 나는]은 많이 보아온 청춘의 한 때이다. 아무리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 같은 연인이지만 고달픈 현실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하면 둘의 관계는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고, 멀어진다. 물론 일방의 잘못일 수도 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닐 수도 있다. 더 노력하고, 더 참고,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은 세월인 지난 뒤, 1년 혹은 10년이 지나면 무엇이, 누가 잘못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은 단지, 그때 아프고, 좌절하면 될 일이니까. 혜진은 혜진대로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경학은 경학대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다.
그 겨울, 나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고통과 시련의 순간은 아마도 오성호 감독이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돈이 없거나, 희망이 없거나, 옆에 누군가가 멀어지고 사라졌을 때의 좌절감을. 그리고, 미래를 저당 잡히고 돈의 노예가 되어야할 때의 고통을 말이다. 덤으로 라이더들의 고달픔도 이해하게 된다. 곽민규와 손예원이 나왔던 오성호 감독의 단편 <눈물>도 비슷한 처지의 청춘을 이야기한다. 가난한 커플이 눈물의 데이트를 하고 현실적 선택을 하는 점에서.
경학을 연기한 권다함의 연기는 찬란하다. 작년 열린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오성호 감독의 <그 겨울, 나는>은 30일 개봉한다. 청춘은 아프다. 정말이지, 아프면 병원 가든지, 한 템포 쉬어야한다. 그게 긴 인생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으니.
▶감독:오성호 ▶출연:권다함, 권소현, 오지혜, 계영호, 이한주 ▶2022년 11월 30일 개봉 #박재환영화리뷰